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알 수 없는 나의 잘못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더니 나를 그 자리에 둔 채 술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나는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는 채로 덩그러니 길바닥에 남겨졌다.
나는 화가 났고 분했지만 머지않아 그를 회유하기로 마음먹었다. 성숙한 연인은 이런 식으로 다투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들었다. 비록 지금 오해가 있는 것 같지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 좋겠고 나는 그에게 안전하고 일관된 사람임을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기에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루동안 메신저의 1은 사라지지 않았고, 1이 사라진 다음날에도 그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삼일째에 온 답장에는 어르고 달래면서도 섭섭함을 표현해야만 하는 나의 태도가 오만하고 왜 자신이 화가 났는지에 대한 생각이 왜 충분히 뻗어나가지 못하냐고 비난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의 답장을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나는 끝까지 그가 화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는 오만하고 생각이 짧은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데도 잘못한 사람이 되었고 그렇기에 계속 사과했다. 그의 마음은 어떻게 해도 풀리지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그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미리 약속된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의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우리는 어색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평소처럼 농담했고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행동했다.
그러다가 나는 습관처럼 영어 단어를 섞어 말하게 되었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나는 J가 영어를 쓰는 게 너무 멋있어."
그리고 그 직후에 Y가 말했다.
"나는 J가 영어를 쓰는 게 너무 싫어."
그의 말에 모임의 공기가 달라졌다. 나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당황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Y의 단호한 말투에 무어라 대답할지 고민하는 듯한 정적의 5초를 지켰다. 숨 막히는 5초의 정적을 누군가가 싱거운 농담을 던지며 깨뜨렸고 나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모임이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자리를 지켰다.
모두가 떠나가고 둘이 남은 상황에서도 나는 토할 것 같은 어색함을 뒤로한 채 애써 태연한 척 그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며칠 동안 불쾌한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는지, 내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이 화가 났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내가 영어를 쓰는 게 남들 앞에서 그렇게 무안함을 느끼게 할 만큼 싫은지 등을 물었다. 나는 계속 질문했고, 그는 내게 명쾌한 답을 주지 않았다. 나는 처참한 기분을 억눌렀다. 나는 최대한 무해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며 나의 이 모든 질문은 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알고자 하는 것임을 호소해야 했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어둡던 밤이 새벽이 되고 말 그대로 동이 튼 아침이 되도록 우리의 대화는 진전이 없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눈물이 흘렀다. 무엇인가가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나에 대한 애정이나 애틋함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짜증과 피곤함이 섞인 권태로움만이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그가 나와 헤어지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것을 말로 꺼낼 수 없어서 나에게 미루는 중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우리 그만 만나야겠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