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치앙마이 한달살기, 그 후
태국 치앙마이에 11월 7일 도착해서 딱 한 달을 살고 12월 6일에 떠나왔다. 왜 그토록 '한달(이상) 살기'를 해봤어야 했는가. 여행자와 주민의 경계에서 한 도시를 오롯이 느껴보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일상의 경험을 공유하는 세계의 변연을 더욱 넓히고 싶다는 욕구가 직접적인 원동력이기는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한달살기'의 경험을 뱃지로서 손에 넣고 싶었던 (유치한) 욕심도 분명 있었다. '한달'은 '살기'가 인정되는 최소한의 시간일 뿐, 방점은 '살기'에 있다. 내가 이렇게나 여행을 좋아하는데, 세상 모두가 다 해본(것처럼 보이는) 한달살기를 나만 못해봤다고?
한 사람의 애정과 열망, 자질이 단일한 행위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듯, 나의 첫 한달살기는 내게 '여행자'로서의 정체성을 새로 부여해주거나 공고히 해주지는 못했다. 한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편리하다. 한달을 사는 동안, 생활자로서 꼭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란 없다시피 하고, 좋든 싫든 수십번은 더 얼굴을 마주쳐야 할 이웃도 없는 것이다. (옆집 살던 미국인 아저씨는 좀 무서웠지만. "야 느네집 베란다 화분들이 키가 너무 커서 그동안 너랑 인사도 자주 못했어" 라고 했는데, 왜 애초에 남의 집을 들여다보지?)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더욱 대범해졌다거나, 유연해졌다거나, 또는 계획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둥 내세울만한(바람직한) 변화는 겪지 못했다. 그저 얼굴을 비롯한 전신의 피부가 좀 더 검어졌고, 여행 말미에 가지고 간 기초화장품을 소진해버려 Boots(영국이 본사인 헬스앤뷰티스토어로, 태국에 정말 많다)에서 화장품을 구매해 쓴 덕에 얼굴 대여섯군데에 뾰루지가 돋아났을 뿐이다.
그러나 한달살기 과정 중, 내 예상과 달랐던 것들은 이래저래 있었다. 돌이켜보면 하나같이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한 것들인데, 맞닥뜨린 당시에는 꽤 의외였다.
애초에 그 누구도 내게 '태국사람은 모두 친절해'라는 명제를 확고히 제시하거나 담보한 적은 없었다. 그저 이제까지의 태국여행 경험에서 사람들이 대체로 친절했던 주관적 인상이 남아있었던 것 뿐이다. 특히, 나 혼자 처음 치앙마이에 왔던 2016년에는 거리에서 한글을 보기 어려웠다. 아시안 외국인이기만 하면 덮어두고 중국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아직 경색되어 있던 작년도, 한국인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현지인들에게 한국 드라마에서 봐온 한국인들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긍정적인 선입견'이 아직 편재했던 것일까, 한국인이라고 하면 으레 현지의 젊은이들이 호감섞인 눈길을 보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올해는 뭔가 좀 달랐다. 중년층 이상으로 가면 대부분이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태국인들인데, 가끔 냉담한(쌀쌀맞고 귀찮아하며, 어쩔땐 짜증스러워 하기까지 하는) 이십대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 태국인의 한국 입국 관련 정책 때문에 혐한 기류가 있다고 하더니, 그 영향이었을까. 그러고보니 요가원 선생님도 한참을 내게 '그렇게 불법입국자들을 많이 들여놓은채로 정작 합법적인 여행자들은 입국을 거부한다는게 재미있는 일 아니니?'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얼굴과 서류만 보고 불법체류 의도를 오차없이 읽어내는게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닐텐데.
또, 후기에서는 친절하다고 칭찬 일색이었던 내 에어비앤비 호스트도, 보름쯤 지나 전자레인지가 작동하지 않는것 같아보인다고 메세지를 보내자 돌변했다. 잘 작동하는데 그럴리가 없다며, 플러그가 제대로 꽂혀있는지 보라고 하기에, 동영상을 보내줄까, 했더니 그제야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다. 하우스키퍼가 왔다간 후 집에 와보니 전자레인지는 사라져 있었고, 호스트로부터는 어떻게 되었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정말 필요해서라기보다, 이래서는 안되는거 아닌가 싶어 전자레인지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이틀 뒤 메세지를 보내니, 새것을 주문할 예정이라고 답변이 왔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 후 체크아웃시까지 전자레인지는 볼 수 없었다. 미안하다거나 그와 비슷한 말 한마디도 없었다. 혹시 내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전자레인지를 고장냈다고 생각하는걸까?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그녀만이 알 일. 덕분에 코코넛밀크를 전자렌지로 데워 비건 밀크티를 만들어 먹으려던 야심찬 구상을 끝내 꽃피울 수 없었다. 당연히 큰 불편은 아니었다.
우선 비행기 소음. 님만해민 지역은 공항에서 가깝다. 작년에 님만해민에서 묵었을 때는 akyra Manor라는 호텔에 있었는데, 그땐 건물의 방음이 잘 되어 그랬던 것인지 몰랐던 부분이다. 이번에 묵은 콘도 Liv@Condominium(에어비앤비 예약, '23.11. 기준, 월 165만원)의 구글리뷰를 보면, '님만해민이라 비행기 소음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이렇게 심하지 않은 지역/건물도 찾을 수 있다'는 사람도 있다. 님만해민 근처의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숙소에서만큼 비행기 소음을 심하게 듣지는 않았던 걸 보면, 숙소 위치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난 여행에서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 뿐인지, 이번에만 처음으로 네다섯번이나 목격한 끔찍한 장면이 있다. 바로 길에 납작하게 눌러붙어 죽은 비둘기와 쥐다. 판화처럼 길바닥에 붙어있는 비둘기 사체와 깃털만도 수차례 보았으며, 비에 젖은 낙엽더미처럼 납작하고 물컹한 것이 밟히는 감각에 발을 들고 보았더니 쥐의 꼬리가 보여 아연실색한 일도 있었다. 그 날랜 쥐와 비둘기가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치여 죽은 사체를 제때 치우지 않아 그렇게 되는 것일까.
이제껏 나는 초예민한 개복치라고 생각해왔다. 누군가 내게 냉담하면 나의 무엇이 문제였을까 곱씹는 편이라서, 불친절을 겪는데 대해 일정부분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사람들은 제각기의 이유로 기뻐하고 슬퍼하며 짜증을 내기도, 무표정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이제는 익히 깨우칠만한 나이는 된 것인가. 비행기 소음도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 집, 매일 아침 일곱시경부터 경찰청 앞에서 시위하시는 아저씨의 사연 있는 농성을 생각해보면, 감정 없는 기계가 내는 소리가 데시벨은 더 커도 파급효는 훨씬 덜하다. 물론, 아무리 무뎌져도 아스팔트 바닥에 일체화된 동물 사체는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지만.
그 외에도, '하루를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드립커피를 내려마시는 커피 애호가'는 커피가 그렇게 싸고 맛있는 치앙마이에서 정작 보름도 안되어 커피에 흥미를 잃었다. 7년전 커피봉사 눈을 번쩍 뜨게 한 리스트레토 커피들이 금세 지루해졌고, 어딜가나 인기메뉴인 더티커피도 곧 니맛이 내맛 같아, 무엇이 특별하다고 콕 집을만한 것을 느끼기 어려웠다.
오히려 '차트라뮤' (ChaTraMue)의 다양한 차 음료에 푹 빠졌다. 우롱티, 타이티, 말차, 녹차, 호지차, 아쌈, 코코아 등 다양한 차 베이스와 일반우유, 오트밀크, 저지방우유 옵션에서부터 당도 조절까지 가능하고, 타피오카 펄에서부터 곤약 젤리, 코코넛 젤리까지 각종 부재료도 선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은 잘 몰라도) 님만해민 지역 매장의 경우, 모두 냉방이 잘 되어 쾌적하면서 인테리어도 잘 되어 있는데 반해, 음료 가격이 55밧에서부터 75밧 수준으로 저렴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치앙마이에서는 매우 드물게 수수료를 추가하지 않고도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그래서 여행 후반부에 들어서는 카페 탐방보다 원님만 (One Nimman)에 위치한 차트라뮤 매장에 더 자주 들렀다. 매장에서 책을 보다 오기도 하고, 숙소로 두잔씩 배달시켜 마시는 일도 흔했다.
간혹 외로울때도, 허전할때도 있었던 나의 한달살기 생활에서 마음의 닻이 되어준 것은 요가였다. 매일 이른 아침 Ashtanga Chiangmai 요가원으로 향하는 길, 태양이 하늘을 잔잔하고도 붉게 물들이면서, 간밤에 내 마음에 침습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오늘에 대한) 회의를 몰아내 주었다. 그렇게 매일을, 땀에 흠뻑 젖은 요가복을 빨아 널고 샤워를 한 뒤 하루를 시작했다. 안정적으로 닻을 내리고 있는 한, 표류할 걱정은 없었다. 여행기를 쓰고, 영상을 편집하고, 책을 읽었다. 새로운 음식과 익숙한 음식을 두루 먹었다.
치앙마이는 치앙마이대로 그를 찾는 사람들을 맞을 뿐이다. '한달살기의 성지',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과 같이 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붙여진 영예가, 어쩌면 도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 장애가 될 지 모른다.
짧든 길든 저마다의 호흡으로 머물렀다 가기 위해, 각자의 예상과 기대를 안고 오는 모든 사람들. 도시는 그 누구도 특별히 버선발로 마중하지도, 배웅하지도 않는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의 35세 치앙마이 한달살기는, 그대로 충분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냥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