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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모 Aug 17. 2023

FAQ 벨기에가 더 좋아 한국이 더 좋아?

종종 사람들은 나에게 벨기에가 더 좋은지 한국이 더 좋은지를 묻는다. 그러면 내 대답은 이렇게 시작한다.


-   Ça depend …  경우에 따라서 다르죠.

 

어디가 더 좋은 것을 논하기 전에 제일 다른 점이라고 하면, 사람의 거리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2미터는 족히 되는 거리를 두고 인사를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지하철에 빽빽히 차 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리에 조금 부딪히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지만 아는 사람과는 최대한 닿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벨기에에서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가까이 다가가서 볼에 뽀뽀 인사를 한다. 우리 엄마가 벨기에에 처음 와서 시아버지를 만났을 때, 시아버지가 반가운 얼굴로 엄마한테 뽀뽀를 하러 성큼성큼 다가가고, 엄마는 어려운 사돈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오자 당황해서 뒷걸음을 치던 모습이 생생하다.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한국에서는 거리를 두고, 벨기에에서 거리를 좁히는 것은 지극히 사회적 공간의 거리를 이야기할 뿐, 심리적 거리는 정 반대다.

        

한국사람들은 아는 사람에 대하여 아주 시시콜콜 관심이 많고, 참견도 서슴지 않는다. 넘치는 사랑으로 어떻게 이렇게 잘해줄  있지 하고 감동을 할 때도 많은데, 동전의 뒷면은 때때로 상처로 남을 때가 있다. 우리 둘째가 작년에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아주머니 내지는 할머니 친구뻘 되는 분들이, 살을 좀 빼면 좋겠다 내지는, 얼굴에 점을 몇 개 빼면 훨씬 더 예뻐질 거다 하는 얘기에 아주 신경이 날카로워졌더랬다. 다 식구처럼 아끼니까 하는 말씀이라고 위로를 해 보지만, 영 소화가 쉽지는 않다.

        

40대 중반에 결혼을 한 사촌언니가 몇 년에 걸쳐 하소연했던 상처되는 말들의 예는; 인제 결혼할 나이가 훨씬 넘었다, 더 늦으면 애를 못 낫는다, 얼굴이 피곤해 보이니 보톡스를 맞아라 등등. 이런 멘트가 충격적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다들 보통 하시는 말씀이 되었을 정도이니, 백 프로는 아니겠지만 이런 경우의 한국사람들의 심리적 거리는 거의 제로 수준?

        

벨기에에서 살면서 제일 편하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사람의 거리다. 결혼하고 시집에서 함께 살다가 첫아이가 태어났을 무렵 집을 사려고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다. 여러 군데를 보고는 마음에 드는 집이 생기면 추려서 시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물었다. 남편과 함께 시아버지를 차로 모시러 가 차에 오르시는데, 오래간만에 아들하고 편하게 말씀 나누라고 내가 뒷자리로 가려 하자 남편 옆자리는 내 자리고, 당신 자리는 뒷자리라며 굳이 뒤에 타시는 모습이 생생하다. 아들은 며느리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시겠다는 표현이다. 너무 잘해주시는 것도 없고, 바라는 것은 더더욱 없다. 그저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한국이 좋은 것은, 무슨 일이든 일사천리로 추진된다는 것이다. 해결이 되든 불발이 되든, 일에 관련된 사람들이 기다리는 고객의 조급함을 너무 잘 읽어 자신의 일처럼 최우선순위로 추진한다. 한국에 와서 동사무소, 지금의 주민센터의 서비스를 보고 우리 아이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빠른 서비스도 그렇지만, 말단 공무원까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할 궁리를 하고 이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놀라웠다.

        

벨기에에서 동급 행정 공무원들은, 지극히 규격화된 일만 하고, 하나라도 규격에서 벗어나면 바로 업무 중단이다. 내일도 아닌 남의 일에 조금이라도 책임지기 싫으니, 윗사람의 처리를 기다리는 기나 긴 보류의 블랙홀로 넘어가는 것이다. 아주 속이 터지도록 이유도 묻지 못하고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은 고객이 왕이라 갑이고, 서비스를 공급하는 측이 을이라, 고객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누리는 반면, 서비스 공급자는 모든 고객이 최우선순위라 엄청난 시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러한 서비스가 VVIP 서비스라는 것조차 모르고 너무나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 안타깝다.

        

벨기에는, 서비스 공급자가 갑이라 고객인 을이 묵묵히 인내해야 한다. 물론 벨기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업무 스트레스와 워라밸을 논한다. 미안하지만 한국 직장인에 비하면 새족지혈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일반 서비스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을 하는 입장이 되면, 나와 조직의 업무 사정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따라서, 벨기에가  좋은지 한국이  좋은지에 대한 나의 대답은, 혼자서도 잘 놀아서 다른사람들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사는것을 심심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살기 좋은곳, 그나마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해 일하기 좋은 곳은 벨기에이며, 살가운 사랑으로 정이 차고 넘치는 것에 감동지수가 높은 사람, 적당히 쓸 돈이 있어서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사람에게 살기 좋은 곳은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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