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침대옆버스 Oct 10. 2023

'잊혀지는 것들에 대하여'

23년 가을 연휴 오롯이 해낸 일들 1. 산책 2. 독서 3. 오디오

 최근 운전 중 라디오를 통해 새로 알게 된 노래가 있다. 성시경의 <잊혀지는 것들에 대하여>. 발매된 지는 꽤 된 곡이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 한국 발라드의 감성이 녹아있고, 그중에서는 멜로디가 비교적 잔잔하고 산뜻한 편이어서 선선해지는 요즘 초가을 날씨에 적격이다. 추석연휴 덕에 6일, 헌굴날 덕에 3일 연달아 빨간 날을 지난 지금의 나에게도 걸맞은 제목이다. 쉼에는 끝이 없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일상생활에 지쳐버릴 수 있으니 23년 가을 연휴 내가 오롯이 해낸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1. 산책

 연휴 동안 정말 잔뜩 먹었다. 육전, 김치비빔국수, 요거트, 라볶이, 오징어튀김, 송편, 카레, 소불고기, 갈치구이, 샤인머스캣, 파운드케이크 등등.. 혼자 먹을 때는 주로 요리 하나만 먹는데, 본가에 가면 반찬의 종류가 다양해서 위장 한도를 넘어 무리한다. 그중에서도 욕심 내서 먹은 음식은 잡채다. 명절이나 생일 즈음 엄마께서 자주 만들어주시는 음식인데, 우리 집은 육고기 대신 주로 어묵을 넣고 파프리카나 청양고추를 가미해 약간 매콤하다. 기름진 음식인데도 물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밥을 적게 먹더라도 당면만은 도무지 포기할 수 없어 여러 차례 젓가락으로 덜어 먹는다.


 포만감에 취해 방에 들어가 한숨 깊게 자고 나면, 다시 식사 시간이 찾아온다. 잡채는 또 먹고 싶은데 배가 아직 꺼지지는 않았을 때 산책을 선택한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이제 밤에는 꽤나 추워 바람막이를 챙겨야 한다. 한두 시간 무작정 천을 따라 걷고 나면 빵빵해진 배가 조금은 가라앉는다. 운전을 시작한 이후 일일 걸음수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만 보 넘게 찍혀있는 휴대폰 건강 기록을 보니 괜스레 뿌듯했다. 부모님 댁 부근 산책길이라 예전 생각도 많이 났다. 이 길을 따라 과외 학생울 가르치러 가고, 독서실 있다가 답답해서 달리기를, 친구가 놀러 와 함께 두런두런 얘기 나눈 적도 있더랬다. 대부분 혼자서 음악을 들으면서 걷곤 했는데, 거주지가 바뀐 지금까지도 이 공간에서의 추억이 꽤나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게 놀라웠다.

2. 독서

 읽어야지 마음먹었던 책들도 원할 때마다 들여다보았다. 친구가 제안해 준 독서모임 덕분에 꽤나 주기적으로 완독 해내지만, 회사나 다른 약속으로 바빠질 때면 다 읽어내도 개운하지 않다. 내가 그 책을 진정 즐겼는가?라고 자문해 보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모임 발제문소감문 작성을 위해 기한 내 '활자를 보았다'일 때도 많다. '이 시간 때 이 분량만큼은 읽어야 해'라는 의무감 없이 시간의 여유 속 문득문득 침대 옆 책을 집어드는 게 즐거웠다. 언젠가 장기간 묵는 여행지에서 책을 한껏 쌓아두고 읽어보고도 싶다. 수화물 무게나 다른 여행 일정에 구애받지 말고 널브러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상황 자체야말로, 얼마나 근사한 사치일까?


 연휴 동안 읽은 책 목록과 소감 한 줄은 다음과 같다.

ㅇ 일은 서울에서, 잠은 제주에서(박상영)

 - 제주에서 일한다는 게 마냥 낭만적일 수만은 없겠구나.

ㅇ 먼 나라 이웃나라 19 :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 시즌2 지역,주제편(이원복)

 - 몰랐던 그 나라들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알고 나니 더더욱 가보고 싶어진다.

ㅇ 산책과 연애(유진목)

 - 제목에서 달달함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겠으나, 정처 없는 산책 마냥 휘풀거리는 문장들이 좋았다.

ㅇ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정지아) 

 -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궁금해지는, 모르는 시절과 세대에 어려움 없이 접근하는 에세이다.

ㅇ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다양한 선택을 존중하며 더불어 혼자 사는 비혼의 세상(곽민지)

 - '비혼이라서 이래'가 아니라 '나는 이러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비혼이야'로 대화를 나눈 기분이다.

ㅇ 우리 직업은 미래형이라서요-맣느 너머를 준비하는 여성 프리랜서를 위한 유쾌한 제안서(박초롱)

 - 프리랜서에 해당하는 사람은 적은 듯하지만 알고 보면 광범위한 의미여서, 계속 논의되어야 할 것 같다.

ㅇ 억지로 쉼표 찍기(박상영)

 - 작가를 애정하고, 작가가 애정하는 주변 이들에 대한 일화라 감정 표현이 아니어도 뭉클한 순간이 많았다.

ㅇ 퀸즐랜드 자매로드-여자 둘이 여행하고 있습니다(황선우, 김하나)

 - 코알라가 세상에 그렇게 귀엽다고? 먼 나라 중 호주는 꼭 갈 것이다.


3. 오디오

 1. 산책,  2. 독서와 이어지는 영역이다. 위에 독서목록 중 절반 이상은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을 이용했다. 텍스트를 음성으로 자동 변환해 주는 기능 외에도, 아예 전문 성우나 작가 본인이 직접 책을 녹음하는 경우가 많다. 음성변환일 때보다 자연스러운 끊어읽기여서 집중하기 용이하다. 오디오북과 음성변환 모두 재생속도도 조절할 수 있어, 평상시 내가 페이지를 넘기는 빠르기 그대로 책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최대 장점은 책을 읽으면서 다른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아직도 책을 읽기 가장 편한 자세는 정립하지 못했다. 독서대를 이용하면 어느 순간 자세가 어정쩡 꼬리뼈가 아프고, 누워서 읽으면 책을 계속 들고 읽는 게 무겁다. 어떤 자세든 한 상태로 계속 있으면 안 좋다고는 하니, 오디오북을 이용하면 집안일이나 산책을 겸할 수 있어 뻐근할 걱정이 없다.


 오디오북 외에도 팟캐스트, 무료체험 중인 유튜브 뮤직을 들었다. 이어폰과 블루투스 스피커 덕분에 바깥에서도 실내에서도 편안하게 선명한 음향을 듣는다. 특히 블루투스 스피커는 현재 기준 올해 들어 가장 잘 산 제품이다. 오래도록 이어폰을 꽂아 귀가 먹먹해질 걱정 없이, 설거지나 화장실청소 소리에 팟캐스트 소리가 묻힐 걱정 없이 계속 재생하면 된다. 최근 블루투스 이어폰이 충전이 잘 되지 않는 듯해 불안하지만, 유선 이어폰은 멀쩡하니까!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한 귀로 오디오 장비를 누리며 여유를 즐기고 싶다.  

이전 05화 그리운 취향(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