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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란 Nov 08. 2024

당연함 아닌 배려

기회를 제공한 나에게



교육 시간 몇 시간 전에 도착해 근처 도서관에서 머무를 생각으로 일찍 길을 나섰다.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낮 시간대라 그런지 대형 주차장임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주차 자리가 나지 않아 시동을 끄고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처리하며 기다렸다. 가끔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한 바퀴 돌며 자리를 확인해 보았지만, 30분이 넘도록 빈자리는 없었다. 그러다 건너편에서 차량이 빠지며 초록색 주차 가능 표시등이 켜졌다. 나는 재빨리 시동을 켜고 그 자리에 주차하려 달려갔다.


앞바퀴만 제자리에 들어가면 주차가 완료되는 순간, 갑자기 고급 세단 한 대가 내 차량 앞에 섰다. 검은색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며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내다본다.


“저기요, 이 주차 자리 제가 먼저 봤거든요.”


“네?”


그녀는 내 차량이 저 멀리 서 있는 걸 봤다며, 자신이 더 가까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를 발견하고 주차하러 오던 중 다른 차량이 진입을 방해해서 늦어진 거예요.”


“아, 네, 그러시군요. 저도 한참 대기하다가 자리를 발견했습니다.”


상대는 내가 더 이상 주차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제가 먼저 이 자리를 발견했다고요. 그러니 차를 빨리 빼 주세요.”


혹시 그녀의 일행 중 누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대형 마트에서도 주차 자리가 없을 때 동행자가 자리를 찜해두고 다른 차량이 주차를 못하게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상황은 그 이상이었다.


“저도 한참 대기하다 주차 자리를 발견하고 주차하려는 중입니다.”


“제가 먼저 발견했다니까요! 차를 좀 빼 주세요!”


참으로 상식이 통하지 않음을 느꼈다. 내 의견을 두 번이나 이야기해도 상대는 전혀 수긍하지 않았다. 세 번 이야기하면 달라질까? 의구심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녀의 주장을 수용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급할 때는 사람의 사고가 마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만 보이며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네, 알겠어요. 차는 빼 드릴게요. 여기 주차하세요. 그런데 저도 한참 기다리다 주차하려던 겁니다.”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상대는 귀찮다는 듯이 반복하듯 말했다.


“네네, 빨리 빼 주세요.”


차를 빼주면서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바보가 된 것 같고, 이용당한 느낌이랄까? 배려하고도 기분이 안 좋아 조금 우울해졌다. 이유는 나의 배려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며 그 가치가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차 자리를 두고 가치 운운하는 것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감사와 칭찬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얼마나 급했으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나도 언젠가 급할 때 양보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배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마지막 한마디가 이런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듯했다. 순간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내가 배려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행동을 계속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한 것은 아닐까? 작은 죄책감과 책임 의식이 스쳤다.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어도 내 마음은 불편했을 것이다. 상대가 저렇게 강하게 주장하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으니 비워주지 않았다면 그날 내 마음은 더 무거웠을 것 같다. 사실 나를 위한 행동이기도 했다.


상대를 위하고 더불어 그 가치가 선한영향력으로 번지길 바랐던 사건이 좋게 마무리되었다면 그 시간 이후 서로가 행복했을 텐데, 배려를 알아채지 못하는 상대가 아쉽게 느껴졌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상식을 넘어선 사람에게 배려할 때는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지금은 당신이 급해 보여 양보하겠습니다. “

그리고도 통하지 않으면 나의 배려를 그만 접어두고 상식대로 밀고 나가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허락한다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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