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Y는 우리가 사귀기 전부터 딩크를 원한다고 말한 나에게 우리나라의 "출산율"(출생율)이 너무 낮다며 나라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는 나와 헤어지며 내가 자신이 만난 사람 중 가장 멋진 "신여성"이라며 이별의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낮은 출산율에 대해 걱정한다는 취지의 말로 나에게 죄책감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그가 혐오해 마지않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신여성"으로 대체했을 것이다.
모든 것은 한 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늘 조금씩 드러냈다. 그는 내게 자신의 밑바닥을 들키지 않은 줄 알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의 저의를 모른척하고 싶었을 뿐 사실 다 알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Y는 내게 진심을 보여준 적이 없다. 늘 꼬일 대로 꼬여버린 왜곡된 자아를 포장하고 본인의 하찮고 얕은 진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너무나 수가 얕았다.
결코 입 밖으로 내뱉지 않던 Y의 진심은 대부분 나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원망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연애들을 겪고도 나는 언젠가 나타날 인연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의 지인들이 소개팅을 제의하고도 딩크라는 조건이 붙으면 소개팅은 결국 무산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의 소개팅이 성사되었다. 나는 주선자에게 딩크에 대한 나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했는지 거듭 확인했고 주선자는 그 점을 분명히 했다며 안심시켰다.
처음 나를 본 P의 눈빛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P는 나를 흥미롭게 여기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의 질문들에 충실하게 대답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가족계획과 딩크 이야기로 연결됐다. 당황스럽게도 그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고, 그의 표정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놀란 걸까 화가 난 걸까. P는 어찌할 줄을 모르더니, 시계를 보며 저녁 약속이 있었음을 잊었다며 갑작스럽게 자리를 떴다. 시계를 보았다. P를 만난 지 약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허둥지둥 카페를 나가는 P의 뒷모습을 보며, 나의 장래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을 느꼈다.
이런 모든 경험은 마치 나에게 나는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욕심쟁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은 국가에 해를 끼치는 일이며, 그러한 선택을 한 나는 선량하게 살아가는 누군가의 일상에 난입해 상처만 주는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기가 죽었다. 그리고 이내 서러웠다.
영원한 둘이 되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셋이나 넷이 되기를 거부하여 혼자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좌절됐다.
문득 혼자가 된 나를 찬찬히 뜯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아직까지 그 누구와도 둘이 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로도 온전한 내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혼자로도 온전한 내가 되고 싶다.
그리고 혼자로도 온전한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영원한 둘이 되고 싶다.
혹자는 이런 내 바람을, 어쩌면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더 비현실적인 장래희망이라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장래희망이 더 명확해진 이후로 나는 더욱 큰 희망을 느끼고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장래희망의 50%는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서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