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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Mar 15. 2024

수상한 커플이여... 부디 들키지 마시길...


 

  아들은 6시 30분에서 40분 사이 출근한다. 남편은 여덟 시에서 8시 반 사이에 출근한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9시부터 시작된다. 혼자 남게 되면 먼저 집안의 열 수 있는 창은 모두 열어젖히고 침구정리와 청소를 하면서 환기를 시킨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어디에 갈까 도서관? 카페? 그냥 집에 있을까... 어제까진 날씨가 흐렸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햇살이 환하다. 여기저기서 꽃들이 신나게 움트고 있겠구나... 덩달아 사람들도 밖으로 밖으로 나가겠구나...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런 아름다운 계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어딘가에 삐딱한 구석이 있는 건지 사람들이 너나없이 좋다고 우르르 몰려다니면 나는 좀 시크해진다. 그래서 거의 절정의 시기가 지난 다음에 조금 잠잠해졌을 때 슬쩍 가본다. 그러곤 허무해한다. 이렇게 지나가면 그뿐인걸 무에 그리 조바심치며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써... 꽃 진 자리에서 꽃 피어 절정이던 때를 상상하고 그리워하면서 그 자리에 다시 새 잎 돋는 거 보면 되지...


  어제도 집에 있었는데 오늘은 카페에 가볼까... 속에 올리브유가 살짝 들어간 부드러운 소금빵이 맛있는 베이커리 카페로... 막 마음이 그렇게 기울어질 무렵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남양주 북한강 맛집 조안면 북한강막국수닭갈비 뷰도 멋짐'이라는 블로그에 이어 '내일 이거 먹으러 가자. 맛있고 북한강 뷰도 보면서 먹을 수 있다네' 하는 톡까지.


  저저번주에는 양평 두물머리 쪽에 가서 양평 동동 국숫집의 육칼국수와 북한강가에 자리한 수수카페에 다녀왔고 저번주에는 영화 '파묘'를 봤는데 이번주에 북한강변에 가보잔다. 혹시 나보다 남편이 더 봄을 기다렸을까? 남편이 나보다 더 봄을 좋아하는 걸까? 지금까지는 한 번도 하지 않던 의문이 생겼다.

  저저번주에 가본 두물머리 북한강변엔 봄기운이 아직 물러나지 않은 겨울의 우중충한 나무껍질과 검불 밑에 숨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껍질과 검불을 걷어내고 천지사방에 올라와 있겠지... 노란 산수유도 만개했으려나...

  나는 좋아 좋아, 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나는 지금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의 대너리스라는 카페의 2층에 앉아 있다. 3층으로 된 중세시대의 귀족의 집 같은 카페는 건물 전체가 넝쿨로 뒤덮여 있다. 지금은 아직 말라비틀어진 넝쿨뿐이지만 연둣빛 새싹이 다투어 돋아나고 그것이 쑥쑥 자라 여름이 가까워지면 건물 전체가 녹색의 넝쿨로 뒤덮여 장관을 이룰 것이다.

바로 옆 북한강막국수닭갈비집에서 막국수와 닭갈비를 먹고 왔을 때는 창가 쪽 자리가 없었다. 야외테이블에 앉기에는 아직 강바람 봄바람이 차가웠다. 3층까지 두 번을 오르락내리락했는데 창가자리가 없어서 안쪽 자리에 앉을까 그냥 집으로 가서 집 근처 카페로 갈까 망설이는정말 운 좋게도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던 두 여자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 옆에 가서 섰고 우리는 그렇게 창가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 8천 원이고 집 앞 베이커리 카페에서 2500원 하는 소금빵이 5500원이다. 이건 완전히 뷰값인 것 같으니 우리 영업 끝날 때까지 있자, 면서 자리를 잡았다. 고개를 들면 뿌연 하늘과 북한산의 부드러운 산맥과  산밑에 자리 잡은 건물들과 좀 짙은 녹색의 굼벵이 떼들이 한가로이 슬렁슬렁 기어가는 듯한 강물이 창 가득 펼쳐져 있다. 가끔 여러 마리의 새떼가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또 가끔은 한 마리의 새가 외롭고도 자유롭게  물표면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또 가끔은 두 마리의 새가 다정하게 나란히 날아간다. 가끔은 사람 한 명을 매단 요트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강가엔 아직 가늘고 산만한 나뭇가지가 그대로인 나무와 자잘한 잎들이 돋아난 나무, 마른 잎들을 그대로 달고 있는 나무들이 물결이 이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흔들린다.  다 같은 강가의 나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저마다의 속도와 모습으로 봄을 맞이하고 있다.

카페 안은 사람들이 내뱉는 소음으로 웅웅거린다.  남편은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나는 그 옆에서 블루투스 자판을 이용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자판에서 눈을 떼기만 해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부드럽게 흔들리는 강가의 나무들이 보인다. 조금 오래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배에 타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인다. 아니 우리는 모두 세월의 물결 을 타고 흘러가고 있을 것이니 그건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는  어디로들 흘러 가고 있는가...



강가의 봄풍경에 취해 있는 내 눈에 우리의 옆자리 남녀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들어왔다. 30대 중후반쯤 될까. 남자는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깔끔하고 핸섬한 편에 속한다. 여자는 고 긴 검은색 플레어스커트에 타이트한 회색빛 가디건을 입고 소매와 목에 흰색 블라우스의 프릴이 나와 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언뜻언뜻 보이는 옆모습과 뒤태가 날씬하고 이쁘장하다. 그들은 아예 의자를 창쪽으로 돌려놓고 강을 향해 앉아 있다. 그러니까 카페의 모든 사람들을 등지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쯤이야 뭐 별다를 것도 없다.  그런데 다리를 꼬고 앉은 여자의  플레어스커트 위에 있는 그들의 손이다.  밑에 있는 남자의 손과 위에 있는  여자의 손은 깍지를 고 있는데

가만히 있지를 않고  만지작거리고 쓰다듬고 쪼물딱거리고 있다. 가끔 깍지 낀 손이 풀리면 남자의 손이 여자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음... 부부가 바깥에서 저렇게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접착제로 붙혀 놓은듯 딱 붙어앉아 여자는 무언가 쉬지않고 말을 하고 남자는 자주 호응해 준다. 눈과 귀는  내 자리에서 대각선 으로 등과 옆모습이 보이는 그들을 몰래 몰래 관찰하느라 바쁘다.  그런 나의 의구심과 호기심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여자의 속삭임 속에 섞여 나오는  남편이... 남편은... 이라는 단어다.

  옳거니, 너네 확실히 부부가 아니구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불륜이구나...


  들은 30분 정도 있었을 뿐인데 일어났다. 그들도 어렵게 자리를 잡았을텐데 벌써 일어난다고?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다...고...남자가 먼저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오고  여자가 화장실에 간다.  남자는 화장실에 간 여자를  서서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려도 여자는 나오지 않는다. 아직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창가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남자는  엉거주춤 자리를 내어주며  한 무리를 향해 여기 우리 일어납니다...라고 말한다. 젊은이 네 명이 앗싸 하면서 자리에 와서 앉는다. 남자는 화장실이 보이는 난간에 기대어 서 있다. 남자가 들고 있는 쟁반에는  빨대가 꽂힌 채 반 정도가 남아 있는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과 거의 먹은  조각케이크의 부스러기가   어지다.

 여자는 화장실에서 너무 오래 있는다.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남자가 먼저 1층으로 내려가고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 화장실에서 여자가 나온다. 나는 여자의 정면을 그제야 . 아주잠깐, 슬쩍이지만. 키도 작고 얼굴도 작고 몸집도 작고 가늘다. 작고 가는 몸에 입은 A자로 퍼진 검은색 플레어스커트가 여성적이고 고혹적이다. 얼굴정말 작고 이쁘장한데 아무래도 의술의 힘을 빌린 듯 부자연스럽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지금 누구보다 달뜬 봄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보다 더 좋은...나같은 관찰자가 없는... 둘 만의... 곳으로...가는가...먹으면  투명인간이 되는 약이 있다면 나는 그 약을 먹고 투명인간이 되어 그들을 따라 가보고 싶다.


부디 들키지 않기를... 이왕이면 이 봄날처럼 아름답고 아쉽게 끝나기를... 


천한 호기심이 미안하고 부끄러워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빌어주었다. 


가자, 남편이 일을 마무리한다. 오후 4시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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