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요가원에서 만난 포르투갈인
수요일, 처음으로 Ashtanga Yoga Chiangmai라는 요가원에 갔다. 집에서 걸어가면 20분 정도밖에 안 걸리지만, 수십번 간 길도 헤매는 길치이다보니 첫 수업에 늦기는 싫어 그랩의 바이크택시를 탔다. 고작 33밧. 그런데 헬멧도 쓰지 않고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자니 좀 무서웠다.
내가 스쿠터조차 타지 않는 이유는 면허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대학 때 고등학교 선배 오빠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받은 충격을 못 잊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바이크택시를 탈 거면 스쿠터를 직접 운전하지 않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차체의 보호 없이, 엔진으로 빨리 달리는 이륜차를 헬멧도 쓰지 않고 타고 있다는 생각에, 얼른 요가원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한국에서 자전거를 탈때조차 반드시 헬멧을 쓰는 쫄보 아니던가. 다행히 걱정이 무색할만큼 십분도 걸리지 않아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랩 기사가 오토바이를 멈춰세우고, 이곳은 자기가 사는 아파트인데 여길 오려던 것이 맞느냐고 묻는다. 49 Living Apartment. 요가 선생님이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무슨 Living Apartment로 오면 된다고 하기는 했는데…. 우선은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핸드폰을 붙잡고 구글맵과 페이스북 메신저를 들여다보며 뚝딱거리고 있자, 등 뒤에서 스쿠터를 탄 서양인 남자가 “저쪽이야”라고 손가락질한다. 나는 앞머리가 약간 희끗한 그에게 호호호 미소를 지어보인 것과 달리, 속으로는 ‘내가 뭘 찾는 줄 알고?’ 하며 발을 떼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Yoga?” 하고 묻는다. 어떻게 알았지? 요가레깅스를 입고 요가매트를 멘 채, 의아했다.
스쿠터 남자 덕분에 요가원을 바로 찾을 수 있었는데, 이렇다할 간판도 없이 아파트 상가 1층에 있었다. 10회권을 2400밧 주고 결제한 뒤, 매트를 깔고 앉아있으려니 아까 그 스쿠터 남자가 요가원으로 들어선다. 내가 뒤쪽에 매트를 깔때는 아무 말 없던 선생님이, 그가 뒤쪽으로 매트를 들고 오자 그에게는 앞으로 가라고 한다. 실력자인가. 그가 매트를 깔면서 뒤를 돌아보고 넌 어디에서 왔냐 묻기에 대한민국에서 왔노라 알려주었다. 그러는 너는 어디에서 왔니? 묻자 포르투갈에서 왔단다.
- 야 나 12월에 포르투갈 가는데!
- 포르투갈 어디?
- 포르투에서 한달 살고 리스본에서 열흘 있을거야.
- 나 리스본에서 왔는데.
직후에 선생님이 내게 말을 걸었던가, 아니면 수업을 바로 시작했던가. 대화는 거기에서 끊겼다. 그는 과연 실력자였다. (뒤에서) 그가 프라이머리 시리즈 뒷부분의 어려운 동작까지 다 해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내가 배운데까지만 하고 먼저 일어섰다. 둘째날도 마찬가지. (그랩택시가 쉽사리 잡히지 않아) 수업시작에 임박해 도착해서는 일찍 나왔다.
셋째날인 오늘, 금요일은 구령수업 (Led Class)이었다. 평소 각자의 페이스대로 시퀀스를 진행하는 마이솔과 달리, 구령수업은 말 그대로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참가한 전원이 동시에 동작을 진행하는 수업이다. 대부분 요가수업이라고 하면 떠올릴만한, 전형적인 수업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바이크택시는 위험 해서(하게 느껴져서), 그냥 택시는 잘 안잡혀서 걸어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씽크파크(Think Park) 옆을 지나는데, 앞서 걸어가던 분홍색 레깅스를 입은 동양인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Yoga?” 어떻게 알았지? 오늘은 레깅스도 아닌 하렘팬츠를 입고 있는데다 요가매트도 요가원에 두고 왔는데. 내가 어벙벙한 표정을 짓자 “Ashtanga yoga?”라고 재차 묻는다. 이 부근에서 아쉬탕가 요가원은 한 곳 뿐이다. 어떻게 알았니? 라고 물으니 나를 봤다고 한다. 아~ 요가원에서 나를 봤다고? 되물으니 말을 잘 못알아듣는 눈치다.
어쨌거나 자신있게 걷는 자세를 보아하니 길을 잘 아는 듯하다. 이 사람을 따라가면 되겠군. 마야몰 앞 사거리, 기다릴때마다 고장난 것이 아닌가 의심될만큼 신호가 바뀌는데 오래 걸리는 신호등을 기다리려는데, 여자가 좌우를 살피다 과감히 발을 내딛고, 씩 웃어보이며 내게 손짓한다. 이렇게 듬직할 수가 없다. 태국인인지 물으니 그렇단다. 역시.
요가는 얼마나 오래했는지 물으니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두 손바닥을 맞대었다가 벌려 보이며 "하우 롱~, 하우 머치 타임, 해뷰빈 프랙티싱 요가?" 하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열 손가락을 펼쳐보이고 “텐”이라고만 알려준다. 십개월? 설마 십년? month도, year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포기하기로 했다. 어제 나를 봤다는데, 나는 그녀가 기억나지 않아 무슨 요일마다 나오는지를 묻자, 그것도 질문이 어려웠는지 대답을 머뭇거리기에 먼데이부터 썬데이까지 예시를 주려고 했다. 먼데이? 라고 물으니 완짱~ 이라고 한다. 완짱이 먼데이란 뜻인가. (나중에 요가원 선생님께 여쭤보니 그렇단다.)
여자가 중얼거리는 혼잣말의 군데군데서 자꾸만 중국어 단어가 들리는 것 같다. 미친척하고 다짜고짜 중국어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할 수 있단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이민 화교 2세대로, 부모님이 중국어를 쓰셔서 중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한다. 요가는 열번 조금 넘게 수업에 간 게 다고, 어제 수업에서 나를 봤단다. 요가원에는 백발의 중국인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시는데, 그 분이 추천해줘서 다니기 시작했단다. 시작한건 꽤 되었지만 너무 바빠 자주는 못 나왔다고. 본인도 원님만 근처에 산단다. 드디어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잡초가 무성한 지대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는 그녀를 뒤쫓아 가는데, 그녀가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식당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온통 태국어로 쓰여져 있는 현수막을 보며 혼잣말을 한다. 할인 행사라도 하는건가? 이윽고 다시 걷기 시작한 그녀가 그 가게의 카오소이와 남니우가 맛있다고 알려준다. 현지인과 함께 걸으니 과연, 금세 요가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여자를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그들의 태국어 대화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선생님 말에 멋쩍어하는 여자를 보니 여자는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성 싶다. 아쉬워하는 여자를 돌려보내고서, 선생님이 그녀는 아직 수리야나마스카라 (태양경배)와 스탠딩 시리즈 몇개만을 배웠을 뿐이라 구령수업을 따라올 수 없다고 알려준다. 의도치 않게(미안하게도), 그녀가 본인은 참가하지도 못할 수업에 나를 데려다 준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선생님은 오늘 참가할 수련생들을 실력과 진도에 맞춰 그룹핑하고, 자리를 세 개 구역으로 나눠 배치했다. 구령수업이라 그런지 평소(마이솔)보다 참여하는 수련생이 많은 것 같다. 나보다는 조금 늦은 시간에 마이솔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려나. 지난 사흘 본 적 없는 얼굴들이 꽤 보인다.
매트를 깔고 시작을 기다리는데, 예의 포르투갈 남자가 실력자 구역에서 매트를 깔며 내게 안부를 묻는다. 그러고선 포르투갈에 언제 간다고? 포르투에는 얼마나 있는다고? 리스본은? 질문을 하다가, 언제 한번 밥을 먹으며 포르투갈 팁을 알려준다고 한다. 언제가 괜찮겠냐기에, 오늘 당장 점심을 먹자고 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이 구역내 세명 중에서도 내가 제일 핫바리라는 판단이 든다. 언제들 이렇게 열심히 아쉬탕가를 배운거야.
그렇게 한시간 반을 불태우고, 매트워시로 매트를 열심히 닦으며 정리하고 있는데 포르투갈 남자는 빨리도 요가원을 나가버린다. 뭐지. 마음이 바뀌었나. 주섬주섬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봐도 그는 없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그런 유형인가.
혹시 몰라 건물 앞에 잠깐 서 있는데 그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를 보고, 내가 마음이 오락가락한다고 남까지 오락가락하는 사람으로 몰아세운 것을 반성했다. 포르투갈인은 자기 집 앞에 비건 식당이 있는데 맛있고 안 비싸다며, 거기서 만나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가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데다, 그의 집이 요가원에서 멀지 않은 눈치였기 때문에 식당이 우리 집에서도 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그리로 가겠다고 했다. 오후 한시에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집에 가서 수영을 하려고 선베드에 타월과 카드키가 든 가방을 내려놓는데, 콘도 4층 발코니에서 수영복 차림에 머리가 벗겨진 서양인 할아버지가 내려다보며 말을 건다. “물 안차갑니?” 아마 차가울건데 괜찮다고 했다. 방금 수영장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했던 걸까.
그는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내게, 1. 콘도에 뒷문이 있는지 (네), 2. 마야몰로 가는 지름길이 있는지 (모름), 3. 근처에 아러이 디 라는 식당이 있는데 괜찮은지 (안가봄) 추가질문을 던졌다. 아러이 디는 나도 구글맵에서 봤지만 신통치 않아보였던 것이 기억나서, Morestto라는 카페 옆에 현지 식당이 있는데 거기 아주 괜찮다고, 그런데 식당 이름은 태국어라서 모른다고 알려주었다.
수영을 하면서, 우주가 나의 외로움을 걱정하여 사람들을 보내주기라도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수영을 마치고 한참을 샤워한 뒤, 마스크팩을 얼굴에 얹은 채 세탁기를 돌리고, 로션과 아이크림, 선크림과 파운데이션까지 듬뿍 발랐다. 아직 11시밖에 안 되었다. 그냥 지금 만나자고 할까. 계획을 변경하자는 연락을 하는 것도 매우 번거롭다. 게다가 나 스스로도 한번 정한 약속이 바뀌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기로 한다. 괜히 오늘 먹자고 했나. 외롭달때는 언제고, 상당히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의 집앞 비건 식당 Jay Mai Jumjay까지는 걸어서 갔다. 식당은 그가 말한대로 저렴하고 맛있었다. 나는 버섯곤약국수를, 그는 콩줄기볶음을 시키고, 코코넛도 각 1개씩 주문했다. 네가 나를 돕는 것이니 밥은 내가 사겠다고 했다. 가격은 총 200밧.
그가 나보고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냐고 묻기에, 사내변호사였다고 알려줬다. 같은 질문을 되돌려주자, 그는 ‘요식업계에서 일하다가’ 동업으로 사업도 했었다고 한다. 요식업계에서 일했다는 것이 요리를 했다는 것인지 식자재 판매를 했다는 것인지 궁금했고, 사업은 무슨 사업이었는지 궁금했지만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는 전 여자친구가 비건이어서 그녀를 만나는 6년 동안 채식을 했고, 그녀와 헤어지고 1년쯤 지난 작년말, 인도 고아에서 어느 닭다리 요리를 참지 못해 다시 육식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원래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지만 남편을 만나고서 조금씩 먹게 되었으며, 결혼한지는 7년이 되었고 아이는 없으며 남편이 며칠전까지 치앙마이에 열흘간 왔다 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꽤 나누었을 무렵, 그는 본격적으로 포르투갈 여행 '팁'을 주기 시작했다. 따뜻한 기후의 지역 특성상 실내가 실외보다 추울 것이므로 난방에 유의할 것. 포르투갈 와인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고 맛있으며, 가급적 10유로 이상 가격의 와인을 마실 것. 그러고는 본인 핸드폰 구글맵의 이곳 저곳을 손으로 훑어 보여주기도 하고, 식당의 주문지 뒤에 볼펜으로 이것저것 열심히 적어내려가기도 하며, 방문해야 할 곳을 정리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글씨는 알아보기 어려웠고, 나는 ‘정자로 적어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정신적인 게으름에 압도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식당을 떠난지 두시간이 지나서야 그 종이쪼가리를 식당에 두고 온 것이 기억났다.)
그는 내게 자, 이제 뭐할 계획이니? 라고 물었다. 딱히 특별한 계획은 없는데…. 카페 가서 글을 쓰려고. 오늘이 연재 글 발행하는 날이야. 너는? 하고 묻자 그는 근처의 폭포에 가서 ‘산책’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근처에 폭포가 있다고? 나도 함께 가도 되겠느냐고 하자 기다렸다는듯, 물론이란다.
- 포르투갈: 그런데 너 스쿠터 타니?
- 한국: 아니.
- 포르투갈: 그럼 내가 태워줄까?
- 한국: 아니, 나 앞으로 바이크택시도 안탈거야, 무섭더라고.
- 포르투갈: 폭포까지 걸어가면 32분인데 그럼 폭포에서 만날래?
굳이? 나는 분명히 싫다고 거절했다.
- 한국: 아니, 나는 폭포가 '근처'에 있다길래 엄청 가까운 줄 알았지. 그럼 너는 폭포 가, 나는 하려던대로 카페 갈란다.
- 포르투갈: 야 내 헬멧 너 줄게, 내 스쿠터 타고 가자.
- 한국: 야잇ㅎ 됐어.
- 포르투갈: 내가 아아아주 천천히 운전한다면?
그도 혼자 여행하는 동안 몹시 심심했던 것이 틀림없다.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앞으로도 혼자서는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요가원과 집만 오가는 생활을 계속할 것이 뻔했기에, 그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스쿠터로 10분쯤 갔을까. Huai Kaeo Waterfall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둘셋, 또는 대여섯씩 무리지어 돌 위에 앉아있기도 하고, 누워있는 사람도 있었다. 시내에서 아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이런 계곡이 다 있다고? 경치를 감탄하며 서 있는 내게 그는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내가 그 사진을 어디에 쓸까 싶어 됐다고 했는데, 너는 컨텐츠 크리에이터니 필요하지 않느냐며 찍으라며 부추겼다.
사진을 찍었으면 이제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그는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 보지 않겠느냐고 했고, 그렇게 깊숙한 계곡 속으로 들어갔다. 디딤돌로 만들어진 트레킹 루트가 있기는 했지만 가파른 편인데다 손잡이나 난간같은 것은 전무했다. 어려서부터 등산으로 단련된 나이기에 망정이지, 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따라갔다.
두번째 스팟의 폭포가 첫번째 스팟보다 더 아름다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샌달을 벗어 발을 담그길래, 나는 일단 발을 담그면 오랫동안 발이 마르지 않고 축축할 것 같아 싫다며 발을 담그지 않았다. (분명히 말했다. 나는 발을 담그고 싶지 않다고!) 그곳에 잠시 앉아있었는데, 또 전방을 가리키며 저기에 한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한다. 내키지 않지만 일단 따라가보기로 한다.
세번째 스팟의 폭포도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의 자연풍광이다. 그는 또 발을 담갔다. 이윽고 10시 방향을 가리킨다. 길이 없는데? 하자 자연스레 물속을 걸어간다. 제발 집에 가고 싶다, 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왔다. 이왕 멀리 온 거, 새로운 경치를 많이 보면 좋기야 하지. 그가 먼저 건너편 돌에 도착해서 손을 내밀었다. 한발, 한발 조심히 내딛다보니 마른 돌에 안전하게 착지! 이거야 원, 산골 대탐험이 따로 없다.
그런데 아직도 끝이 아니다. 또 한번의 수중 보행이 남은 것이다. 여전히 두렵지만, 그래도 방금 경험한 작은 성공으로 미약하나마 자신감을 얻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물속으로 오른 발을 내딛었는데, 뻗은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미끄러졌다. 그대로 하반신이 통째로 잠긴 것은 물론이요, 꼬리뼈와 뒷통수까지 차례로 돌에 쿵기덕 찧고 말았다. 이거 실제로 일어난 일이 맞나? 짜증과 함께 나도 모르게 F 발음이 새나왔다.
놀란 그는 다가와 물에 빠진 내 라탄 모자와, 내 발에서 날아가 둥둥 떠있는 샌달 두짝을 집어들었다. 약간 눈치를 보는 기색으로, 거기 잠깐 앉아있으란다. 이 꼬리뼈 통증이 앉아있는다고 가실 것 같지는 않지만 다시 일어설 힘이 없다. 마른 돌에 잠시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그렇게 이삼분 쉬었을까. 어쨌든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다시 일어서 그를 따라 물길을 건넜는데, 그가 건너편의 마른 돌에 철푸덕 앉았다. 내가 집에 가고 싶은 걸 꼭 말로 알려줘야 하나...?
그는 계곡의 물소리를 즐기며, 유럽에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파리라고 했다가, 아니다 런던도 좋다, 고 했다. 지난 삿포로 여행에서 만난 방콕 출신 태국인 여성 둘을 회상하며 방콕도 언젠가는 꼭 방문할 것이라고도 했다. 대화가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축축한 바지를 입고 있었고 꼬리뼈가 욱신거렸으므로 귀가가 몹시 기다려졌다.
드디어 대화가 끝이 나고, 돌에서 일어나 그가 이끄는 길을 따라갔다. 길은 갈수록 험해졌다. 영락없는 유튜브감이었지만, 사족보행이 필요한 구간이 아주 많았으므로 (앞발 역할을 해야 할 손에) 고프로를 꺼내드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간신히 평지로 왔다 싶었는데, 그가 또 두시방향을 가리키며 저기를 가보지 않겠냐고 한다. 더 이상은 못 참는다. ’야 나 꼬리뼈 아파. 너 혼자 갔다와. 난 여기서 기다릴게.‘라고 하자 그가 샐쭉해져 단념한다. ‘꼬리뼈가 아프다구? 뭐 부러지기라도 했냐?‘고 얄미운 농을 던진다. 한대 후려치고 싶은 뒷통수를 보며 ‘하하 아니.’라고 대답했다.
길은 이제 가파른 것뿐만 아니라 수풀로 우거져, 아무리 허리를 숙이고 가도 풀숲을 헤치며 걸어야만 한다. 심지어는 캄캄해서 저 끝이 뚫려는 있나 걱정스러운 구간도 있었다. 딛을 돌이 많지 않아 자칫하면 미끄러지기 쉬운 모래 경사길을, 나는 속도를 대폭 줄여 가고 있는데, 그는 앞장서서 가면서 뒤도 안 돌아본다. 내가 여길 도대체 왜 따라왔을까.
간신히, 정말 간신히 사람 사는 듯 해보이는 건물이 나왔을때는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시고르자브종같이 생긴 어리고 귀여운 강아지가 종종종 다가와 우리를 쳐다봤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내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언덕 위로 검은 성견이 한마리 나타나 우리를 향해 짖어대기 시작했다. ’엄만가보다.‘ 하고 즉시 강아지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지나가려는데, 부지불식간 개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내 삼십마리는 족히 개들이 모여들었다. 아직 어린 강아지가 너덧마리, 나머지는 모두 성견이다.
개들이 일제히 포르투갈인을 따라가며 짖어댄다. 그가 피리부는 남자라도 된 듯, 그의 무엇인가에 홀린 개들이 집단으로 그를 따라가며 울부짖는다. 월월! 하는 소리에서부터 왕왕! 불르르~ 까지. 견종도 다양하고 울음소리도 다양하다. 비겁하게도, 내 뒤에서 짖지 않고 쟤 뒤에서 짖어 다행이다, 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데, 아까 본 검은 성견이 내 뒤로 바짝 붙어섰다. 짖어대는 소리가 곧 내게 달려들어 깨무는 준비를 하는 것만 같아 소름이 좍 돋았다. 어깨는 잔뜩 움츠린 채 축축한 하반신으로 엉거주춤 걷고 있는데, 오렌지색 승복을 입은 젊은 스님이 나뭇가지 한개를 들고 나타났다. 스님은 연신 입으로 슛슈, 슛슛슈하는 소리를 내어 개들을 진정시키면서 우리를 따라오신다. 들고 있는 나뭇가지도 그렇고, 우리가 가는길을 계속해서 같이 오는 걸 보면 우리를 위해 함께 오시는 것 같다. 아... 아까 그 건물은 절이었구나.
그렇게 나와 포르투갈인은 짖어대는 개들에게 포위당해 한발한발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고, 스님은 그런 우리를 계속해서 호위해주었다. 그런데도 좀처럼 산속을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 마지막 오분여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드디어 폭포 입구로 되돌아 나오자, 포르투갈인이 그제야 돌아보며 싱긋 웃는다.
- 포르투갈: 꽤 모험이었지? 엉덩방아에, 길도 잃고 말야.
- 한국: 내 말이!
- 포르투갈: 그래도 컨텐츠 뽑은 거 아냐?
- 한국: 내가 고프로 들고 있을 정신이 있었겠냐?
- 포르투갈: 너 아까 넘어진데 대해서는 책임을 느끼고 있어.
- 한국: 에이, 그러지 마. (예의상 한 말)
- 포르투갈: 그렇지? 네가 스쿠터에서 넘어졌다면 내 책임이지만 계곡에서는 너 스스로 넘어진 거잖아? 하하.
- 한국: 하하하. (…맞는 말은 맞는 말이다….)
모든 종류의 괴로움에는 겸허함이 함께 찾아오는 것인가. 신이시여, 외로움과 꼬리뼈 통증 중에 선택하라고 하신다면 차라리 외로움이 비교적 나을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