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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Mar 21. 2024

넌 어쩜 나를 이토록 안달 나게 하니?

봄인가 봄

작년 봄이었던가

간절하게 읊조렸다.


비야! 봄비야! 부디 1주일만 늦게 내려다오 제발!!




그해 3월 마지막주는 벚꽃 잎의 흩날림이 꿈길처럼 느껴졌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출근길 가로수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천지 삐깔이었다.

그 앞에서 꼭! 사진 한 장 찍고 싶었다.

시커맣게 타 들어가는 내 마음과는 달리 저렇게 뽀얗고, 하얗기만 한 벚꽃 앞에서!




그러나 바로 다음 주인 4월 초에 어린이집 평가제(국기 차원에서 어린이집을 주기적으로 평가하여 보육서비스의 질을 확보하는 제도)가 있어 고작 핸드폰에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은 소박한 소원을 이룰 여유조차 없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아 정말 벚꽃 앞에서 사진 딱 한 번만 찍게 해 주세요!!


난생처음 그런 기도를 해봤다.




가설을 세워 보자면,

벚꽃 잎을 무지막지하게 떨어트리는 비가 안 내려야 하고,

평가제 관찰자는 무조건 4월 첫 주 월요일에 들이닥쳐야 하고,

좋은 결과가 담보되어야 한다.

그런 전제가 허락된다면 벚꽃과의 사진 한판이 영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아름다움이 코앞에 있으나 그것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슬픈 봄날이었다.


봄이면 프리지어도 사서 사무실 한편 긴 화병에 담아 둔다.

한 묶음의 노랑 빛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한 30대 초반부터였을까?

프리지어를 보면 봄을, 봄을 보면 프리지어를 연상했다.

그런데... 이 꽃도 1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곧 시들어 바짝 말라버린다.

그때의 얘들은 그래도 거뜬히 1주일은 넘겼던 걸로 기억나건만 요사이 프리지어는 빨리 시들까?




봄이다.

봄은 늘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신학기를 어찌 저지 무사히 보내고 이제 한 시름 내려놓아야겠구나 하고 주변을 돌아보면  

어느덧 봄은 온 데 간데없고,

여름이라는 놈이 떡하니 다가와 손 부채질을 하게 한다.




그렇게 봄은

프리지어의 시듦처럼

봄비 앞에서 무기력하게 뚝뚝 떨어진 벚꽃 잎처럼

늘 나를 안달 나게 했다.




그러던 4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말 평가제 관찰자는 4월 3일 월요일에 들이닥쳤고, 봄비가 내리긴 했지만 아주 잠깐 내렸으며, 결과도 우수하게 나왔다. 관찰자가 어린이집을 총총히 떠나자마자 벚꽃나무 아래로 달려가 팔짝팔짝 뛰며 기어이 점프샷을 찍고야 말았다.


그렇게 1년 젊었던 나의 봄은 지금의 봄과 오버랩된다.




아직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춥다.

아침저녁 출퇴근길 오싹거리는 기운이 느껴지니 말이다.

봄은 없는 건가?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는 요 쌀쌀함은 그동안 봄을 기다렸던 나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3월은

봄인데 봄이 아니다

어느 땐 새빨간 거짓말쟁이 같기도 하다.


올해의 봄은 절대 뒤통수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속 태우지 않을 거다.

봄비 소식에도 가슴 철렁 내려 않지 않을 거다

 

정녕 꽃비를 맞고 말 테니!!


안달 나게 하는 봄

그래서 엇보다 더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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