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비밥을 계승한 하드 밥이 1950년대 미국 동부 연안 클럽을 중심으로 번성합니다.
비밥 그리고 하드 밥은 끊임없는 코드 변화를 통하여 솔로 연주자의 자유로운 플레이와 창의적인 전개를 가능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드 밥과 쿨 재즈가 모던 재즈의 중심에서 번성하던 1950년대 초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조지 러셀(1923~2009)이 새로운 연주 기법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모달 재즈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달 재즈(Modal Jazz) 또는 모달 뮤직(Modal Music)
연주 기법에 있어 비밥의 "코드" 전개와 대비되며 "모드"를 기본으로 연주자의 즉흥 연주가 진행됨
비밥이 코드의 꾸준한 변화 안에서 즉흥적인 솔로 연주를 하였다면 모달 재즈는 이와는 달리 코드 변화가 많지 않아 명상적이고 내적인 분위기의 연주로 바뀌게 됨
대표 뮤지션: 우디 쇼(tp), 마일즈 데이비스(tp), 존 콜트레인(ts), 웨인 쇼터(ts), 존 핸더슨(ts), 파로아 샌더스(as, ts), 허비 행콕(p), 칙 코리아(p), 빌 에반스(p), 맥코이 타이너(p), 바비 허처슨(vp), 래리 영(o) 등
대표 앨범: 마일즈 데이비스의 <Milestones>와 <Kind of Blue>, 존 콜트레인의 <A Love Supreme>, 허비 행콕의 <Maiden Voyage> 등
모달 재즈는 1950~1960년대에 걸쳐 유행하였습니다. 위의 대표 뮤지션들 중 마일즈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이 있습니다. 또한 재즈 피아노의 계보를 잇는 거장들이 많이 보입니다.
모달 재즈는 밥 또는 하드 밥과 다른 연주 방식의 재즈입니다.
하나는 짜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짬뽕입니다. 그렇다면 짜장 반 짬뽕 반은 안 될까요? 됩니다.
즉 아티스트는 작품을 온전히 어느 장르에 고정하지 않고 여러 장르를 블랜딩하거나 유연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명상적이고 내적인 분위기의 연주지만 차분하고 이지적으로 들리는 쿨 재즈와도 대별됩니다.
하나는 삼선짬뽕이고 다른 하나는 굴짬뽕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모달 재즈가 모던 재즈(스윙 재즈 이후부터 재즈 퓨젼이 도래하기 전까지 형성된 재즈: 비밥, 하드 밥, 쿨 재즈, 모달 재즈 등) 안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작품 측면에서도 재즈 역사에 남는 명연주가 많습니다.
모달 재즈를 빛낸 연주자들의 작품을 알아봅니다.
마일즈 데이비스(1926~1991)
1958년 <Milestones>, 1959년 <Kind of Blue>, 1965년 <E.S.P.> 이전 시리즈에서 언급한 다섯 명의 재즈 거장 중 마일즈 데이비스는 가장 많은 재즈 장르를 거치면서 새로운 재즈를 끊임없이 시도한 인물입니다. 비밥, 하드 밥, 쿨 재즈, 포스트밥, 모달 재즈, 오케스트랄 재즈, 재즈 퓨젼 등 시대 상황에 따라 뛰어난 멤버들을 기용하여 새로운 구상을 작품으로 승화시킵니다.
위의 앨범들은 데이비스가 남긴 100여 장의 정규집 중 모달 재즈를 대표하는 작품들입니다.
1958년 앨범 <Milestones(이정표)>는 데이비스의 1기 퀸텟 작품입니다.
1기 퀸텟(섹스텟): 1955~1959
마일즈 데이비스(tp), 줄리안 캐넌볼 에덜리(as), 존 콜트레인(ts), 레드 갈란드(p), 폴 챔버스(db), 필리 조 존스(d)
2기 퀸텟: 1964~1968
마일즈 데이비스(tp), 웨인 쇼터(ts), 허비 행콕(p), 론 카터(db), 토니 윌리엄스(d)
이 앨범을 시작으로 데이비스는 모달 재즈 명작들을 발표하게 되며, 본 앨범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모달 재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1959년 앨범 <Kind of Blue(푸르스름한)>는 앨범 <Milestones> 녹음 후 1년이 지나 만든 작품입니다. 데이비스 앨범 중 가장 먼저 거론되는 작품이 <Bitches Brew(재즈짱들의 향연)>라고 하면 틀린 말일까요? 재즈 퓨젼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럼 앨범 <Kind of Blue>를 가장 먼저 꼽으면 역시 틀린 말일까요? 모달 재즈 그리고 이 앨범의 파급력을 고려하면 그렇지 않을 겁니다. 데이비스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접근함에 있어 이 앨범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피아노에 빌 에반스가 참여하였고 다섯 곡 모두 데이비스의 오리지널(두 곡은 에반스와의 공동작)이며 "So What"이 첫 곡입니다.
1965년 <E.S.P.(초능력)>은 데이비스의 2기 퀸텟 첫 작품입니다. 1기와 2기 중 어느 콤보가 더 낫다 이런 것은 무의미합니다. 둘 다 재즈 역사에 남은 위대한 퀸텟입니다. 다만 2기는 1기 대비 20대의 젊은 뮤지션들로 구성했다는 생물학적 차이가 있겠군요.
존 콜트레인(1926~1967)
1961년 <My Favorite Things>, 1963년 <Impressions>, 1965년 <A Love Supreme> 이전 시리즈인 재즈 거장 5인에서 존 콜트레인을 프리 또는 아방가르드 재즈 중심으로 안내하였습니다. 부연하자면 트레인은 비밥을 시작으로 하드 밥과 모달 재즈를 거쳐 프리와 아방가르드 재즈로 천이하였고, 마일즈 데이비스와 더불어 모달 주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뛰어난 모달 재즈 앨범을 발표하였습니다.
1961년 앨범 <My Favorite Things>는 맥코이 타이너(p), 스티브 데이비스(db), 엘빈 존스(d), 그리고 존 콜트레인(ss, ts)의 쿼텟 편성이며 트레인은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합니다. 첫 곡이자 앨범명 "My Favorite Things"는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사운드트랙입니다.
1963년 앨범 <Impressions>는 트레인이 아틀란틱에서 임펄스 레코드로 이적 후 발표한 작품입니다. 그는 소프라노 및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고 멀티플레이어인 에릭 돌피가 베이스 클라리넷과 알토 색소폰을 연주합니다. 리듬 섹션은 맥코이 타이너, 지미 개리슨, 엘빈 존스(또는 로이 헤인즈) 트리오입니다.
1965년 앨범 <A Love Supreme(숭고한 사랑)>은 1960년 앨범 <Giant Steps(거대한 족적)>와 더불어 콜트레인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재즈 역사에 빛나는 명작입니다. 구도자인 트레인의 영적인 연주를 엿볼 수 있으며 존 콜트레인과 리듬 섹션 트리오(맥코이 타이너, 지미 개리슨, 엘빈 존스)의 쿼텟 편성입니다.
빌 에반스(1929~1980)
1960년 <Portrait in Jazz>, 1962년 <Undercurrent>, 1963년 <Conversation with Myself> 마일즈 데이비스 1기 퀸텟에도 있었던 빌 에반스는 스윙 시대 이후 가장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이자 재즈 역사상 가장 뛰어난 트리오를 이끈 리더입니다. 1960년대 절정의 기량으로 여타 피아니스트들을 압도하였던 그의 피아노 미학은 모달 재즈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빌 에반스의 작품은 모달 재즈에 국한하여 감상하기보다는 피아노 솔로작과 트리오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차근차근 따라가시면 좋습니다.
웨인 쇼터(1933~2023)
1964년 <Night Dreamer>, 1964년 <JuJu>, 1966년 <Speak No Evil> 2023년 89세의 나이로 타계한 웨인 쇼터는 조 자비눌과 함께 3대 재즈 퓨젼 밴드인 웨더 레포트를 만든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 여정은 하드 밥, 모달 재즈, 포스트밥, 월드 뮤직, 재즈 퓨젼을 거쳐 말년에 발표한 일련의 오케스트라 작품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의 주요 경력에 있어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와 웨더 레포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만 1960년대 모달 재즈 앨범도 주목할 만하며 올해 타계하기 전 발표한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재즈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쇼터는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에 있다가 1960년 솔로 데뷔 앨범을 기점으로 커리어를 확대해 나갑니다.
1964년 4집 앨범 <Night Dreamer(밤의 몽상가)>는 그의 4집에 해당하며 리 모건(tp), 맥코이 타이너(p), 래지 워크맨(b), 엘빈 존스(d), 웨인 쇼터(ts)의 퀸텟 편성입니다. 쇼터는 뛰어난 작곡가이며 전곡 그의 오리지널입니다. 1965년 5집 앨범 <JuJu(주술)>는 4집 녹음 후 3개월 뒤 리 모건이 빠진 쿼텟으로 작업하였습니다. 전곡 오리지널. 1966년 6집 앨범 <Speak No Evil(쉿! 말하지마)>은 쇼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앨범으로 허비 행콕(p), 론 카터(b), 엘빈 존스(d), 프레디 허버드(tp), 웨인 쇼터(ts)의 퀸텟 구성입니다. 전곡 쇼터 작곡.
허비 행콕(1940~)
1963년 <My Point of View>, 1964년 <Empyrean Isles>, 1965년 <Maiden Voyage> 현존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허비 행콕은 마일즈 데이비스 2기 퀸텟에 있으면서 데이비스의 재즈 퓨젼 이전 여섯 앨범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앨범들의 일부는 모달 재즈 그리고 앨범 대부분은 포스트밥이라고 부릅니다. 행콕이 데이비스 밴드에서 포스트밥 스타일 형성에 기여를 하며 지명도를 높일 때 블루 노트에서 모달 재즈 대표작들을 연이어 발표합니다. 1965년 앨범 <Maiden Voyage(첫 항해)>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입니다. 1964년 앨범 <Empyrean Isles(천공의 섬)>에는 "Cantaloupe Island"가 수록되었는데 1993년 Us3가 샘플링하여 더 유명해집니다.
맥코이 타이너(1938~2020)
1970년 <Expansions>, 1971년 <Extensions>, 1973년 <Enlightment> 맥코이 타이너는 빌 에반스 이후 재즈 피아니스트 계보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연주자입니다. 그는 1960년대 초중반 존 콜트레인 쿼텟의 멤버이자 리듬 섹션의 핵심으로 트레인의 명작에 기여하는 한편 자신의 솔로 앨범 발표를 병행합니다. 1965년 트레인의 쿼텟을 떠나 절정의 기량으로 명작을 발표하였고 1970년대 초반 일련의 모달 재즈 작품을 선뵙니다.
칙 코리아(1941~1921)
허비 행콕과 절친이자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에서 활동 후 3대 재즈 퓨전 그룹인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를 결성하여 라틴 재즈 스타일과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사운드를 제시하였던 칙 코리아. 코리아는 202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많은 앨범을 발표하였습니다. 모달 재즈 음반에 집중하기보다는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 이후 1960년대 작품들, 리턴 투 포에버의 1970년대 음반들, 이후의 일렉트릭 밴드와 어쿠스틱 밴드 등의 앨범을 순차적으로 감상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모달 재즈 혹은 모달 뮤직은 1950년대 하드 밥의 전성기에 별도의 장르로 탄생하였습니다. 이 스타일을 주도한 연주자들은 마일즈 데이비스 그리고 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뮤지션들로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웨인 쇼터, 허비 행콕 등입니다.
모달 재즈가 부흥하던 1960년대에 또 다른 양식의 재즈 장르가 주목을 받습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다음 글은 프리 재즈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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