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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모 Aug 01. 2023

KBS World 라디오 인터뷰

2023년 7월 25일 1부, 7월 31일 2부 방송

*불어 방송 인터뷰의 한글 번역


오: 홍지혜 님 안녕하세요. KBS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업가, 통역사, 음악가, 그리고 네 아이의 엄마로서 벨기에에 살고 계시지요. 나열한 중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어려운데 어떻게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시면서 살아가시는지 잠시 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번 한국 방문의 목적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홍 :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부모님 방문이에요. 제 부모님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자식으로서, 저와 제 아이들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중요하죠. 저는 벨기에에, 부모님은 한국에, 이렇게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매일 카톡으로 소식을 나눠요. 보통 한국에 일 년에 한 번 와서 한 달 정도 함께 지내요. 제가 유럽에서 관리하고 있는 5개 회사 중 2개가 한국 디지털 프린팅 소재 생산업체라서 친지방문과 출장을 겸할 수 있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한국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간을 갖고 한국에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몇 차례 6개월간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기회를 갖기도 했지요.
 

오 : 고국에 도착하시자마자 하시는 일은?
 

홍 : 공항에 내리자마자 냉면을 먹어요. 너무 시원하고 맛있어요. 우리 식구들 모두 한국음식을 너무 좋아해요. 집에서 제가 요리를 안 하고, 남편이 요리를 하는데, 불고기도 아주 잘해요. 그래도 아이들이 때때로 원조 한국음식을 요청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독일 뒤셀도르프에 가서 한국음식 재료도 사고 한국음식점에서 밥도 먹고 오죠.


오: 냉면은 물냉면 아니면 비빔냉면?


홍: 물냉면 이죠! 비빔냉면은 매운 고추장을 넣어서 뭐라도 흉내를 내겠는데, 물냉면은 시원함을 어떻게..... 아...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싶어요.
 

오 : 한국이 코로나 이후 달라졌나요?
  

홍 :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경제성장률 하락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전보다 « 빨리빨리 » 하는 성향이 좀 덜 한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경제적 성공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까라고 고민하는 분들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오 : 제가 벨기에 몽스에 거주하시는 사업가, 통역사, 음악가, 그리고 네 아이의 엄마라고 소개드렸는데요, 애초에 벨기에로 떠나신 이유가 뭐였어요?
  

홍 : 이유요? 사랑이죠! 2000년 1월 10일, 스믈 다섯의 나이로 한국을 떠났어요. 남편과 만난 이후 계속 영어로 얘기해 왔었는데, 비행기 안에서 « 우리 동네는 불어를 쓴다 »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 아.... 오케이 »라고 했죠. 벨기에에 도착 후, 피난민, 교환학생 및 전 세계에서 다양한 이유로 이민을 온 저 같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시청에서 제공하는 야간 불어교실에서 불어공부를 했어요. 5개월이 지나니, 더 많은 단어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지요. 2년이 지나고 UCL 대학 정치학과 석사학위를 받았아요.
 

오 : 벨기에에서 정치학 전공을 하시고, 이후 피아노 전공을 하셨어요. 악기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닌데, 한국에서도 피아노를 하셨어요?
 

홍 : 피아노는 사연이 좀 길죠.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좋아했어요. 집에 피아노가 있었고 일곱 살에서 열 살까지 수원에서 동네 피아노학원에 다녔어요.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그만두었는데, 나중에 다시 수원으로 돌아왔을 때 저는 학생이었는데, 교회에 악보 없이 듣고 반주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반주를 했어요.

벨기에에 오자마자 나토본부 국제교회에서 반주를 하게 되어 현지 활동 적응에 훨씬 수월했고 악기도 꾸준히 하게 되었죠.

제게 음악이 취미에서 전공까지 생각하게 된 계기는, 제 아이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예요. 아이들의 음악회에서 제가 반주를 했는데, 점점 다른 친구들까지 반주를 부탁하더라고요. 진도가 점점 나가서 어려운 곡을 하면 할수록 반주도 점점 어려워지고, 더 아름다워지더라고요. 많은 곡을 새로 읽고 연습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어요.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몽스의 왕립음악원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입시를 준비했고 2019년에 마흔다섯의 나이에 합격해서 2022년 6월에 피아노 반주과 석사를 최우수 성적으로 마쳤어요.


오: 와, 축하드려요


홍: 감사합니다. 지금은 같은 학교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오 : 여기서 멈추지 않고, 통번역사 자격증도 있으시잖아요?
  

홍 : 2003년부터 유럽연합에서 국제회의통역사로 활동을 하고, 벨기에 연방 사법부 인증 한/불/영공증통번역사로 일하고 있어요. 사법부 공증통번역사의 자격 갱신을 위해서 대학에서 받아야 하는 연수 프로그램이 있는데, 코로나 때 자가격리 국가들이 많아 사업이 축소하면서 업무량이 줄어, 그 시간에 몽스대학 법학과와 통역대학원에서 공동프로그램인 « 공증통번역사를 위한 법학 » 수업을 받고 시험에 합격하여 2021년 6월에 인증서를 받았죠.
 

오 : 이런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체를 경영하고, 통번역사로 활동하시고, 공연장에서 피아노연주도 하시는 거네요. 가장 최근 활동 얘기 좀 해 주세요.
 

홍 : 지난달 콘서트가 몇 개 있었고, 2023년 퀸엘리자베스콩쿠르 때 벨기에 국영 TV에서 동시통역을 했고, 6월 29일에 몽스 성 Waudru 대성당에서 왕립음악원 파이프오르간 시험을 치렀죠.
 

오 :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이 분야 전문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2000년 벨기에 오셨을 때도 그랬나요?
 

홍 : 전혀요. 저를 보면 일본사람이냐 중국사람이냐 하고 물었어요. 한국사람이라고 대답하면, « 북한 아니면 남한? » 이 질문이 전부였죠. 한국을 전혀 몰랐다고 보면 돼요. 현재까지도 벨기에에는 일본사람이 약 6000명, 중국사람이 40000명, 한국인은 850밖에 안 돼요.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 한국인들이 유럽 음악콩쿠르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어요. 벨기에에서 퀸엘리자베스콩쿠르는 일반사람들까지 관심이 대단해요. 여러 차례 한국인들이 우승을 하면서 많이 알려졌죠. 이제 한국음악가들의 수준 높은 기술과 음악성이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 : 오랜 시간을 통해 진화하는 것을 지켜보셨네요. 지금 벨기에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갖는 소재가 있나요?
 

홍 : 2002년 월드컵 이후 많은 사람들이 삼성, LG, 현대 등의 한국 대기업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이제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제 딸아이가 K-pop K-drama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요. 한국어 공부를 스마트폰 앱 « Duo-lingo »로 공부하는 친구들도 몇몇 있다고 할 정도로요.
 

오 : 자녀들 얘기를 안 물어볼 수 없는데요, 한국말로 « 다둥맘 » 이 시잖아요. 다문화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시는데, 어떠세요?
 

홍 : 처음엔 애들이 고립될 까봐 걱정을 좀 했죠. 유럽인들은 제 아이들을 한국인 또는 아시아계 외국인으로 여기고, 한국에 오면 영락없이 외국인으로 대하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가 종종 이렇게 얘기해요. 너희들은 평범한 아이들이 아니라 아주 예외적인 아이들이라고. 때때로, 지나가는 남자아이들이 « 칭 창 총 » 이렇게 중국말을 흉내 내는 소리로 아시아 인들을 놀린다고 불평을 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다문화를 존중하고 잘 이해하는 편이에요. 여기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문화에서 똑같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요.
 

오 : 한국과 벨기에 간의 문화 차이로 남편이나 혹시 시가와의 문화차이를 느끼셨던 적이 있다면?
 

홍 :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시어머니는 젖 먹을 때가 되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와 같이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아이가 울어도 바로 안아주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때 친정엄마가 제 산후조리를 위해서 와 계셨는데, 엄마는 아이가 울면 바로 안아주셨죠. 시어머니는 그렇게 하면 아이가 자꾸 칭얼거리면서 계속 버릇없이 안아달라고 할 거라고 하시고, 엄마는 우는 아기를 내버려 두면 아이 성격 버린다고 하시고... 아.. 두 육아문화의 갈등!!!
 

오 : 한국이 제일 그리울 때가 있다면?
 

홍 : 배고플 때.... 그리고, 벨기에 행정이 너무 느릴 때. 한국에서는 모든지 훨씬 빠르고 쉽게 해결이 돼요.
 

오 : 그럼, 어떻게 대응하시는지?
 

홍 : 행정은.... 인내심으로 견딜 수밖에요.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는 라면을 끓이거나, 가까운 중국음식점이나 베트남 음식점에 가요. 똑같진 않지만 매일 비행기를 탈 수는 없으니까요.
 

오 : 오늘 하신 인터뷰 내용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드실 의향은 없으세요? 벨기에로 가시기 전에 CNN 서울에서 2년간 근무하셨기도 하고,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홍 : 제가 가장 행복해하는 일은 프로 연주가, 아마추어 연주가, 학생들을 막론하고 다른 음악인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이에요. 거의 모든 시간을 오프라인으로 보내고, 온라인은 업무 이외에는  K-drama죠.
 

오 : 벨기에로 곧 돌아가실 텐데 도착하셔서 계획은요?
 

홍 : 도착 다음날부터 음악캠프 마지막날 공연 반주를 해요. 남은 방학기간에도 음악활동을 계속할 거예요.
 

오 : 마지막으로, 성공한 재벨 한국 워킹맘으로서 벨기에와 한국에서 하고자 하는 역할이 있다면?
 

홍 : « 성공 »이라는 말의 정의는 사람마다 좀 다르겠죠. 제 아이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키워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성공은 여러 가지에 달려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결코 혼자 할 수는 없지요. 삶은 팀워크이에요. 결혼, 일, 심지어 취미생활도요.

유럽연합과 산하기관을 출입할 때나, 몽스 대성당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할 때, Arsonic 홀에서 공연할 때, 그리고 지금 KBS World 스튜디오에 있는 순간조차, 이 모든 것에 참 과분하게 감사한 마음이에요. 작년에 베니스에서 1주일 동안 동시통역을 위해 출장을 갔는데, 매일 통역을 마치고 저녁시간에 제가 묵는 호텔 옆에 Chiesa degli Scalzi 성당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에서 연습할 수 있었어요. 허락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때때로 아름다운 소리, 상상을 초월한 장소, 이 모든 경이로움이 넘치게 느껴져, 제가 한없이 작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행복한 비명의 순간순간이 종종 있죠.

그래서 다른 분들도 함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어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도 절대 늦은 게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가 코로나 전 벨기에에 오셨을 때 73세셨는데, 생전 처음으로 바이올린 잡는 것을 가르쳐 드렸어요. 귀국하시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구청에서 하는 문화센터 수업에 계속 참여하셔서, 이제는 매일 연습하시고, 일주일에 새 노래를 두곡씩 배우세요. 77세이지만 향상되는 부분을 자신이 구체적으로 직접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지요. 지난주일 예배 때 우리 아이들과 함께 특주를 하셨는데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요.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아주 느리고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그만한 가치는 넘치게 충분하죠.


오 : 홍지혜 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사히 귀국하시기를 바래요!

홍 :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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