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주인이 되는 법
흔히들 삶의 주인이 되라고 한다. ‘당신의 운명은 당신만의 것이나 나아가서 쟁취하라!’ 그러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 또는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주인이 돼라’ 참 가슴이 뛰는 멋진 선언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주변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순응해야만 하는 상황이 내내 이어지게 된다.
중국 당나라시대의 임제(臨濟) 선사의 언행을 기록한 '임제록 臨濟錄'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이 돼라, 지금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이다.’는 뜻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면,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기 하나의 예시를 들어볼까 한다.
한국 프로야구사 전설 중의 한 명으로 평가받는 해태타이거즈(지금은 기아타이거즈)의 김성한 선수가 있다. 김성한 선수의 경우 실력도 실력이지만 엉덩이를 뒤로 내민 상태로 타격을 하는 기상천외한 ‘오리궁둥이 타법’으로 유명세를 얻은 바가 있다. 실제로 오리궁둥이 타법은 유독 스윙스피드가 느렸던 김성한 선수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완성된 타법으로 김성한 선수는 이를 통해 국내 프로야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바 있다.
현대의 기준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준으로 보아도 김성한 선수의 타법은 실전에서 통용될 수 없는 모습이었기에 주위에서 김성한 선수의 타격 폼을 교정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다고 한다. 만약 김성한 선수가 주위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타법을 교정했다면, 우리가 아는 전설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성한 선수의 경우도 주위의 인정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나 자신의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타법을 믿고 밀고 나간 결과 범인이 법 접하기 어려운 자리에 오른 것이다
.
만약 나 자신이 어떤 방향을 정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길을 가기로 결정했을 때, 출발선부터 타인의 온갖 조언과 충고가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너 그렇게 하다가 실패한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 성공한 사람은 이렇게 한다더라!’ 등등... 당연히 주위의 조언을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단지 변화를 시도해 보겠다고 타인의 방법이 좋아 보여서 타인들이 이렇게 하면 된다는 이야기에 현혹되어 자신의 의지나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시도를 하게 된다. 이럴 경우,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고 마는 ‘안 하니만 못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잘 알기에 내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만의 주체적인 생각과 방법을 계속 연마하는 한 우리는 남들이 방해할 수 없는 나만의 자리(마음의 공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적어도 내가 있는 곳에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믿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든 간에 삶의 길을 걸어가기 위한 자신만의 의지와 방법을 보유하고 있다. 때로는 내 방법으로 길을 가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추월해 간다. 그럴 때 내 생각과 방법이 맞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믿고 계속 가야 한다. 하늘이 낸 천재가 아니라면 웬만한 사람들과 나와의 역량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나의 방법으로 나를 앞서간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있고 곧 역전할 수도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나만의 길을 가야 한다.
삶의 주인이 거창한 개념일까? 힘들어도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나만의 방법으로 나의 길을 가고 있다면 그것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덤으로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을 걷다 보면 내가 원하던 것도 같이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