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Dottie Kim 글 : Mama Lee
운명 교향곡, 합창 교향곡은 없어.
베토벤은 번호를 붙였고, 제목을 정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제목을 붙인 거야.
재즈는 존 콜트레인을 많이 들었지,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보다는 색소폰의 중저음이 더 좋거든.
해피 메탈을 듣기도 했지만, 그건 아주 옛날 어렸을 때의 일이야.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아빠는 음악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유독 눈을 반짝이신다.
라디오 음악 방송 PD라는 직업을 어렸을 때 알았다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하시는 아빠의 일상에는 음악이 함께 한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벽장을 가득 채운 CD를 틀어서 클래식, 팝, 재즈, 샹송, 칸초네, 일본 가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즐긴다.
음악을 음식에 비교한다면, 아빠는 최고급식당을 즐기듯 각 장르마다, 깔끔하고 감칠맛 나는 곡을 선정하고, 야금야금 즐긴다.
“소프라노보다는 메조소프라노가 좋고, 테너보다는 바리톤이 듣기 좋지.
중저음의 울림이 마음을 웅장하게 하기도 하고, 긴장을 풀어 편안하게 하기도 하니까.
바이올린 보다 첼로를 더 좋아했어. 첼로를 배웠다면 좋았을걸, 아쉬운 일이야.”
어느 무더운 여름, 예술의 전당에서 루돌프 부흐빈더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공연을 함께 보았다.
여든에 가까운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뛰어노는 아이처럼 맑고, 매끄러운 음악을 연주하셨고, 아빠 역시 아이처럼 순한 표정으로 음악을 감상하셨다.
연주가 끝나고, 아빠와 손을 꼭 잡고 줄을 서서 팸플릿에 사인을 받았다.
저녁을 먹는 동안 아빠는 베토벤의 음악과 피아니스트의 연주 특성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전부를 흡수할 수 없었지만 아빠는 마치 배고픈 아이 밥 먹이듯 음악 이야기로 마음을 가득 채워 주셨다.
가끔 엄마 아빠랑 노래방에 가면 아빠는 이문세의 소녀,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 윤종신의 텅 빈 거리에서와 같은 시처럼 고운 가사의 노래들을 부르신다.
지금까지 딱 두 번, 티삼스의 매일매일 기다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목청이 터질 듯이 열창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보고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엄청난 파워와 야성이 아빠 안에 존재한 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진지하고, 심각하고, 때로는 화가 난 듯이 보이는 신중하고, 고요한 아빠에게도 한때 “와 아아아아 아” 하고 소리 높여 열창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헤비메탈에 심취하고, 일렉트릭 기타를 쳤었다는 아빠의 청소년 시기는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좋아하던 음악이 직업이 되지는 않았지만, 아빠의 삶은 음악이 가득하다.
“제시 노먼은 원래 소프라노 가수지만 음역이 워낙에 넓어서 메조소프라노 영역까지 다 소화했어.
플라시도 도밍고처럼 테너로 활동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바리톤의 역할까지 했지만, 이런 분들은 세기에 한 명 날까 말까 한 천재인 거고, 쉽지 않아.
휘트니 휴스턴도 메조소프라노인데 음역을 높여서 소프라노까지 불렀어. 하지만 나중에 성대에 큰 무리가 가서 아름답던 목소리가 망가졌어. 안타까운 일이야”’
계절에 따라,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아빠의 플레이리스트는 어쩌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허기와 같이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아빠와 함께 음악을 듣고, 음악과 음악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