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정의하는 방법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타인에게 자기소개를 해야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흔히 ‘OO회사의 누구입니다.’ 또는 ‘OO업을 하는 누구입니다.’ 하는 등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업무를 위주로 소개를 하고는 한다. 그런데 사회적 위치라는 것이 내가 정의하는 것이 아닌 타인이 규정하고 분류한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상황이다. 나의 정체성을 타인이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정체성 연구의 전문가인 박선웅 고려대 교수는 정체성을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정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게 중요한 것, 내게 의미있는것 대신에 남이 정해준 정의로 자신을 부르고 있다.
우리는 ‘누구 엄마’, ‘회계부 김대리’, 'OO학교 학생, 등 남이 불러주는 대로 우리 자신을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맞는 줄 알고 있다. 누가 우리를 그렇게 부르라고 허락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남들이 정해준 것이 맞다!’하면서 이를 허락했기 때문이다. 한편, ‘누구 엄마’는 학창시절부터 소소히 글쓰는 취미가 있었고, ‘회계부 김대리’는 자신의 지식을 통해 다른 길을 가고 싶어 한다. 또한 'OO학교 학생은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열거한 사람 모두 꿈은 가지고 있으나 남들의 편견에 파묻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우리는 자신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외부의 소음에 아랑곳 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규정하는 것이다. 누구 엄마’는 ‘소설가 OOO’/ ‘회계부 김대리’는 ‘회계전문가 OOO'/ 'OO학교 학생 누구‘는 ’싱어송라이터 OOO'로!!! 자신을 믿는 상태에서 ‘나는 OO다!'라고 규정할 경우 규정한 삶의 방향으로 나도 모르게 발길을 옮기게 되는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하던 간에 내가 정의한 삶의 방향으로 걸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현재 사업 및 기업체의 일을 해나가고 있지만, 글을 쓰고 있는 시간 만큼은 내 자신을 '작가 OOO'로 정의하고 있다. 기라성 같은 유명작가에 비하면 인지도가 바닥이고, 주위에서 내가 쓴 글을 인정해 주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누가 뭐라 그러던 내가 나를 ‘작가’로 정의했으니 나를 믿고 작가의 삶을 준비하고 작가의 길을 걸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글을 쓰는 것이 지루하고, 때때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글을 써나가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나는 작가니까!!’
김춘수의 ‘꽃’ 이라는 시의 일부 내용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불러 주어야지 꽃으로 취급받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단순한 몸짓으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아직 정의하지 못했는가? 그래도 상관없다. 지금부터라도 당신을 정의하면 되는 것이다. 당신이 자신에 대한 믿음만 잃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이 정의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정의한 대로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