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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위생적인 책상 정리

그림 : Dottie Kim 글 : Mama Lee

by kimleekim

채우고 모으는 것보다 비우고 버리는 것에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다.

용기가 부족할 때는 억지로 구석에 몰아넣고 끝까지 열어 보지 않는 상자를 하나 준비하면 되겠다.



아이 방의 문을 열고 책상을 볼 때마다 엄마는 깜짝 놀란다.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많은 물건을 끌어모아서, 바늘 한 땀의 틈도 없이 펼쳐 놓을 것인지, 엄마는 짜증이 났다.


일단 카테고리를 정할 수 없는 각기 다른 각도의 물건들을 보자, 솜털이 우르르 일어서는 듯했다.

모양과 용도에 규칙이 없는 화장품, 리모컨, 포스트잇, 물티슈, 머리핀, 머리카락이 얽혀 있는 브러시, 알맹이가 사라진 껌 포장지 등이 널브러진 모습에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적당히 구분하여 몰아 놓자고 설득해도, 나름의 규칙으로 정리된 상태라 우기는 아이의 궤변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먼지 구덩이에 빠진 책상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버리려고 베란다에 꺼내 둔 검은색 선물 박스를 들고 왔다.

한숨을 크게 쉬고는 겹치지 않게 모두 상자에 넣었다. 먼지떨이와 거즈 손수건을 들고 물건마다 먼지를 털어내고, 윤기 나게 닦았고, 지저분한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떼어내서 뭉쳐 버렸다.


하얀 나무 책상이 원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의 면적이 드러났다.

엄마는 알코올 스프레이를 쫙 뿌리고, 마른걸레로 샤프심 얼룩과 흘러내린 음료의 흔적 등을 말끔하게 지워냈다.

그리고, 직사각형 검은색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아, 1센티미터쯤 여유를 두고 책상 구석에 놓았더니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졌다.

물건의 용도와 위치, 놓여있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루 동안 한두 번쯤 혹은 더 자주 사용할 물건들을 책상 위에 두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에 절대 동의한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과, 버려진 껌 포장지까지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진열된 것은 참을 수가 없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을 본 아이는 기겁했고, 불평불만을 토해냈다.

이럴 때 설득의 시도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엄마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강경하게 규칙을 선포한다.


매일 쓰는 물건은 책상 위 바구니에,

필요하거나 필요할 것 같은 것

기억하거나 기억하고 싶을 것 같은 것

손, 마음, 인지 속에 남아 있을 것 같은

소소한 상황을 보관하는 유일한 타협은 상자에 담아 한쪽 구석에 담아 두는 것!


모든 잡동사니는 보기에 안 좋은 것은 둘째이고 먼지와 오염물로 벌레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위생의 이유로 무조건 깡그리 치워진다.


위생을 이유로 삼으니, 아이의 입이 꾹 다물어진다.

잠시 조용하던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살펴보니, 위생적인 책상 정리를 그렸다.

마치 반항처럼 온갖 잡동사니를 한구석에 몰아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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