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라푼젤 풍등보다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나는 상식이 좀 부족하다. 게다가 어지간한 성인이면 노력할 법도 하거늘, 무식함을 숨기거나 보완하려는 의지까지도 부족한, 다소 뻔뻔하게 무식한 스타일이랄까. 그래서 여행을 갈 때도 역사적 배경이라거나 전통적 풍습, 랜드마크 등을 공부하고 가기보다는, 어디에 가야 색다른 경험(주로 노는 것)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만을 알아본다. 치앙마이도 마찬가지. 최소한의 여행 준비만을 하면서, 11월이 치앙마이 극성수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왜 그런지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직접 와보니 날씨가 아주 좋다. 동남아답게 해가 뜨거워 실외에 오래 있기 어렵기는 하지만 습하지 않고, 바람도 기분좋게 살랑살랑 분다. 그래서 인기는 날씨 때문이었구나, 했다. 그리고 재즈 페스티벌을 한다기에, 날씨가 좋으니 축제도 신나게들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유명하다는 ‘러이끄라통’을 당일(11월 28일)로부터 닷새 전쯤이 되어 심상치 않은 도시의 분위기를 감지하고서야 찾아본 것이다.
러이끄라통(Loi Krathong)이란, ’타이력 열두 번째 달의 보름날(올해는 11월 28일) 저녁 강물 위로 배를 띄워 보내며 물의 신에게 행복을 기원하는 민속 축제‘란다. ‘로이’(Loi)는 ‘띄워 보내다’를, ‘끄라통’(Krathong)은 ‘(떠 있는) 배/장식’으로, 배/장식을 띄워보낸다는 뜻. 사실 러이끄라통은 치앙마이 뿐 아니라 태국 전역에서 진행되는 축제이고, 그 중에서도 러이끄라통으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수코타이(Sukhothai)란다. 치앙마이 고유의 축제는 태국북부 란나 왕국에서 기원한 이뼁(Yi Peng)인데, 축제일이 러이끄라통과 같다. 이뼁의 풍습으로 풍등을 하늘로 띄워보내는데, 이 풍습은 수많은 풍등이 밤 하늘을 가득 채운 장면이 애니메이션 <라푼젤>의 모티브가 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나는 의도치 않았지만 운좋게 축제기간에 치앙마이에 왔다는 기쁨보다는(그런 기쁨도 분명 있었지만), 내가 머무는 기간 축제를 한다니 가봐야하지 않나 하는 의무감과, 축제현장의 인파와 소란 속을 내 발로 걸어들어가고 싶지 않은 저항감으로 심적 갈등을 더 크게 겪었다. 만약 내가 여행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영상을 찍지 않았더라면 조용히 혼자 님만해민 숙소에서 쉬는 것을 선택했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내가 올초부터 모토로 삼아온 것이 ’Take More Chances, Dance More Dances‘. 계속 똑같이 살고 싶지 않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일들에 부딪쳐 나아가야만 한다.
문데이라 아쉬탕가 요가원에서는 문 시퀀스(Moon Sequence)라는 좀 더 릴랙스한 요가를 할 거라고 해서, 옴 가네샤로 갔다. 9시 수업과 11시 수업 두개를 연달아 듣고, 집에 돌아와 씻고 준비하고 며칠전 못가본 Twenty Mar를 택시타고 갔다. 그전까지 마신 더티커피는 다 가짜라더니, 내겐 별 감흥이 없었다. 단맛이 없어 깔끔하긴 한데, 에스프레소에서 오래된 원두의 산패된 잔향을 남기는 것 같았다. 밥이나 제대로 먹자 싶어 식당을 검색해보니, 반 란다이 파인 키친(Baan Landai Fine Kitchen)은 월요일 휴업이라 한다. 빕구르망 맛집 SP Chicken에 다시 도전했는데, 여긴 영업시간 두시간 전인 3시에 방문했는데도 또 재료소진이다. 이 정도면 영원히 먹지 말라는 계시가 아닐까. 조기 재료소진으로 못 먹은게 벌써 세번째다.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미슐랭 맛집을 찾아보니 Rote Yiam이라는 우육면집이 나온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이십분가량 걸어가다 식당이 가까워지니 기억이 났다. 작년에 남편이랑 같이 왔던 곳이구나. 양이 너무 많아 결국 절반은 남기지 않을까 했는데, 고수 한 가닥이라도 남길세라 깨끗이 비웠다. 국물을 원샷하지 않은게 다행이랄까.
저녁의 행사 시간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Neighbors Community라는 식당가로 들어갔다. 외부로 뻥 뚫린 2층과 3층의 개방감이 좋다. 2층에서 맥주 주문을 하려니 법 때문에 오후 5시 이후에나 팔 수 있단다. 아 그랬지. 단념하고 제로콜라를 주문해 야외에 앉았다. 책을 좀 읽으려는데 불현듯, 풍등은 정확히 어느 지점에 가야 가장 잘 보일까 싶다.
축제 당일에서야 검색을 하니, 이게 무계획 여행의 말로인가 싶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치앙마이 시내에서는 풍등 날리기가 금지되어있으므로, 제대로 된 풍등 행사를 즐기려면 티켓(한화 10~20만)을 구매해서 유료 행사 현장에 가거나, 외곽의 도이사켓까지 가야한다. 행사 첫날에 풍등을 많이 날리므로 이튿날보다 훨씬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단다. 지금이라도 도이사켓을 갈까? 그랩과 볼트를 확인했다. 역시나 극성수기의 치앙마이에 모여든 여행자들이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볼트는 아예 호출옵션이 아무것도 선택되지 않고 그랩은 편도가 500밧에 육박한다. 썽태우(트럭을 개조한 미니버스)가 300밧. 돈이 아까워서였을까, 귀찮아져서였을까. 꼭 육안으로 봐야만 하는 것은 아니잖은가, 단념해버렸다.
오후 다섯시를 기다려 생맥주(스텔라 아르투아 250ml, 110밧)를 한 잔 앞에 두고 책을 읽다, 여섯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법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랜드마크 중의 랜드마크, 모든 행사의 시작점이라는 타패 게이트(Thapae Gate)로 향했다. 타패 게이트에 가까워질수록, 축제를 기대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타패 게이트 앞에서도 무슨 공연을 한다더니 나름 큰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타패 게이트는 오색찬란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너도나도 핸드폰을 들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고보면 이 세상이 많이 평등해진 것 아닌가. 1인 1카메라가 당연한 일이 아니었던 때(라떼), 나도 디지털카메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소망했던 때도 있었다.
둘째날 퍼레이드 규모가 훨씬 크다고 미리 들어서일까. 그래도 수백명이 동원되고 다양한 컨셉으로 진행되는 퍼레이드라는데, 약 오분에서 십분 정도 두 팀의 행진을 보니 이제 다 봤다는 느낌이 든다. 핑강에서 끄라통을 띄우는 거나 보러 가야겠다.
마침 가는 길에 Rotee Pa Day라는 빕구르망 로띠(크레페와 비슷하지만 더 기름지고 바삭하게 튀겨내는 디저트) 스탠드가 있다. 배는 부르지만 여행가라면(???) 미식을 지나칠수야 없지. 스탠드를 중심으로, 오른편 길가의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 스탠드 정면과 왼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래도 대기 줄과 가장 비슷해보이는 것은 목욕탕 의자 무리 앞,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이다. 대기 줄의 꼬리를 물고, 바로 앞에 서 있는 서양인 커플에게 확인 차 주문 줄이 맞는지를 물었다. 환하게 웃으며 그렇단다. 그렇게 오분쯤 지났을까. 훤칠한 동양인 청년이 다가와 내게 묻는다. 이게 주문 줄이 맞나요? 나도 환하게 웃으며 긍정의 답변을 주었다.
약 십분에서 십오분을 더 서 있는데, 앞에 있던 서양인 여자가 스탠드 앞으로 가서 종이쪼가리를 들고 일행 남자에게 왔다가 종이에 뭔가를 쓴다. 종이를 어딘가로 다시 가져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다. 좋지 않은 예감. 다시 한번 그들의 등 뒤에서 "주문을 어딘가에 써서 줘야하니?" 라고 물었다. 나는 혼자라 대기줄을 이탈해서 보고 올 수도 없다. 그런데 서양인 커플은 다시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못 들었나, 목소리가 작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자 그 커플보다도 더 앞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머뭇거리다 나를 돌아보고, 전방을 가리키며 "응, 저기 종이에다가 쓰는거야." 라고 알려준다. 이런 일렬 줄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구나.
운집한 사람들을 헤집고 가서 보니 과연 손바닥만한 흰 노트패드가 있고, 그 옆으로 역시나 한뼘 정도로 위로 솟은 길다란 쇠꼬챙이가 있다. 파스타면 정도의 굵기에, 끝부분은 예리한 꼬챙이가 편평한 바닥위로 솟은 물건인데, 태국에서는 이 물건에 온갖 지류를 꽂아 정리하는 것 같다. 마사지샵에서 영수증을 그 꼬챙이에 (쳐다도 보지 않고) 꽂는 것을 보고 저러다 손다치지 싶어 아찔했는데, 그 후부터 음식점을 포함한 모든 사업장에서 같은 방식으로 지류를 보관, 정리하는 것이 눈에 띈다. 나는 버터 로띠 1개를 정자로 적은 종이 양 끝을 두 손으로 잡고서 꼬챙이에 조심히 끼웠다. 그러고선 그제야 여유롭게 스탠드를 요모조모 훑어보기 시작했다. 로띠를 부쳐내는 현장으로 가까이 다가가 동영상을 찍어도 되겠느냐 물으니, 이마에 투명 플라스틱 기름 가리개를 하고 계신 할머니가 밝게도 웃어주시며 그러라신다. 그러고보니, 이 분, 뜨거운 기름이 번들거리는 철판 위에서 열심히 두 손을 놀리면서도 얼굴은 연신 미소를 띠고 계시다. 로띠 한장을 만원, 이만원에 파시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먹은 버터로띠는 겨우 25밧, 천원 돈이다. 온갖 재료가 들어가 가장 비싼 로띠도 45밧에 불과하다.)
아까 그 훤칠한 동양인 청년도 가짜 대기줄에서 이탈해 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잘난체하며 잘못된 정보를 준 게 내심 미안한데, 그렇다고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가 사과를 할 수도 없는 일. 그렇게 이십분 정도는 더 서 있었을까. 얼굴이 까맣고 체구가 호리호리한 소년이 내가 쓴 종이를 들고 누구의 것인지 묻는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초등학생 마냥, 한 손을 높이 들고 저요! 했더니 25밧, 이라고 해서 돈을 건넸다. 로띠와 동시에 맞바꾸리라 기대했지만 천만에. 또 영겁의 시간을 기다린다. 아, 이런 시스템이구나. 돈 내는 순서가 왔을 뿐이구나.
그러고보니 훤칠한 청년이 이제는 내 바로 옆에 서 있다. 청년도 주문을 잘 했는지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아까는 헷갈리게 해서 미안했어." 그러자 그는 해사하게 미소지으며, 내가 종이에 쓰는 걸 뒤에서 보고 똑같이 따라 주문했단다. 그렇다, 그는 얼굴이 막 핀 봄꽃처럼 보이도록 하는 해사한 미소를 자아냈다. 젊은이가 성격이 좋기도 하지. 이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데, 얼굴과 표정, 억양이 한국인은 아니다. 어느나라에서 왔을까. 결국 참지 못하고 물어보니 대만에서 왔단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알려주니, 한국 영화를 아주 좋아한단다. 그러면서 아주 좋았던 영화(movie)가 있는데, 한국 이름을 모른다면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 '영화'(드라마)는 <무빙>. "그거 완전 최근 거잖아, 나도 그거 좋았어." 혼자 여행하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알려주니 본인도 혼자란다.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만화책에 나오는 소년같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는 대만의 남쪽 도시 출신이지만, 타이페이에서 일한지 몇년 되었단다. 그럼 이십대 중후반은 되었겠다.
드디어 내 로띠가 나왔다. '나는 핑강으로 끄라통 보러 가는데, 너도 핑강 가니?'라는 질문을 일이초 고민하다 삼켜버렸다. 그보다는 쿨하게 손바닥을 보여주며 "재밌게 여행해!"라고 인사하자, 그도 축복을 돌려준다.
핑강으로 가는 길, 바나나잎과 각종 꽃으로 꾸민 끄라통들을 팔고 있다. 가격은 30밧. 그러고보니 많이들 양손에 끄라통을 받치고 걷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 그래도 정신 없는 와중에 꽃장식까지 정성스레 들고 다니는 것은 생각만 해도 버거워 엄두를 낼 수 없다. 구경만 해야겠다. 그래도 사람들이 나름의 질서를 지키면서 걷고 있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내가 (중국)대륙에 너무 오래 살았나. 쫄았던 것 대비 걸을만 한 것 같다.
핑강에서도 나라왓 브릿지 (Narawat Bridge) 부근이 예쁘다고 했다. 과연 현지인들과 외국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순서를 기다려 강에 끄라통을 띄운다. 강 위를 한들한들 줄지어 내려가는 촛불들이 아름답기도 하다. 다시 다리 위로 올라오니, (시내에서는) 법으로 금지되었다던 풍등 날리기가 성황리에 자행되고 있다. (이 날 불법 풍등 날리기 때문에 와로롯 시장에 불이 났다고...) 대부분은 서양인들이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덕분에 풍등이 허용된 외곽지역 (도이사켓)까지 가지 않고도 풍등을 직접 볼 수 있어, 나 같은 구경꾼에게는 어부지리다. 풍등의 양 끝을 붙잡고 있던 손을 조심스레 하나, 둘 뗄 때 풍등이 둥실, 떠오르는 장면은 확실히 감격스러운 데가 있다. 하늘과 물 위에 뜬 불빛무리, 폭죽소리와 불꽃까지. 낭만적이다. 다리 위에서 잠시 머물렀다.
집까지는 걸어가려고 일찍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다. 가는 길에 노스게이트가 있으니 자리가 있으면 앉았다 가야지, 했던 것을 두시간은 족히 앉아있다 왔다. 맨 앞줄에서 직관하자니 도무지 일어서기가 아쉬웠던 것. 물론 옆에 딱붙어 앉은 우크라이나계 이탈리안 아저씨가 내게 "넌 정말 아름답구나"라며 망발을 던지고, 재즈 가락과는 불협화음인 가족오락관 박수를 칠 때, 못 참고 중간에 도망나올 뻔 했지만.
둘째날까지 가야하나, 고민 끝에 올드타운에 나갔다. 종일 어느것 하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인터넷 카페 '태사랑' 에서 와로롯 시장에 구경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던 것 같아 와로롯까지 갔는데, 특별한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잠시 쉬려고 들어간 차트라뮤 지점이 (주문 후 십분만에) 문을 닫아버려 음료만 들고 나와야했다. 이어 재즈펍 타패 이스트 (Thapae East)의 공연도 경험해보겠다며 야심차게 찾아갔는데, 맥주(Lao IPA, 120밧)를 시켜 한 시간 동안 기다리고서야 그날은 공연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꾸역꾸역 타패 게이트까지 다시 걸어 퍼레이드를 관람했는데, 화려하고도 성대한 퍼레이드가 계속되었지만 이내 그것이 그것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 위로 길게 뻗어올린 핸드폰 화면 사이사이로 화려한 행진이 보이지만, 결국에는 금, 은, 빨강, 분홍의 색 조합과 궁전, 용, 꽃, 미남, 미녀의 조합으로 좌뇌에서 빠르게 정리되어버린다. 지친 심신은 흥겹게 울리는 음악소리마저 태국전통 배경음악이라는 대분류로 손쉽게 유형화해버리고 만다.
전날처럼 끄라통을 정성스레 들고 걷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핑강을 또 가볼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냥 로띠를 한번 더 사먹었다. 누텔라 로띠(25밧)를 먹었는데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다. 그래, 믿을 건 먹을 것 뿐이다.
집으로 걸어 돌아가는 길, 재즈에 약간의 화가 난 상태였으므로(???) 노스게이트는 내키지 않았다. 대신 창푸악 야시장에 들러 족발을 사먹었다. 배불러서 밥까지 먹겠나 싶어 족발만 주문. 70밧이었다. 부드럽게 스르르 뭉개지는 맛이 일품.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그러고선 슈퍼에서 맥주 한캔을 사들고,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차도 옆을 걷고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반대 방향으로 한참 갔다가, 인적이 너무 드물어 쎄한 기분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온 것은 안비밀.)
이틀간 용기내 도전했던 축제 관람의 결과, 가장 긴 여운을 남긴 것은 불빛이 수놓은 밤하늘도, 강물도 아니었다. 그저 사소한 친절이었다. 내 눈을 보며 아무런 의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웃어주는 친절. 나도 다른 사람에게 한 번이라도 그런 친절이었던 적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