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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모 Aug 30. 2023

음악은 나의 친구

남편이 나에게 벨기에에 와서 자기와 함께 살자고 했을 때 나는 “피아노 있어?” 하고 물었다. 임기응변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사람의 대답. “자기가 오기 전에 준비해 놓을게.”


진짜로, 당시 Braine-le-compte의 시집 3층에 있던 이 사람 집에 왔더니 세 달 전 ‘현장실사’ 때는 없었던 피아노가 들어와 있다. 안티크 좋아하는 남편답게 1800년대 포르테피아노를 준비해 놓았다.


우리는 한 2년 걸쳐 집을 사기 위해 보러 다니다가, 시집에서 30분 거리의 몽스(Mons) 시에 있는 집을 사서 둘째를 낳기 바로 전에 이사를 했다. 집은 이사로 어수선하고, 나는 석사논문 디펜스 준비에 한창인데, 출산을 위해 병원도 자주 드나들어야 했던 정신없는 그때였지만, 이사할 때 제일 먼저 피아노가 들어갈 자리를 정하고 싶었다.


남편이 안티크 포르테피아노를 사고 수리 및 세팅을 해 준 피아노상이 Tubize에 있었는데 시간 날 때 잠깐 들렀다. 피아노가 여러 대 있었는데  Baby Grand 모델이 눈에 띄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포르테피아노를 살때 가격으로 처 주는 조건으로 하고, 넘는 엄청난 금액은  할부로 오래 갚는 것으로 해서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를 그날로 질러 버렸다.


정작 나는 피아노 연습을 오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끔 5분 시간이 나면 피아노한테 '안녕'하고 인사하듯 띠리링 만져보는 게 다였다. 정기적으로 피아노를 연습하게 한 것은 국제 교회의 반주 덕분이다. 사업을 시작하고 유럽 내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등 하루이틀 일정으로 타이트하게 출장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았다. 주중에 어린아이들 맡기는 스케줄 조정하고 일에 쫓기어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주일에는 NATO본부 SHAPE (Supreme Headquarters Allied Powers Europe) 옆의  국제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다.


악기는 내 친구다. 아주 애써서 얘기를 나누지 않아도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친구. 나한테는 피아노가 그랬다. 아이들이 크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시켰는데, 첫째 둘째는 연습을 그나마 최소 유지분량만큼은 스스로 잘하는데, 일곱 살인 수린이에게 연습하라는 말을 이제 도저히 지쳐서 못하겠네 할 무렵에 “너 이렇게 연습 안 할 거면 당장 그만둬! 네 레슨시간에 내가 바이올린 배운다!


나는 마흔한 살에 그렇게 홧김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새 친구인 바이올린은 자고로 내가 아는 악기 중에 가장 시작하기 힘든 악기이다. 아무리 초보여도 어느 정도 조율이 된 악기이면 연습하는 소리도 들어줄 만한 피아노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고양이 창자 뒤집는 소리 같은 쥐어짜는 소음을 수개월은 버텨야 그나마 연습하는 소리를 ‘견딜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간다. 내가 바이올린 시작하고 한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남편의 절규를 들어보자.


-    제발, 부탁이야. 이제 바이올린 그만하면 안 돼?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야.

-    자기는 나를 못 믿는구나. 나는 지금은 깜깜해도 긴 터널 저 끝에 밝은 빛이 보여. 내가 빨리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빨리 그 빛을 누릴 수가 있다고.


그때 이혼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아마도, 이혼에 한번 됀탕 덴 적이 있었던 남편이라 힘들지만 참고 넘어간 것 같다.


바이올린을 하면서 제일 좋은 것은, 출장을 갈 때 바이올린을 들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저녁때 호텔방 안에서 음소거 장치를 끼고 맘대로 연습할 수 있으니, 출장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진다. 이제는 왕초보에서 벗어나, 대단한 음악성과 기술을 겸비해야 연주할 수 있는 솔로 곡을 제외하면 웬만한 앙상블 곡은 즐기며 합주하고 있다. 피아노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하기 힘든 악기이지만,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는 따듯함, 웅장함, 박진감, 기쁨, 슬픔을 함께 연주하는 동료들과 같이 나누는 합주 악기라서 좋다.


교회 피아노 반주 하듯이 아이들 레슨 때 바이올린 연주곡 반주도 해 주었는데, 아이들의 바이올린 실력이 늘면서 곡도 어려워지고, 다른 음악 하는 친구들도 내게 반주를 부탁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아얘 제대로 반주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불쑥 들었다. 내 나이 마흔다섯에 몽스 왕립음악원에 입학시험을 치렀고, 하늘이 도우사 합격했다.  그로부터 3년 후 피아노 반주과 석사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마쳤는데, 왕립음악원에 계속 있고 싶어서 지금은 파이프오르간 학부과정을 하고 있다.


나는 함께 연주하는 것을 즐기는 천상 협연자이다. 제대로 된 협연을 하려면 혼자 준비가 어느 정도 돼야 한다. 홀로 행복한 연주를 할 수 있을 만큼 돼야 비로소, 함께 연주할 때 플러스알파의 마법을 기대할 수 있다.


대가족으로 살고 있지만, 내년에 오십을 바라보는 나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꽤 많다. 다들 각각의 활동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나이가 되어 이제야 내가 누릴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이렇때 나는 악기를 만지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이렇게 재미있고 보람찬 것은 내 고마운 친구, 음악이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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