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늑대의 다섯 번째 겨울, 손승휘 글 이재현 그림
이 책은 늑대 무리가 살아가는 치열한 삶의 이야기이다. 151페이지 정도의 단편소설로 박진감 넘치는 묘사가 뛰어나다. 늑대무리를 이끄는 존재는 푸른 늑대이다. 나는 그림을 보면서 거친 은빛털에 절묘한 푸른빛이 도는 늑대를 상상했다. 푸른 늑대의 등에 업혀 바람을 달리는 상상은 나를 야지에 던져 주었다.
설원에 서 있는 그 늑대는 늠름하고 용감하며 굴하지 않는 의지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푸른 늑대의 의무는 단 한 가지 무리를 지키는 것.
이야기의 전개는 단순하다. 겨울이 되고 먹을 것이 귀해지자 먹이를 찾아 늑대 무리는 이동을 하게 되고 인간들을 피해 생존해야 하는 피곤한 생을 다루고 있다. 늑대를 피해 달아나야 하는 순록, 순록을 지키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 늑대를 처단해야 하는 인간들, 순록을 잡기 위해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달려야 하는 늑대.
모든 것은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다. 늑대무리가 생명을 공격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들과 다르다. 단지, 생을 위한 것이다. 어린 늑대를 살려 생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욕심 없는 살생은 무엇이든 인간이 가진 권력과 힘으로 말살시키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오래된 책들을 뒤지다가 결코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나게 되는 때. 시간이 흘러 세상에서 잊혔다가 내게로 와서 되새김질을 하는 책을 만나 읽는 동안 즐거웠다. 생과 삶에 대해 존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계엄이 선포되었다가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 지금 왜 이 책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야생의 그것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더 느낀 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순록이기도, 늑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삶의 선상에 있기도 하고 죽음의 선상에 있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달아나다가도 쫓고 쫓다가도 달아난다. 강자인 듯 하지만 약자이고 약자인 듯 하지만 강자가 되기도 한다.
어찌 살아가야 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우리 모두에게 있으니 서로를 조금은 측은하게 여겨도 좋을 듯하다. 우리가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건 그 마음에서부터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