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이라고는 대학생활이 전부였고 술 한 번 제대로(?) 마셔보지 못했던 내가, 세상을 알고 싶으면 가보라던, 군대보다 더 군대 같다는, 듣기만 해도 기가 죽는 이 무시무시한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경험하러 온 곳이었다.
발령 전에 현장을 알아야 하므로 당시 실무 수습은 일선 세무서에서부터 세무서를 관리하는 7개의 지방청, 전체 조직을 총괄하는 본청까지 고루 이뤄졌다. 세무서와 본청에서는 1~2주 정도 간략한 업무 설명을 듣고, 하는 일을 잠깐 맛보는 정도였다. 이후 지방청 수습은 상당기간 진행됐다. 우리나라 기업인이라면 다 안다는.. 저승사자가 일하고 계신다는 조사국에서의 6개월여 생활은 상당히 다이내믹했다.
매해 교육, 시험을 거쳐 한 인간의 몸에 전문성이 쌓일 때까지 십여 년이 흐른다는데 이제 막 배치된 우리가 매의 눈을 타고난 초능력자처럼 무언가를 발견하고 추적해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한 팀의 일원으로 전용책상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 수습에게 전문적인 일을 시키기는 미덥잖고 그렇다고 곧 임용받을 사람들에게 복사하고 편철하는 일을 주자니 겸연쩍어 역할이 불분명한 우리들이 편할 리 없었다.
우리는 소속된 팀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했다. 조사만 하는 팀들과 달리 과장님을 보좌하며 조사를 동시에 하는 수석팀에 배치되었다. 덕분에 과장님 방에서 회의가 있을 때 마다 모든 분들께 인사할 수 있는 (할 수 밖에 없는) 문 앞 최고 명당자리에 앉게 되었다. 수석팀 답게 중요한 조사를 많이 하는 팀이어서 자연스럽게 야근도 잦았다. 다 같이 출근하고 점심 먹고 조사하고, 저녁먹고 검토하고 퇴근했다. 뭐든지 같이 했다.
어려운 조사를 마치고 서로를 격려하며 저녁을 먹었고 때로는 호통치는 소리가 있고나서 다음에는 잘하자는 위로자리도 있었다. 그렇게 주량이 늘었거나 주량이 꽤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주로 막걸리에 파전이 있는 광장시장이 우리의 아지트였고, 조사를 마치거나 인사 이동 전 후와 같은 특별한 날은 싼값에 회를 맛볼 수 있는 노량진 시장으로 출동했다. 티비 드라마에서 보는 팀생활이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팀장님과 직원들, 과장님은 지금도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할 정도로 좋은 분들이었다. 동료애가 무엇인지 알려주신 이상적인 분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하던 내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관 파티를 하고 서로가 이기는 협상을 이끌어보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나로써는 꿈도 못 꿔본 조직생활이었다. 일사분란함과 엄격한 위계질서, 정체성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출근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에 들어서서 동료들과 인사를 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에 트랜스퍼된 것처럼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 고민에 휩싸여있다가도 사람들을 보면 좋았고, 그 속에 속해있는 내 모습이 좋았다. 그 세상에 흠뻑 젖어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말을 잃었다. 사람들은 너무 좋은데 이상하게 나는 자꾸 바싹 말라갔다. (정경호 주연의 드라마, ‘라이프 온 마르스’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다. 이 혼돈)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중요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주말과 저녁 6시 이후에는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한여름에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다들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감히 여름휴가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입밖에 낼 수 없었다(비록 조사에 도움될 정도 중요 항목을 볼 정도 실력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말하지 않았던가. 세월이 가야한다고.).
그러던 어느 날 필리핀으로 가는 땡처리 비행기 티켓이 떴다. 2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왕복 티켓이었다. 바로 내일 출국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홀린 듯이 결재했다(지금도 그때도 나는 자주 홀린다.) 혼란한 마음을 잠재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넘쳐 흘러 용감해졌다. 설사 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더라도 괜찮았다. 오로지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죽는 것도 두렵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뚜벅뚜벅
결연한 마음을 먹고 그토록 존경해마지않던 팀장님께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