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Dottie Kim 글 : Mama Lee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것이 공부야.
음악, 미술, 체육은 타고나는 재능일 때가 많아.
아빠도 피아노, 첼로, 수영, 골프, 테니스 하고 싶었던 것은 정말 많았어.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뛰어난 수준이 아니란 걸 알았지.
아쉬움이 너무도 많지만 기대하지는 않아. 행운 이라니 웃기는 소리야.
아빠 엄마는 나에게 선행 학습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에 다니고, 과외도 했지만 4학년 때 중학교 수학을 시작하는 선행 학습은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학년별 수업을 따라갈 정도의 사교육을 받았다.
물론 영어의 경우 학교 수업과 다른 교과 과정을 학원과 과외로 학습하기는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점수나 등수로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성적이 떨어질 때 혹은 점수가 낮을 때 당황하시기는 했지만, 한 번도 단 한 번도 성적 때문에 나에 대한 아빠 엄마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초등학교부터 피아노, 수영, 발레, 미술, 국어, 수학, 영어, 과학 등을 지속적 혹은 간헐적으로 배웠다.
중학생이 되고, 실타래처럼 꼬인 수학 문제에 흥미가 떨어지자, 아주 자연스럽게 학교 수업과 과외, 학원 다니는 것들이 심드렁해졌다.
그래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한 미술 과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중학교 2학년 때까 지지 6년간 꾸준히 지속했다. 그림을 그리고 뭔가를 만드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불만인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비적극적인 학습 태도와 부진한 성적은 나와 부모님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부모님은 그때가 언제이든 중학교 3학년이든, 고등학생이든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언제든, 내 마음에 결심이 설 때 그때 공부를 하라 하셨다.
그래서 나는 수학 점수가 바닥을 모르고 수직으로 하강할 때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공부일 거고, 가진 것도, 타고난 천부적 재능이 없어도 죽어라 공부한다면, 그나마 노력한 만큼의 보답을 받을 거라 하셨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죽어라 하고 노력하는 해야 하는 과목을 국·영·수가 아니라 미술로 결정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2학년 미술 숙제를 보고 나의 재능을 직감하셨다 한다.
도형을 이용한 그림 그리기가 숙제였는데, 삼각형 그랜드 피아노, 원형의 팀파니와 첼로, 네모난 현수막이 있는 음악회장을 그렸다 한다. 열심히 색칠하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 귀찮아진 나는 여백의 배경을 남겨 두고, 엄청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그래, 음악회이니 색이 아닌 음악을 가득 채우는 거다.’ 나는 배경색을 가득 칠하는 대신 음표와 높은 음자리표를 큼직큼직하게 그려 넣고 마무리했다.
바로 그 순간 엄마는 나의 행운인 재능을 발견하셨다 한다.
국어, 영어, 수학 특히 수학을 버리고, 미술에만 집중하려 했을 때, 엄마랑 나는 깨달았다.
수학을 버리고 미술로 한국에서 대학에 가는 것이 매우 어렵고, 내가 잘 짜인 입시 미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유학을 꿈꾸게 되었다.
지원에 적합한 영어 점수를 얻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우며 작업을 했다.
수학 문제 풀기보다 즐거운 일이었지만, 마음이 조여들고, 막막하고, 나의 흥미가 재능인지 매 순간 의심되는 촛불처럼 불안 불안한 날들이 거듭되었다.
복권 당첨 같은 요행인지 모를 ‘작은 행운’을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매 순간 기도하고 소망했다.
15살 고등학교 1학년 6월에 자퇴하고, 16살에는 검정고시를 보고, 17살에 유학이 결정되었고, 17세 10개월에 유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다시 시작되었다.
낯선 영어 단어와 문장을 제대로 알아듣게 해달라고,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라가게 해달라고, 나의 작업 방향이 제대로 전달되게 해달라고, 과제가 제대로 평가받게 해달라고.
여전히 아빠는 luck 행운을 기대하는 것은 Joke 농담처럼 웃기는 소리라 생각하신다.
하지만 아빠가 놓치신 것이 하나 있다. 실없는 농담처럼 행운을 기대하는 것이 어쩌면, 판세를 뒤집는 와일드카드 Joker 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외롭고, 어렵고, 절망스럽고, 불안한 모든 순간을 joke처럼 웃어넘기며, luck을 붙잡아 보려 한다. 간절하게, 죽을 듯이 노력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