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의 명분
도쿄에서 셋째 날, 나는 치바현에 위치한 도쿄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도쿄 인사이트 여행을 하면서 하루 전체를 디즈니랜드에 쓴다는 것이 처음에는 '시간 아까운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남녀노소 줄 서서 방문하는 도쿄 디즈니랜드에는 분명 생각하지 못한 인사이트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방문에 앞서 먼저 디즈니랜드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는데, 세심하게 설계된 지도와 정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각각의 어트랙션마다 웨이팅 시간이 실시간으로 반영되어 있었고, 빠르게 방문할 수 있는 표를 추가 요금을 받고 판매하고 있었다. 이것은 DPA(Disney Premier Access)로 나에게 인사이트를 줄지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무튼 아침 9시, 열차에 몸을 싣고 도쿄 디즈니랜드에 다 닿았을 때, 각양각색으로 자신을 디즈니랜드의 굿즈로 꾸며놓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MZ세대의 '다꾸문화'와 2025년 트렌드코리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옴니보어(다양한 취미를 보유하며 집단보다는 개인의 취미에 방점을 두는 것)'가 생각났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각자의 지위와 위치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디즈니랜드를 즐기기 위해 자신을 꾸미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모습이 디즈니랜드 밖에서까지 이어지며 '옴니보어'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도 질세라 디즈니 모자를 쓰고 액세서리를 구매해 디즈니를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표현하며 하루종일 다녔다.
디즈니랜드 입구를 지나 큰 광장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핫도그와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을 발견했다. '왜 여기까지 와서 폰만 바라보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내 나 자신도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보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던 DPA 때문인데, 인기 어트랙션을 대기 없이 빨리 타기 위해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예약하기 위해서였다. 빠르게 들어가기 위해 인원과 시간을 제한해 두었기에 늦으면 이것도 구매할 수 없어 모두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아! 이것이 토핑경제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 비용만 내고 나의 시간과 체력을 쓰면 어트랙션을 즐길 수 있음에도 보다 빠르고 편하게 이용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추가 비용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어떤 이용자의 후기를 보니 '10만 원이 넘는 입장권을 지불하고, DPA를 추가로 여러 장 구매하다 보니 입장권보다 넘는 추가비용을 사용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데, 최근 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요아정의 '토핑 추가하다 보면 1억까지 나올 듯'이라는 말과 무척 닮아 있었다. (나도 시간이 금인 여행객이기 때문에 인기 어트랙션 '미녀와 야수'를 DPA로 구매했다..)
어트랙션에 빠졌던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주변을 바라보니 또 하나의 문화가 보였다. 일본 Z세대로 보이는 학생들이 너도나도 카메라를 세워두고 챌린지를 하고 있던 것이다. 디즈니랜드를 배경으로 삼아 또 하나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던 것인데, 좋은 콘텐츠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낸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던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야간 퍼레이드를 중간 정도까지만 보고 남들보다 조금은 일찍 나왔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나와 똑같이 서둘러 나온 중년의 여성과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를 마주했는데, 소녀 같은 표정을 지으시며 너무 즐거웠다는 말을 하고 계셨다.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만들 수 있는 것. 이것이 '콘텐츠의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