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런 일이 있어요.
오늘은 마음이 좀처럼 편하지 않다. 이른 새벽에 깨서 그런지 책을 읽고 있는 시야가 많이 흐릿하다. 독감검사는 하지 않았는데 독감인가 싶기도 하다. 일주일 정도 된 거 같는데, 코막힘도 가래도 여전히 힘들게 한다. 약이 너무 센 건지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리고 졸려서 약을 잠시 끊었다. 덕분에 정신이 깨어있는 시간이 좀 있으니까 살 것 같기도 하다.
언니는 끝내 식구를 만나지 않았다. 지금은 수술대에 누워있을 시간이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코를 훌쩍이며, 글을 쓰며, 책장을 넘기면서도 마음은 이대목동병원 수술실 문 앞에 가 있다. 이럴 줄 알았다. 수술이 잘 됐다는 소식이 들리기만 하면, 이 감기도 싹 나을 것 같은데— 텅 빈 허공만 맴돌고 있다.
어릴 때, 나는 언니가 예뻤다. 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항상 깃이 하얗게 넓은 예쁜 검은색 교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고 학교를 갔다. "다녀오겠습니다." 대문으로 총총 걸어 나가는 언니를 보려고 마루를 다다다 기어가 몰래 뒷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교복 입은 언니의 뒷모습에는 항상 하얗고 맑은 햇살이 눈부시게 떨어지고 있었다.
언니는 어느 날부터 무서워졌다. 아픈 나 때문에 생긴 집안사정으로 가고 싶은 대학교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로 고등학교 생활이 즐겁지 않았을 때부터 이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니가 학창 시절에 크게 웃거나 내게 다정했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소리를 지르고, 툭하면 찰싹찰싹 내 등짝이나 허벅지 등을 때렸던 거 같다. 원망과 체념을 그렇게 쏟아내지 않았을까. 내 동네 친구 설이가 놀러 와서 인사를 해도 쌩하니 가버리니까 친구도 언니를 무서워했다. 설이는 "너네 언니, 무서워." 귓속말을 하면서도 살짝 목소리를 떨었다.
나는 언니가 가여웠다. 언니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부모님 누구도 그러라고 한 적 없었지만 언니는 제 알아서 맏이로서 집안에 도움이 될만한 일을 했고 포기할 게 있으면 포기했다. 당시에 많은 집 맏딸들이 그랬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래도 밝고 반듯한 언니가 가여웠다. 언니와 나는 성장해서 언니가 애들 엄마가 되기 전까지 속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언니에게 내 마음을, 언니는 그 마음을,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보여줄 수 없었다.
나는 언니가 미웠다. 나만은 미워하지 말아야지. 언니를 이해해 줘야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결국 언니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지 못했고 끝내,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귀뚜라미가 뜨거운 여름공기를 다 들이마실 듯이 울어대던 그 저녁에, 가족의 곁에 있기를 거부한 언니를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결심했다.
나의 언니는 이제 수술대에 누워 폐에 생긴 암덩이를 제거하고 있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을 언니가, 또 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적어도 언니에게만은 끝없이 적막하고 잔인하다. 오늘만은 하늘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다는 걸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