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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umi 여이진 유신디 Oct 13. 2023

90유로와 맞바꾼 아픔

감기 / 여이진

아팠다. 매우 아팠다.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누워있는 데도 머리가 빙빙 돌고, 열이 펄펄 나고, 침 삼키는 것도 아플 정도로 목이 부었다. 심지어 볼 아래쪽도 퉁퉁 부었다. 볼이 부은 것은 처음이라 검색해 봤다. 아이가 주로 걸린다는 볼거리로 추정되었다. 정말 당황스러운 병명인데 하필 한국도 아니고 아일랜드이다. 게다가 아일랜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엄청 가까운 사람도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한테 전화할 수도 없었다. 여러모로 서러워서 엉엉 울었다집 나가면 아플 때 제일 서럽다더니.


한국에서 가져온 약들로 애써 버텨보았다. 타이레놀을 두 알씩 먹어도 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집 근처 딱 하나 있는 동네 내과에 갔다.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하고 걸어서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거의 기다시피 병원에 도착했다. 동양인인 나를 보고 다소 놀라는 듯한 표정의 리셉셔니스트였지만 이내 웃으며 반겨주었다. 내 이름을 물어보고 곧 진료실로 안내해 주었다.


사실 병원에서 가장 걱정이었던 부분은 한국말로도 알아듣기 어려운 병명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친절히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해 주셨다. "목이 불나는 느낌이고, 볼이 커졌죠?" 내가 아예 못 알아듣었던 '볼거리' 단어는 구글에 검색해 보라며 스펠링 불러주셨다. 아파서 감수성이 평소보다 풍부했으려나, 따스움에 괜스레 눈물을 또 글썽였다.


하지만 금세 눈물이 쏙 들어갔다. 친절함에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는 법. 해맑게 웃으며 55유로를 청구하는 리셉셔니스트에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10분 진료에 8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라니. 게다가 이름 스펠링도 틀렸다. Yekin이라니... 그렇게 예킨으로 기록이 남았다.


Yekin이라 적힌 약봉투


약국에서도 만만치 않았다. 3~5일 정도의 약을 처방해 주는 한국과 달리 약을 병째, 박스째 판매한다. 당황한 나는 이렇게 많은 양이 필요 없다고 말해보았지만, 따로 소분해서 팔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약값으로도 거의 5만 원은 지불했다.


정말 한 박스가 통으로


아픈 것도 서러운데, 1유로도 소중한 유학생에게 90유로는 너무나 큰돈이었다. 앞으로 아프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했다. 다행히도 그 뒤로 아일랜드에서 크게 아픈 적은 없었다. 적응하지 못했던 연수 초반 생활 속 나의 외로움이 아픔으로 표출되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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