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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진짜 같아서 간절히 믿고자 했던 약속들

그렇게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by LUDENS Feb 23. 2025

 어릴 때부터 즐겨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이 운명처럼 서로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누구나 만족하는 해피엔딩이 되었다.  


나 역시 내 인생의 드라마 속에서 해피엔딩을 꿈꿔왔다. 인연을 만나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 하는 것을 꿈꾸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라도 더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의 모든 지나간 인연들은 내게 달콤한 해피엔딩을 약속했다. 시간이 지나 그 약속들은 텅 빈 채로 사라지고 그 약속을 믿고자 했던 나는 순진해빠진 낭만주의자로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는 C와 딱 7주를 만났다. C는 누구보다 열렬했고 누구보다 빠르게 차가워졌다. (소위 말하는 금사빠를 만나게 될 줄이야!) 그리 오래 알고 지내지 않은 사이임에도 그와 만나기로 결정한 것은 나를 바라보는 C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의 눈빛은 진짜였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클레멘타인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나 못생겼지?(Am I ugly?)”라고 조엘에게 묻는다. 조엘은 계속해서 "예뻐(You're pretty)."라고 대답하며 내면의 불안감을 감싸 안아준다. 클레멘타인의 질문은 단순한 외모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심리에서 나온 것이다. C를 만났을 때의 나는 클레멘타인이었다. 그때의 나는 상처받았고 내면적으로 불안정했고 누군가로부터의 온전하고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했다. C는 나에게 조엘이었다. 그는 나에게 망설임 없이 내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클레멘타인에게 예쁘다고 이야기해주는 조엘의 표정과 같았다. 나를 향한 그의 애정은 함께한 지 5주가 지날 무렵 숭덩숭덩 잘려나갔다. 그는 내가 그의 집에서 환영할 만한 '며느리감'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떠나갔다.


나는 조금은 어리석게도 이제야 로맨스와 해피엔딩에 대한 의심을 시작했다. C와 헤어진 직후 친한 언니와 함께 관람한 뮤지컬 <베르테르> 보고도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심드렁했다. 사랑을 영원으로 만든 서래의 결정(영화 <헤어질 결심>)에 열광해 놓고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며 내린 베르테르의 결정을 애송이의 사랑으로 치부했다. 내가 달라진 것이다.


영화 <아노라>를 떠올렸다. 그 영화는 C와 연애를 막 시작한 직후, 영화 모임원들과 함께 감상했다. 아노라는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를 흔들고 그녀에게 약속한 것은 이반이었다. 그러나 결국, 아노라에게 사랑이 모든 것을 초월할 것이라 믿게 만든 이반은 부모님의 반대 앞에서 너무도 순식간에 그녀를 떠나갔다. 당시 영화를 함께 본 모임원들과 달리, 나는 스토리의 전개가 아닐 줄 알면서도 이반의 감정이 진심이기를 바라며 영화를 보았노라 감상평을 남겼던 기억이 있다. 나는 정말 순진한 낭만주의자였던 걸까?


나는 C와의 이별 후, 나의 어떤 한 부분이 사라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누구보다 영원한 사랑을 믿어왔던 나는 이제 사라졌다. 서글퍼졌지만, 동시에 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꿈꾸던 해피엔딩의 스토리 라인은 이제 전면적으로 다시 써야 한다. 앞으로 내 인생에 오고갈 연인들이 영원할 것인가에 집착하고 나를 흔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나 스스로 온전한 해피엔딩을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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