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Dottie Kim 글 : Mama Lee
나는 낯을 가린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어깨가 움츠러든다.
어떤 상황이든 제발 나를 아는 체하지 말고,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린다.
어렸을 때도 모르는 사람들이 시선과 기대가 너무나 부담스러워, 자기소개나 발표 수업이 가장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나는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낯선 사람의 얼굴이 익숙해지고, 그 사람의 목소리, 행동, 유머, 생각, 근황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 노출되면,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구석에 조용히 서서 벽과 내가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한다.
무리를 이끌거나,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는 것은 극히 피하는 일이다.
과다하고, 복잡한 관계가 부담스럽고, 배경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사람을 알아가고 친구가 되기 위해 수많은 망설임과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와 결이 맞는 누군가가 먼저 나를 친구로 간택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그렇게 나 자신을 은폐 엄폐 하였는데도, 용케 나를 찾아내고, 직진으로 다가와 아는 체하는 이들이 있다.
“안녕. 나는 밝음이야. 우리 오늘 처음 만난 건가? 넌 어디에 살아? 먹는 건 뭐 좋아하니? 이따 쉬는 시간에 같이 놀래?” 대답을 고민하는 시간도 주지 않고 질문을 쏟아낸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망울은 나의 단단한 긴장과 두려움을 노곤하게 만든다.
벽과 하나가 되었다는 상상은 깨어지고, 조심스럽게 이름 정도를 대답한다.
대화가 시작되면, 여름날 얼음처럼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녹아내린다.
밝고 다정한 이들의 관심이 지속해서 이어지고, 내가 지속해서 답변하게 되면, “낯선” 이 아니라 “익숙한”이 되고, 친구가 된다.
사람들과 세상을 탐험하는데 주저하는 편이지만, 도전적인 마음이 드는 때가 있다.
거대한 어둠이 내려, 주변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나조차도 도드라지지 않는 상황이 되면, 무섭기도 하지만 불쑥 용감해진다.
또래 친구들에게 다가가 즐겨 쓰는 줄임말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깔깔 웃을 만한 농담도 던진다.
나를 아직도 순둥 아기처럼 여기는 엄마에게는 불손한 단어를 쓰며 허세를 부린다.
언제나 “그래, 그러자, 알았어, 네” 의견 없이 수용의 자세를 보였지만, 갑자기 온갖 이유를 붙이며 “싫어, 그건 맘에 안 들어”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평소와 다르게 큰 소리로 말하고, 큰 소리로 웃고, 큰 소리 화내고, 큰 소리로 운다.
가끔은 내가 누구인지 환하게 보이는 낮보다는 화려한 세상이 무채색으로 변하는 밤의 시간이 편안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밤의 어둠이 세상을 덮으면, 나는 움츠렸던 어깨를 쫙 펴고 스르륵 미끄러지듯 탐험을 시작한다.
여전히 나 자신이 너무 도드라지지 않게, 실루엣 정도만 확인할 만큼의 용기를 내서.
적극적으로 낯선 세상의 구석구석을 발견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