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관계의 버팀목이다
"어디야?"라는 물음에 노이로제에 걸릴 뻔한 시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남자친구가 나를 걱정해 주는 것 같아 고마웠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불안하게 하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어느 날 회식 중이었다.
시작한 지 30분밖에 안 됐는데, 남자친구가 대뜸 전화해서 “어디야?”라고 묻는 것이다.
심지어 회식 장소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는, 빨리 정리하고 나오라는 것이 아닌가? 계속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직원들은 남자친구를 좋지 않게 여겼고, 나 역시 불편했다.
곤란한 상황이 반복되자 일상의 조화와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그와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그러던 중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가 마련됐다. 남자친구는 잠시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웠고,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나에게, “건슬아,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반쪽이 됐어? 현준이가 잘 안 해주니?”라고 물었다.
또 다른 친구는, “하긴 그렇게 집착을 하는데 건슬이가 숨이나 쉬겠냐! 지는 매일같이 늦게까지 놀면서.”라고 덧붙였다.
너무 황당했다. 출근할 때, 잘 때 꼬박꼬박 연락해서 틈틈이 나의 동향을 체크하더니, 막상 본인의 행동은 너무나 자유분방했던 것이다. 그의 친구들이 말하기로는 나와 굿 나이트 전화 통화 후, 자주 나가서 밤이 새도록 그렇게 즐겁게 놀았다고 했다.
어쩐지 한 번씩 잠이 안 와서 다시 전화를 걸 때면 늘 안 받았었다. 그러고서는 다음 날이 되면 어젠 잠들어서 몰랐다는 말 한마디로 넘기곤 했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계속하거나, 집 앞까지 찾아오는 등 난리가 났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친구들마저도 이해가 안 갔다. 차라리, 나한테 아예 말을 하지 말던가, 아니면 나 없을 때 본인들끼리 건슬이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게, 오히려 모두의 평화를 위한 현명한 처세술이 아닐까?
몰랐으면 몰랐을까,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연인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의 쾌락을 즐기고, 연인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려는 남자친구의 이기적인 태도에서 신뢰가 무너졌다.
그 순간! 배신감이 차올랐다.
집 앞 마트 가는 것도,
엄마와 쇼핑 가는 것도,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것도,
일일이 확인하며 나를 숨 막히게 하던 그였다.
여자친구가 마치 본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손에 쥐고 흔들었던 그의 태도가 괘씸했다.
“당신의 내면에 있는 검은 욕구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니, 이제는 자유를 향해 훨훨 날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