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를 약간 벗어난 평평한 돌 위에 외국인 성인 남자와 자그마한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성인 남자는 키가 2미터는 족히 넘을 듯하고 등치가 상당히 큰데 비해 남자아이는 일고 여덟 살쯤 되어 보이고 아주 작았다. 둘 다 빵빵한 배낭을 멘 채로 좁은 돌 위에 나란히 앉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인 남자는 그냥 과묵해 보이는데 남자아이는 어딘가 모르게 시니컬해 보였다. 밝은 햇살아래 아이의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하얗게 보였고 힘들다거나 즐겁다거나 짜증이 나거나 하는 아이 다운 표정이 없었다.
"아빠와 아들인가 봐... 그런데 아들이 아빠의 골격을 닮지 않았어. 아빠는 굵은데 아이는 가늘어..."
"크면서 달라질 수도 있지... 엄마 쪽을 닮았을 수도 있고..."
나와 남편은 그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그들을 지나쳐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다가 이번에는 등산로를 벗어난 곳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바위틈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그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조막만 한 손을 모아 물을 받았다가 다시 흘려보내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등치 큰 아빠가 보이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려 보았다. 등치 큰 백인 아빠는 저 높은 곳 등산로 옆 전망대로 만들어놓은 데크에 서서 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산은 점점 가팔라졌고 나는 자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쉬다가 숨이 안정을 되찾으면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최대한 앞서가는 남편의 뒷모습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남편은 나를 기다리느라 자주 걸음을 멈췄다.
그 와중에 등산객들 사이에 섞여 계단의 난간을 붙잡고 힘들게 오르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이번에도 등치 큰 아빠는 저 먼 곳에서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아이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난간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오르고 있었다.
"내가 아까 저 배낭을 들어 봤거든요. 엄청 무거워요...."
아이에 대한 호기심이 비단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아이에게서 시선을 쉽게 떼지 못하자 지나가던 남자성인등산객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면서 지나쳐 올라갔다.
"저것이 우리나라 아이 교육과 다른 점인가 봐... 우리나라 아빠였다면 아이가 저렇게 뒤쳐져서 힘들게 올라가게 내버려 두지 않을걸... 배낭을 대신 들어주거나 앞에서 잡아당기거나 뒤에서 밀어주거나 아니면 번쩍 안아 들고 올라갔을걸... 아니면 빨리 오라고 소리라도 한 번 질렀을걸... 그런데 저거 봐... 저렇게 지켜만 보잖아. 아이가 힘들어해도 중간에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겨도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잖아. 도와주지도 않고 재촉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아이가 자기 힘으로 해낼 수 있도록 지켜봐 주기만 하잖아... 그렇지? "
남편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 곁을 지나가면서 무슨 말인가를 해주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고작 하이, 아유오케이? 만 입에서 맴돌았는데 그 말조차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외국인이라고 호기심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실례가 될 수도 있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 옆을 지나가다가 나도 모르게 파이팅! 하면서 주먹을 쥐어 보였다. 아이가 계단의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한 상태로 나를 올려다보았는데 그 어떤 표정도 없었다. 나는 한번 더 주먹을 쥐어 보이며 파이팅! 하고 작지만 확실하게 말했으나 아이는 여전히 그 어떤 표정도 없었다. 나는 좀 창피해졌다.
"독일인 같던데? 아까 잠깐 말하는 거 들어보니..."
남편이 말했다.
"그래? 독일인들은 파이팅!이라는 말 모르겠네... 어쩐지 아이 표정이..."
그러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파이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콩글리쉬라는 사실이.
아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독일인이어서 아예 못 알아 들었다면 그나마 더 다행일 것 같았다. 왜 안 하던 오지랖을??? 힘들어서 나사가 빠졌나??
드디어 세 시간을 걸어 올라 해발 1,915m 천왕봉에 섰다. 정상석 옆엔 인증샷을 찍으려는 줄이 길었다. 우리는 인증샷 찍기를 포기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햇살은 눈부시면서 따뜻하고 바람은 풍경소리처럼 맑고 상쾌하고 가벼웠다. 하늘빛에 물들어 여러 겹으로 겹쳐 부드러운 곡선으로 순하게 누워있는 먼 산맥들은 멀어질수록 그 윤곽선이 흐릿해져 하늘과 구별이 되지 않았다.
잠시나마 세상 모든 잡념이 사라졌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나 자신도 조금은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싶어졌다.
그 햇살과 바람 속에 선글라스를 쓰고 앉아 비화식 발열 도시락 '핫 앤 쿡 짬뽕맛'과 구운 계란과 사과를 먹었다. 햇살은 내리쬐고 있었지만 그늘을 찾아갈 필요까진 없었다. 우리 둘의 옆에는 거의 1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붙어 앉아 치킨과 족발 부침개 등 드물게 거한 음식을 펼쳐놓고 먹고 있었다. 대화의 호칭을 들어보니 모두가 가족인 것 같았다. 삼촌이라는 말도 할아버지라는 말도 아버지라는 누나라는 말도 들렸다.
잠시 그 독일인 아빠와 아이가 생각나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하산길에 올랐다. 장터목 대피소를 지나고 유암폭포 아래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잠시 물에 발을 담그고 쉬었다. 물이 너무 차가워서 오래 담그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오 년 전 동창들과의 등산 때도 이 폭포에서 앉아 쉬며 사진을 많이 찍었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늦은 가을이어서 산 전체는 물론 특히 폭포 주변이 온통 울긋불긋했으며 물 위에도 오색으로 물든 단풍잎들이 둥둥 떠다녔었다.
지나간 한 시절은 이렇게 가끔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 의미를 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후 4시 무렵 거북이산장에 돌아왔다. 8시간이 좀 넘는 시간을 지리산 등산에 바쳤다. 가까운 식당에 가서 산채비빔밥을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다 먹었다. 의논 끝에 찜질방에 가서 씻고 쉬다가 늦은 밤이나 새벽 차가 밀리지 않는 시간에 출발하기로 했다.
검색해서 찾아낸 찜질방은 '지리산참숯굴찜질방'
일반 찜질방은 오래전 가 본 경험이 있는데 굴찜질방은 친구들에게 말로만 들어봤지 처음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그냥 씻고 잠시 쉬는 것이었으므로 굳이 참숯굴찜질방일 필요는 없었으나 가장 가깝고 고속도로를 타기 좋은 위치라는 점에서 가기로 했다.
멀리 단층의 건물 지붕 세 개의 굴뚝에서 흰연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높은 산 밑의 산그림자가 내려오는 늦은 오후여서일까. 굴뚝에서 뿜어나오는 흰 연기는 살아서 꿈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굵은 이무기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주차장 가까이에 이르니 참나무일 것으로 짐작되는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게 보였다. 주차된 차들과 들어오는 차들이 뒤엉켰다. 그 사이사이로 막 도착한 사람들은 손에 손에 목욕용품이 들어 있는 바구니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주차를 시켜놓고 건물 가까이 가니 땀에 젖어 얼룩덜룩한 황토색 옷을 입고 나무로 된 게다를 신고 엉거주춤 느릿느릿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더 가까이 가보니 건물 밖에 황토로 만든 무덤처럼 둥근 굴이 다섯 개 정도 있었다. 굴의 입구에 검은색 커튼이 쳐져 있었고 입구 구석에 조명등 하나가 켜져 있었고 굴 앞마다 평상이 놓여 있었다. 평상 위에는 역시 땀으로 얼룩덜룩한 황토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수건을 머리에 덮어쓰거나 목에 두르고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모두들 어느 정도 지치고 나른해 보였다. 호기심에 굴 가까이 가서 커튼을 살짝 들어 보았더니 뜨거운 열기가 와락 달려들었다. 그 어두운 굴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형체가 보였다. 우리의 목적은 굴찜질이 아니라 샤워이며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이었기에 구경으로 끝내거나 한 두 번 정도 들어가 볼 듯했다.
오전 여섯 시부터 12시까지 주간이용료는 8000원이고 오후 여섯 시부터 다음날 12시까지 야간 이용료는 12000원이었다. 생각보다 저렴했다. 어찌 될지 몰라 야간이용으로 끊었다.
아 그러나 우리가 원하던 뜨거운 탕은 없었다. 샤워장은 말 그대로 샤워만 할 수 있었다. 건물은 낡고 시설은 허술했다. 더구나 쾌적하고 넓고 따뜻한 수면실을 기대했는데 그런 수면실도 없었다. 남자수면실과 여자수면실과 다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넓은 실내 휴게실이 있었지만 그리 넓지고 않고 따뜻하지도 시원하지도 쾌적하지도 않았다. 모든 게 어수선하고 낡았다. 아무려나 우리는 지금 몹시도 피곤한 상태이니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두세 시간 깊은 잠을 잘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호기심에 남편은 한번 나는 두 번 황토굴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바로 옆 식당에서 소머리국밥 곱빼기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일찌감치 매트와 이불과 베개를 제공받아 들고 휴게실로 들어갔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휴게실의 좋은 자리는 벌써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휴게실 안쪽에 여자수면실이 있었는데 그 바로 앞에 겨우 두 자리를 마련했다. 시간이 가면서 잠을 자려는 사람들이 매트와 이불과 베개를 들고 들어왔다. 휴게실은 금방 자리가 다 찼다. 모두 벽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웠다. 자연스럽게 중앙은 통로가 되었다.
주로 나이가 지긋한 부부로 보이는 커플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한 커플은 앉아 있는 남자가 누워 있는 여자의 발목을 정성껏 주물러주고 있었다. 젊은 커플도 있었고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도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다. 우리 옆자리에는 20대 성인으로 보이는 아들딸과 중년의 부부 4인 가족이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다. 아들딸을 가운데 두고 엄마와 아빠가 바깥쪽에 누워 있었다. 딸과 엄마는 머리를 맞대고 소곤소곤 얘기를 하고 있었고 아들은 반듯하게 누워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고 머리가 히끗한 아빠는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커다란 배낭과 가방도 옆에 있었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추석날 밤을 이렇게 찜질방에 다들 나와서 자는 것일까... 사업에 실패해서 빚쟁이들이 들이닥쳤나? 그렇게 보기엔 표정들이 그리 어둡지 않았다. 아니면 여행 중 단순히 숙박비를 아끼려고? 또 무슨 이유가 있을까... 아 빈약한 나의 상상력이여....
남편은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잠들어 있는데 나는 그 옆에서 잠들지 못하고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또 나의 호기심을 발동시킨 사람은 혼자 온 여자였다. 30대나 40대 초반이나 될까... 그녀는 여자수면실 바로 앞 모퉁이에 일찌감치 매트를 깔고 음료수까지 준비해 두고 누워 있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뭔가 불안한 시선으로 휴게실을 둘러보기도 하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밤 9시가 넘으면서 더 조용해지기는커녕 더욱 시끄러워졌다. 다름 아닌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왜 야간이용료는 받아놓고 자리가 없느냐고 나이 든 여자가 소리를 질렀고 이어서 주인여자인듯한 여자가 쿵쿵거리면서 들어와서 왜 한 사람이 매트를 두 개를 쓰느냐 안 그래도 모자라는데 하면서 손님을 꾸짖고 또 누군가는 왜 자기가 깔아놓은 매트를 말도 없이 빼갔느냐고 항의를 해댔다. 잠들어 있던 남편이 몸을 뒤채면서 인상을 쓰며 짜증을 냈다. 잠들어 있던 다른 사람들도 꿈틀대며 잠에서 깨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조용히 해 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광경을 일어나 앉아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매트를 안고 두리번거리던 주인여자가 혼자 누워 있는 여자에게서 시선을 고정시켰다.
"혼자예요? 혼자면 여자수면실에 들어가면 안 돼요? 여자수면실은 자리도 많은데... "
주인여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혼자온 여자는
"답답해서 싫어요..."
하면서 벽을 향해 휙 돌아누웠다. 양해는커녕 당당하기까지 했다. 저 여자는 또 무슨 사연으로 추석날을 저렇게 혼자 찜질방에서 보내는 것일까. 더구나 여자수면실이 답답해서 싫다고? 그러면 이런 광장 같은 시끌벅적한 곳에서 잠든 경험이 많은 것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야 맘이 놓이는 것일까...
남편이 얼굴에서 수건을 걷어내고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뭐야 지금 왜 이렇게 시끄러워... 낮게 으르릉댔다. 그때서야 주인여자의 언성이 낮아졌다. 나는 살며시 일어나 여자수면실 안을 살펴보았다.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다리를 저는 여자노인이 천천히 걸어 여자수면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찜질방을 나왔다. 한 밤의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휴게소 두 곳에서 잠시 쉬었고 조수석의 나는 거의 잠만 잤다. 새벽 3시 무렵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명절의 긴 연휴에 공항과 고향집과 관광지와 식당과 시장만 북적이는 게 아니다. 지리산 천왕봉도 북적이고 찜질방도 북적인다. 이 다양한 삶의 형태라니.... 백 명이면 백 개의 삶이 천 명이면 천 개의 삶이 존재한다. 그 어떤 삶도 같지 않다. 얼굴 생김새가 모두 다른 것처럼.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가 될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