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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트로피가 되어주길 바랐던 J 1

처음 경험한 이상한 사람

by LUDENS

2년이 넘도록 만난 J는 내가 처음 경험한 나르시시스트였다. 그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L과 오랜 기간동안 안정적인 연애를 했다. 돌이켜보면 L을 만난 것이 나에게는 축복이자 불행이었다. L은 존중과 신뢰가 가능한 연인이었고, "어른"다운 연애를 한 최초이자 현 시점에서의 마지막 남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런 L이 유니콘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내게 연인의 기본값이자 마지노선이었다. 그는 내게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었지만, 세상에 그보다 훨씬 덜 건강하고 왜곡된 자아의 남성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J와의 연애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L과의 연애가 나에게는 기준이 되었기에, 어쩌면 J는 내 인생의 첫 해로운(toxic) 연애 대상이었다. 그는 연애 초부터 나와 결혼하기를 바랐고, 우리의 결혼에는 딩크를 추구하는 나의 가치관과 경제적 상황이 걸림돌이라고 했다. J는 그것들을 해결하도록 끊임 없이 나에게 주지시켰다. 물론, 그의 진짜 의도를 알게 된 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나는 그를 "순수하게" 대하는 바람에 그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는 나의 "진정성" 때문에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나를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외모가 훌륭했다. 웃을 때는 잔망스럽게 천진해보이기도 했고, 울 때는 그의 큰 눈과 애교살에 있는 점 때문에 한껏 더 서러워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운동을 거르지 않고 식단을 엄격히 관리해서, 엄청나게 크지 않은 키에도 훌륭한 비율과 몸매를 갖췄다. 내가 처음 그에게 호감을 가진 이유 중 대부분은, 솔직히 말해, 그의 외모였다.


그는 자신의 외모가 이성에게 매우 매력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그의 자존감의 거의 전부였다. 이성에게서 유혹을 당하거나 연락처를 요청 받는 일이 생기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그 사실을 나에게 자랑했다. 그리고 그런 인기 많은 자신과 연애하는 내가 얼마나 행운인지, 여자가 없어서 나와 만나는 것이 아님을 이상하리만큼 누누히 강조했다. 그는 그렇게 내가 그와 함께 하는 것이 '감사한 일'임을 끊임 없이 상기시켰다.


그는 외모에 대한 높은 기준과 강박도 있어서 그의 기준을 나에게 투사하기도 했다. 그의 기준이라면 나는 수준 미달이었다. 한참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코가 왜 이렇게 낮은지, (남들은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한) 얼굴의 상처는 무엇때문인지 묻기도 하였다. "5키로만 더 빼면 참 좋겠다."며 건강을 염려하는 척 했고, 왜 높은 구두를 신지 않는지, 왜 몸매와 어울리는 옷을 입지 않는지 하는 비아냥도 잊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의도는 나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의도를 간파할 만큼 영민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J가 너무 해맑아서(무식해서)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을 걸러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려고 했는데, 나는 그를 타이르고 이해하려 들었다.

"네 말에 상처 받았고, 그러한 내 감정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나에게 그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가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존재임을 어필할때마다 불안해하거나 그가 묘사한 자신에게 "작업을 거는" 여성들에게 화내지 않았다. 실제로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너는 앞으로도 그렇게 잘생기고 인기가 많을 것인데, 나는 너에게 호감을 느끼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컨트롤할 수 없어. 대신 나는 네가 나를 생각해서 알아서 잘 대처해주길 바랄 뿐이야. 그리고 나에게 그러한 상황을 즐기듯 들려줄 필요가 없어.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신뢰가 가장 중요할텐데 이런 식의 대화는 신뢰를 해치게 해." 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는 되려 본인이 당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에게 말하는 것이라며 화를 냈다.


그가 외모 지적을 할 때마다, 나는 비참해졌다. 남자친구에게 외모를 지적당하다니, J를 만나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내가 다이어트에 돌입해서 체중감량 하기를 바랐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의아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이 모습이었어. 만약 이 모습이 너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우리가 만나지 않는게 맞아. 네가 외모 지적하는 일은 나에게 상처가 되고 나 자신을 왠지 덜 사랑하게 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내가 나를 덜 사랑하게 할 목적이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목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는 당황해하며 모든게 장난인데 "또" 진지하게 군다며 우리의 갈등은 대부분 나의 예민함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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