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한강
삶의 밑바닥, 사람의 밑바닥, 상처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한강의 시선은 독특하다. 서늘한 듯하면서도 따스하고 냉철한 듯하면서도 온화하다. 어둡고 처량한 삶을 굳이 끌어내 활자 안에 구겨 넣는다. 나는 이 책을 여름이 한창인 여행지에서 읽었다. 책 전체에 흐르는 어둠과 우울감에 몇 번을 덮었다가 다시 읽었다. 태양이 너울대고 빛이 부서질 때마다 반짝이는 모래사장을 바라보며 물속에서 휘적대다가도 문득문득 삶 저 너머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꾸 체기가 생겼다.
믿었던 고향 언니에게 전세돈을 털리고 이모집 베란다에 눈칫밥을 먹으면서 살게 된 여자의 비루하고 악착같은 삶의 의지가, 아무리 열심히 밥벌이를 해도 진흙 속에 처박히는 목숨을 부지해 보겠다고 자신을 믿었던 그 여자를 배신하고 달아나서도 결국에는 죽음이 코앞에 다다른 인숙의 질긴 삶의 끈기가 몸서리치게 싫었다. 가족을 잃고 죽은 임신한 아내의 목숨값으로 얻은 아파트를 그 여자에게 내어주고 제 몸 위에 하나 남김없이 세상을 떠나려 하는 명환이, 결국 제 머리를 콘크리트 바닥에 부서뜨리는 그가 소름 끼치게 가엾었다.
제 얼굴과 똑같은 형제가 죽어가고 있는 어둡고 비좁은 반지하 방 안에서 동걸은 어떤 생각을 하며 숨을 쉬었을까. 희망이라고는 쿰쿰한 곰팡이냄새 같았을 그의 삶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한 장씩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안심이 되었다. 벗어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숨을 몇 번 몰아쉬고 여전히 야자수위로 타오르고 있는 태양을 마주하다가 시원한 푸릇함이 없이 회색빛을 띠는 수평선을 눈을 찡그리고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는 다시 책을 마주했다.
자식을 잃고 정신줄을 부여잡고 사느라 칼날 위의 삶 같았을 긴 세월 끝에 결국은 남은 자식에게 자신을 토로하며 무너져 가는 어머니와 오랜 세월 달아날 수 없는 동생의 죽음으로부터, 가족들의 외면으로부터 질주하는 인규의 고뇌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끊임없는 '바닥'이 그간의 평안했던 내 삶의 저변을 후려친다.
이 책에는 모두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나온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거나, 가족이거나 희망이다. 결국 사라지고 남는 건 모두 비루한 삶이다. 삶의 '고귀함'이란 이 소설에는 없다. 삶은 질기고 질척대며 온몸이 베어나가도록 버텨 나가는 것이다. 베어진 사람들의 그림자를 뒤로 하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희망 가까이 떼어 놓는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이란 안개 저쯤에 수평선 너머 보이는 뾰족하게 머리만 보일듯한 미지의 섬 같은 것일 뿐.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고문 같은 것.
희망이 없는 희망을 읊조리는 것 같은 작가 한강의 이 소설에는 폐색이 만연한 인생이 즐비하다. 삶이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내가 할 선택은 무엇인가. 내가 짊어져야 할 인생의 무게를 영원히 내려놓고 싶어질 때 어떻게 도망칠 것인가. 끔찍한 고민을 가져온 인물들이 내면에 말을 걸어왔다. 도망가라. 계속해서 인물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엄혹한 삶 속에 그려지는 영혼의 죽음과 육체의 죽음에 내 영혼이 시려짐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