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볼 때 왜 선생님이 되었냐고 물어보면
학생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가치있는 일을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곤 했다.
어쨌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여전히 그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되느냐 아니냐는 여러가지 케이스가 있지만
몇몇은 최종적으로 교생실습에서
어떤 일을 겪었느냐 아니냐로 가늠할 수 가 있다고 한다.
거기서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본인의 선택.
나는 초등학교 방과후 교사를 하면서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너무 소즁한 아이들)
눈에 콩깍지가 씌어진 대로 교생실습도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교생실습은 보통 학과에서 지역 내에 있는 학교를 알아봐 주기도 하고
직접 모교에 전화를 해서 그 곳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집과 가까운 중학교 모교에서 교생실습을 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자신들과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 선생님들을 좋아한다.
나 또한 아무런 책임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만났기 때문에 온전히 애정을 가지고 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름 행복한 교생실습을 할 수가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괜히 올라가서 애들이랑 장난도 치고 마칠때 즈음에는 편지와 과자선물도 했다.(뭔가 유행처럼 그랬다.)
바비월드 같았던 학교에 대한 환상은
하지만 첫 학교에서 바로 깨지고 말았다.
개학 전, 학교를 방문했을 때 교감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께서 학교다닐 때같은 학생들이 아닙니다. 그걸 명심하세요.'
그 때만해도 나는 가볍게 생각했다.
교사카페에서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과의 기싸움에서 지면 안된다고
삼월에는 아이들에게 엄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뭐때문에 그렇게들 이야기 하는거지?
학생들과의 몽글몽글한 기억들에 푹 빠져 있었던 나는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닥쳐오는 어둠의 먹구름의 정체도 모른채.
첫 학교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멀리라 해봤자 한시간 안이었지만 시골에서는 꽤 먼 거리이다.)
비평준화 고등학교였다. 근처에 지역 중학교에서
아이들이 진학했지만 학교를 운영하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시내에 평준화에 떨어진 학생들을 모두다 받아주었다.
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재입학 하는 친구들도
얼마간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세 반이 있다면 두 반은 전혀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라
그들을 공부 시키는 것은 많이 고된 일이었다.
그런데다가
나는 요령이 없는 교사였다.
수업 시간에는 어떻게든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를 해야한다는 강박에 쌓여
아이들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 달은 엄하게 해야한다고 해서
웃지도 않고 애들이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만 하고 있었으니
내가 받아왔던 강의식 수업으로는
나도 아이들도 못버틸것만 같았다.
엄하게 해야한다는 것도
아이들을 봐가면서 해야하는데
내가 처음 만난 아이들은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경험한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부정적인 스트로크를 많이 받았을지
눈에 선하다.
내 수업시간에도 그리했다는 이야기 었다.
나는 얼마지나지 않아
이 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의 페르소나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 가짜 페르소나는 바로 들통이 났고. 망했다.
그러다 나는 그냥 내 성격대로 학생들을 대하였다.
그때는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겠다는 생각뿐.
하지만, 내가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내게 인격적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수업 중에 거울과 화장품을 꺼내놓고
화장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생기고
몇몇은 화장실을 다녀온다고하고
이십분씩 담배를 피고 오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애들 담배문제때문에
수업 중에 화장실에 보내지 말라고 했고
아이들은 화장실에 가야하는 데 인권문제라고
수업시간에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럴 때마다 그런건 그냥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성장하는데 도움은 커녕
나는 그런 고함 속에서
조금씩 좀먹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