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엄 Nov 14. 2024

일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걸까?

일단 걸어보자

예전과 같은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매출이 예전 같지 않고 당황스러운 날들이 계속되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언제까지 이곳에서 일수 있을까? 먹거리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일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걸까? 

조용할 때마다 불안한 의문들이 내 머리를 두드린다.


분명 일에도 정해진 유통기한은 있다.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있을 끝을 미리 잡고 있을 필요는 없는데 쓸데없는 생각들이 나의 긍정을 괴롭힌다. 끝을 모르는 유통기한이라면 그 끝을 길게 설정하면 되는데도 당황스러운 마음에 동동거리게 된다.


 

그와의 헤어짐으로 배송직원의 공백이 생겼지만 추가적인 인원 없이 사장님이 배송을 하기로 했다. 떨어진 매출만큼 사장님이 직접 몸을 움직이며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살아남으려 결심하신 것이다. 남아있는 나와 그녀도 줄어든 일손만큼 바빠져야 했으니 일정 부분 변화가 생긴 거였다.


매장을 운영하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매출에 따라 식구 같은 직원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여부가 결정되니  매장의 판매율과 이익은 중요하다. 그런데 모든 초석이 되는 판매율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미래도 장밋빛이라 말할 수 없다. 예전처럼 소위 잘 나간다는 물건은 보이지 않고 고만고만한 제품들로 매대를 채우고 있으니 어떤 새로운 발상으로 매장을 채울까란 고민은 일상이 됐다. 그야말로 발전 없이 버티기 상태로 살아가는 돌멩이 같기도 하니 아련하다.


변화가 예정된 일상에서 여름휴가가 시작됐다. 계획했던 사장님의 휴가는 언젠가로 미뤄졌고 남아있는 직원들은 휴가를 다녀오게 다. 여름휴가가 끝나면 독수리 삼 형제로 날카롭게 움직여야 하다 보니 여행이라는 건 계획하기 힘들었다. 여행을 다니는 것도 체력적으로 부담이며 뜨거운 햇볕을 쏘여가며 파란 물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있는 거제에는 파란 물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 바다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 푸른색의 나무도 아쉽지 않았다. 차만 타고 나가면 볼 수 있는 풍경이고 거실 안에서도 보이는 풍경이니 집에서 보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휴가라 말할 수 있다. 일에 변화를 앞둔 휴가이니 만큼 휴식으로 나의 에너지를 채워 일에 대한 유통기한을 늘리고 싶다. 여행지로 떠나는 휴가보다 집에서의 온전한 휴식을 택한 이유였다.


올여름 나의 휴가계획은 흰머리를 염색하고 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받으며 집에서 넷플렉스를 보는 것이었다. 실컷 풀어지고 늘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라 매일 루틴처럼 했던 기도도 겨우 해낼 수 있었다. 특히 병원에서 했던 도수치료는 온몸의 살들을 아프게 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심한 몸살은 넷플렉스에 집중하게 했고 '스위트홈' 시즌2와 시즌3의 시리즈를 정주행 하게 했다. 28시간 동안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니 머리에서는 꿈나라에 대한 고통의 알람이 울리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수만큼 두드려대는 두통을 진정시키려 잠으로 하루를 허비하기도 했지만 삼시 세 끼는 잘 챙겨 먹었다. 도수치료를 한 병원에서는 몸의 근력을 키우고 스트레칭을 하라고 했는데 소파에만 있었으니 5일의 휴가기간 중 3일은 풀어져만 있었다.


일하기 이틀 전부터는 몸의 나사를 쪼아주어야 했기에 4일째부터 움직였다. 체력을 위한 운동으로 무작정 걷기를 선택했고 망설이던 끝에 겨우 운동화를 신을 수 있었다. 11시 구름 한 점 없는 뜨거운 날씨에 양산을 펼쳐 들고 마트를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왕복 1시간이 걸리는 산책길이 뜨거운 찜질방에 있는 기분이었는데 휴가기간 소파에 어있던 묵은 땀을 빼낼 수 있었다.




일하기 전날에는 스트레칭과 허리강화에 좋은 근력운동을 했다. 유튜브를 누워서만 하는 운동위주였는데도 몸에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누워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다리라도 비트는 것이 덜 괴로웠다. 뭔가 하고 있는 행동이 알찬 휴가기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서 있는 일을 하면 저녁에는 다리가 아파 운동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유통기한이 긴 일을 하려면 건강한 체력은 필수인데 요령껏 할 수 있는 운동만 찾았던 휴가란 생각이 든다.


미래에 일어날 일은 모르겠지만 처진 체력으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아직도 배우고 익혀야 할 게 많지만 결국엔 나의 건강과 기쁜 마음이 먼저일 것이다. 건강하고 기분 좋게 지내는 것이 일의 유통기한을 늘려주는 것이라 판단되니 일단은 체력을 키우는데 온 힘을 써야겠다.





일단 걸어보자


마음이 방전될수록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몸이 방전되면 널브러지는데

마음 에너지까지 빼앗기네

아무것도 하기 싫어


누워서 눈알만 굴리고

삐딱한 시선으로

삐딱하게 굴어대는

나를 재촉해 본다


운동화만 신어보자

한걸음만 걸어보자

한 바퀴만 돌아보자

움직여야 나아진다


정신없이 돌고 온 나

흠뻑 젖은 땀기운에

맑은 정신이 돌아온다


그래 정신이 없으면

무작정 걸어야 한다

일단은 걸어보자

그렇게 힘내보자




목요일 연재
이전 01화 간절함이라는 동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