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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주쿠와 다이칸야마 속 랜드마크의 진심

도쿄 여행의 명분

by 작은공원

도쿄에서 둘째 날은 11월 중순임에도 유난히 따뜻했다. (20도가 넘었으니 더웠다고 해야 하나?)

날씨가 좋은 만큼 도쿄에서 꼭 가봐야 한다는 하라주쿠와 다이칸야마의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하라주쿠는 1970년대 시부야 일대에서 일요일마다 거리 공연이 펼쳐지면서 함께 성장한 곳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의 쇠퇴 없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반면, 다이칸야마가 뜨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2012년 3월 츠타야 T-Site가 들어선 후 조금씩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다가 2019년에 이르러 빛을 보게 된 동네다. 이곳은 도쿄의 전통적인 부촌 지역인데, 그래서일까 복잡하지만 정리된 골목과 값비싼 소품을 파는 상점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두 곳은 시부야를 가운데로 두고 서로 대각선에 위치해 있는데, 먼저 도착한 역은 하라주쿠였다. 개찰구를 나와 오모테산도 쪽으로 걸어가면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는 건축물이 나온다. 바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도큐플라자 건물이다. 하나는 하라카도 도큐플라자, 다른 하나는 도큐플라자 오모테산도. 하라카도 도큐플라자는 외관 전체가 거울과 같은 프리즘 형태로 되어 있으며, 도큐플라자 오모테산도는 입구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감싸고 있는 외관이 다면체의 거울파편으로 되어 있다.


도큐플라자 오모테산도(좌)와 하라카도 도큐플라자(우)


이 두 건물이 거울과 같은 외관을 사용한 이유는 오픈 당시 진행했던 건축가 '히라타 아카히사'의 인터뷰를 통해 예측해 볼 수 있다. '히라타 아카히사'는 인터뷰에서 '단순히 제품을 파는 쇼핑몰을 넘어 하라주쿠의 지역적 맥락을 부활시키는데 의의를 두었다.'라고 말했는데, 이를 통해 건축물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1970년대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거리의 연속성이다. 당시 하라주쿠의 랜드마크는 '센트럴 아파트'였는데, 이 아파트의 외관이 거울로 되었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하라주쿠의 정체성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하라주쿠는 만든 것은 바로 '패션'이다. 패션의 성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옷과 가방 등 패션 아이템 다음으로 무엇을 가장 많이 보았겠는가. 바로 '거울'일 것이다. 그 거울을 건물 외관으로 표현해 하라주쿠를 표현한 것이다.


도큐플라자 두 건물을 보고 조금 더 내려다가 보니 하라주쿠의 또 다른 랜드마크 '오모테산도 힐즈'를 만났다. '오토메산도 힐즈'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곳으로 하라주쿠역에서 오모테산도로 이어진 경사길을 건축물이 녹여내고 있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건물 내부의 복도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이 때문에 건물에 들어서도 오모테산도의 쇼핑 거리를 그대로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나온 것 같은 기분으로 반전 효과를 주는데 이 모든 것이 하라주쿠의 아이덴티티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디올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 건물들이 하라주쿠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데, 실제로 방문해서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것을 추천한다.



하라주쿠의 산책을 마치고 조금 늦은 오후 무렵 다이칸야마에 도착했다. 다이칸야마역은 명성에 비해 매우 협소한데, 이 역시 마을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 다이칸야마는 도쿄의 전통적인 부촌이었다. 하라주쿠처럼 쇼핑과 관광으로 성장한 곳이 아니라 부자들의 거주지역이다. 따라서, 정돈되어 있는 작은 길들 사이에 주택들이 들어서있는 형태다. 그러다 보니 다이칸야마역은 마치 간이역처럼 주택과 어울려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표시된 발판 위에 주차를 해야만 반납이 된다고 한다.


역을 나와 나의 시선을 훔친 건 랜드마크도 상점가도 그날의 날씨도 아닌 바로 건물 자투리 공간 바닥의 선과 그 위에 나란히 세워진 전동 킥보드였다. 역 근처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해놓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나의 생각은 틀렸다. 다이칸야마의 구석구석 자투리 공간마다 전동킥보드를 세워 놓게 만드는 선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전동킥보드 주차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특히, 성수동을 비롯해 종로 거리를 걷다 보면 무분별하게 세워진 전동킥보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자투리 공간을 이와 같이 활용해 보는 건 어떨까?


T모양의 벽돌로 T-Site를 지속 전달하고 있다.

질서 있게 세워진 전동킥보드에 감탄하며 향한 목적지는 다이칸야마의 상징 츠타야서점 T-Site였다. 이곳은 지금의 다이칸야마를 만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곳으로 츠타야의 변화하는 철학을 지속해서 볼 수 있어 현지인을 비롯해 다양한 관광객이 찾고 있다. 그래서 나도 츠타야서점에 들러 셰어라운지를 이용하며 주변과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제일 먼저 감탄한 것은 다름 아닌 벽돌이었다. 벽돌 하나하나가 T 모양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곳이 T-Site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노출해 주고 있었다. 그다음은 뒤섞임 속에 질서였다. 이곳에는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생활 용품을 판매하고 있었고, 2층에는 레스토랑, 커피숍이 들어가 있어 이곳이 서점이라는 것을 종종 잊게 만들었다. 그리고 셰어라운지는 책을 보는 사람, 휴식을 취하는 사람, 업무를 보는 사람 등 각각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듯했다. 특히, 프리랜서로 보이는 직장인들이 자녀를 데리고 와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츠타야의 문화 속에서 책을 보고 쉬면서 부모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세대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가 되면 과연 어떤 문화를 만들까?라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생기는 부분이었다.

츠타야서점 T-Site는 라이프스타일 복합공간이다.

1시간 정도 셰어라운지를 즐긴 후 츠타야서점 T-Site를 나오니 어느덧 해가 어둑하게 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여전히 여유와 활기가 넘치고 있었는데, 이러한 여유 속에 활기.. 이것이 다이칸야마의 정체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성수동을 비롯해 우리나라 몇몇 지역을 중심으로 아이덴티티를 살린 거리와 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자칫 대기업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만 담긴 것으로 보인다면 그 거리는 죽게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신사 가로수길 메인 거리처럼 말이다. 따라서, 아이덴티티가 담긴 거리를 만들 때 하라주쿠, 오모테산도, 다이칸야마의 거리를 참고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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