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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Oct 01. 2023

추석 명절에 내가 만난 또 다른 세상 1

지리산 천왕봉 등산과 참숯굴찜질방

  추석 전날(9월 28일)  오후 4시 무렵, 일박 5만 원에 미리 예약해 둔 산청군 사천면   지리산중산리탐방지원센터 앞 지리산거북이산장을 향해 출발했다.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을 피해볼 심산이었다. 웬일로 달리는가 싶더니 안성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해서 거북이처럼 가야 했다. 거북이 산장에는 거북이처럼 가야 맞지... 토끼처럼 가면 아마 쫓겨날걸....  나의 이런 신소리에도 남편은 무반응이었다. 워낙 차 막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니 이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차창밖의 맑고 푸른 가을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평화로운 산과 들과 마을들을 구경하고 휴게소에서 사 먹을 음식 메뉴도 생각해 보고 사오 년 전 동창들과 다녀온 지리산 등산도 떠올려보며 지겨운 줄 몰랐다. 가끔 남편을 돌아보며 괜찮아? 안 졸려? 사과 깎아 줘? 물어보기도 하고, 간혹 고속도로가 뚫려 속도를 너무 내면 천천히 가 누구랑 약속한 것도 아닌데... 자제시키기도 하고, 절대 안 줄 걸 뻔히 알면서도 힘들면 언제든 말해 내가 운전할게... 그렇게 놀리듯이 말하기도 했다.





 

  사오 년 전 동창 10여 명과의 지리산 등산 때는 늦은 가을이었고 중산리 탐방 안내소에서 오후 늦게 등산을 시작하여 로터리대피소에서 일박을 하고 새벽에 천왕봉을 향해 출발했었다. 동창 산악회가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분위기가 한껏 들떠 있을 때였다. 다음날의 등산을 대비해 일찍 잠자리에 든 동창도 있었고 서너 명은 새벽까지 대피소에서 떨어진 야영장에서 술 마시며 떠들고 놀았다. 나는 새벽까지 술 마시고 떠들며 논 무리에 속했다. 역시나 다음날 새벽의 등산은 힘들었다. 더구나 새벽 등산 중에 아랫배가 묵직해 참을 수가 없었다. 민폐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는 참을 때까지 참았다. 그런데 다른 한 동창이 고맙게도 동창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대변을 봐야 할 것 같다고.....

  그때서야 나도 사실은.... 하면서 고백을 했다.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마땅한 장소를 한참이나 찾아서 겨우 볼일을 보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는데 내 뒤를 따라오던 동창 녀석,  신소리 잘하기로 유명한 짓궂은 녀석이 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ㅇㅇ 너 잘 안 닦았나? 냄시(냄새) 나.... "


  "미안해.... 아마도.... 너무 어두워서.... 그랬나 봐.... 그런데 그런 말은 좀 작게 하지 창피하잖아.... "


  내가 응수했다.


  "미안해.... 참을라 했는데 냄시가 너무 나서...  "

 

  나는 돌아서서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하고 녀석이 키득거리며 피하는 시늉을 했다.


 여기저기서 키득대는 소리가 들렸다. 밝은 날이었다면 아마도 내 붉어진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을 것이다.

그 동창산악회는 2년여 만에 의견충돌과 갈등으로 해체되었다.






  


  휴게소 두 곳 쉬고 밤 11시 무렵 산장에 도착했다. 조용하고 깜깜했다. 안내해 주는 산장주인도 없었다. 건물 뒤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짧은 다리를 건너니 2층 숙소가 바로 나왔다. 예약한 방의 문을 밀어보니 바로 열렸다. 모두들 잠든 것인지 추석 전날이라 손님이 아무도 없는 것인지 그 어떤 기척도 없었다.  

씻고 소주 한 병과 휴게소에서 산 매운 어묵과 집에서 싸 온 김치와 무생채를 안주로 내놨다. 내가 집에서 준비할 때는 그런 걸 뭐 하려 가져가냐고 핀잔을 주더니 소주 안주로 잘만 먹었다.


"어디에 갈 때 가져갈까 말까 갈등이 생길 경우엔 가져가는 편이 낫더라고... 직접 들고 매고 가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내 말이 맞지?"


나는 비로소 큰 소리를 쳤고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에 나뭇잎 뒤척이는 소리치고는 너무 컸다. 밤이 깊고 고요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는  지리산 밑, 산은 높고 골은  깊으니까 깊은 곳에 모인 바람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마구 부딪치고 뒹굴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어서 그만큼 바람소리가 큰 거겠지 싶었다. 그래도 너무 컸다. 빗소리 같기도 하고 먼바다 파도소리 같기도 했다. 그래서 혼자 잠깐 나가 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와락 달려들었다. 산장을 에워싼 숲에 서 있는 나무의 무성한 잎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아니 그건 나무가 아니라 나무로 생각되는 형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그저 일렁이고 있었으므로. 무서움을 별로 타지 않는 성격인데도 어쩐지 무서웠다. 그래서 뛰어들어가 남편에게 같이 나가보자 했다. 남편은 흔쾌히 일어나 앞장섰다. 남편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어? 거기 아닌데... 하면서도 나는 남편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식당이 나왔다. 밖으로 나가니 야외테이블이 열 개도 넘게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혼자서 나가본 곳은 주차장이 있는 건물의 뒤편이었고 우리의 2층 숙소와 바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대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어서 2층과 주차장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방향감각이 없는 나는 일층으로 내려가 보는 건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우리가 들어왔던 곳으로만 나가봤던 것이다. 닭대가리처럼.

산장 앞은 공용주차장이고 산장과 공용주차장 사이의 도로 끝에 등산로의 시작점인 듯 오르막길이 어둠 속에 가로등의 불빛을 받으며 약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밖으로 불러 낸 그 문제의 바람소리, 그 바람소리는 산장 옆 계곡에서 나는 물소리였다.


"아 어쩐지.... 바람소리치고는 너무 크다 했어..."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는 동굴 속에서의 대화처럼 울려서 또렷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작별인사 같았다. 안녕히 가시라 수고하셔라 같은. 여전히 바람에 무성한 나무싶이 일제히 뒤채는 소리 같은, 먼바다 파도소리 같은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붉은 형광색 차단기가 내려진 입구에서 차 한 대가 막 돌아가고 있었고  차단기 옆에 유독 환한 가로등 밑에 사람 한 명이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배낭을 메고 등산화의 끈을 조이는 듯 엉거주춤 앉아 있었다.  다시 일어나 발을 한 두 번 쿵쿵 디뎌 본 후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사방을 한번  비춰보더니 오르막길을 힘차게 올라갔다. 그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에도 나는 한참 그곳을 바라보았다.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 누웠는데 이제는 조금 전보다 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일어나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이번엔 두 세병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오르막길을 힘차고 가볍게 올라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새벽 세 시가 막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2023년의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의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침 7시. 산장 앞에 순두류(경남 환경교육원)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한 줄이 길었다. 중장년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무인카페에서 구매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나눠마시며 잠시 야외테이블에 잠시 앉아 있었다.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 20대로 보이는 남매와 머리가 히끗한 아버지가 앉아 귤을 까먹고 있었다. 추석에 아버지와 함께 지리산에 오르는 집안이라.... 혼자 추석을 보낼 아들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었다. 명절을 아들과 따로 보내는 것이.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기제사만 지내고 명절 제사는 지내지 않기로 1년 전에 결정했다. 물론 남편의 뜻이었다. 시댁은 재혼가정이며 그 복잡하고 남다른 사정과 남편의 속마음을 사실 나는 잘 모른다. 남편은 시댁 문제에 예민하며 시댁 문제로 여러 번 심각한 다툼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시댁 문제에 대해선 철저하게 입을 닫기로 했다. 그랬더니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워졌다. 지난 설 명절 포항 쪽 여행에는  따라나서던 아들이 이번에는  단호하게 가지 않겠다고 했다. 특히 등산은 더더욱 싫다 했다. 10대 때는 가기 싫다는 애를 돈으로 꼬셔서 몇 번 같이 갔지만 이젠 그것도 먹혀들지 않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형제가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좀 달라졌을까. 그리고 한창 아빠가 필요할 때 자주 함께 했었더라면 지금보다는 좀 더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는 부자관계가 형성되었을까.


   새벽에 본 야간등산객들이 걸어간 길을 버스로 이동, 순두류에 도착하여 7시 30분부터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려 로터리대피소에 도착했고 그리 힘들지 않았다. 10시 40분 무렵 천왕봉에 도착했는데 이 구간은 가파른  계단이 많고 길어서  선 체로 숨을 몰아쉬며 자주 쉬었다. 땀이 많이 흘렀지만 잠깐 서 있노라면 시원하고 맑은 바람이 불어와 흐르는 땀을 다 식혀 주었다. 그런 '산바람' 은 내가 등산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주는 시원한 물같은 그 '산바람'의 맛.


  많은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올라갔다. 내 앞에 가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뒤에서 보이기도 하고 뒤에 쳐져 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내 앞에서 올라가고 있기도 했다. 남편과는 바로 뒤에서 남편의 발자국을 따라 올라가기도 했고  거리가 많이 벌어져 안 보일 때도 있었고 다시 좁혀지기도 했고 또 멀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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