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맞이한 엄마의 88세 생신날 아침, 식사 후 올케언니의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뭔가 자꾸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이렇게 날씨가 쌀쌀해졌는데도 날벌레가 날아다니나, 시골이어서 그런가, 생각하면서 설거지하던 손을 들어 눈앞을 휘저었다. 날벌레는 아무리 쫓아도 날아가지 않고 눈앞에서 알짱거렸다. 머리를 흔들기도 하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놈의 딱 한 마리 날벌레는 계속 눈앞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어른거렸다.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눈 속에 뭐가 들어갔나 싶어 설거지를 끝내고 눈을 비벼대도 사라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눈꺼풀을 손으로 까뒤집으며 언니 앞으로 다가갔다.
"언니야...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 눈앞에서 날벌레가 한 마리 계속 날아다니는 거 같아.... "
"그거 비문증이야 "
나보다 다섯 살 위인 언니의 대답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그게 뭐야? "
"노화현상이지 뭐야... "
언니는 곧바로 네이버에서 '비문증'을 찾아 읽어줬다.
----- 비문증이란 먼지 같기도 하고 점으로 보이기도 하고 실로 보이기도 하고 뭔가 둥둥둥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서 옛날 말로 '비문증', 요즘은 날파리처럼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날파리증'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비문증은 생리적인 요인으로 사실 치료가 딱히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비문증은 유리체라는 눈 속을 채우고 있는 투명한 물질이 나이가 들수록 변성되어 작은 부유물이 뜨거나 혼탁이 생겨 눈으로 들어가는 빛을 가리게 되어 생기게 됩니다. 이런 변성은 대부분 저절로 생기게 되며 시야를 가려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눈의 건강에 큰 위험이 되는 일은 적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비문증은 나이 든 분이나 고도 근시가 있는 분들에게서 생리적인 유리체 변화로 오게 됩니다...... 그 물체를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것을 먼저 권유해 드리게 되는데.... 갑자기 떠다니는 물체가 많아질 때, 빛이 번쩍거릴 때, 또는 눈앞에 무엇이 가리는 것 같은 증상이 계속해서 느껴질 때는 반드시 검사를 받는 것을 권유드립니다....
언니는 긴 글을 끝까지 유치원생처럼 또랑또랑하게 읽어 준 후 말했다.
"넌 이제 왔니? 나는 버얼써 왔다..."
다행히 나는 날파리보다도 작은 하루살이 날벌레 같은 것이고 아직은 딱 한 마리뿐이다. 정면을 보고 있으면 왼쪽눈 옆으로 15도쯤 비스듬한 곳에 있고 눈동자를 움직일 때마다 정확하게 따라 움직인다. 여러 신체 기능 중 마지막까지 유지하고 싶은 게 나는 '눈'이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해도 볼 수만 있다면, 그래서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영양제는 안 먹어도 눈 영양제 루테인은 몇 년째 복용하고 있는데 결국 올 것은 이렇게 오고야 말았다.
이젠 날벌레가 안 보이면 눈동자를 움직여 어디 있나 하고 찾아본다. 가끔씩 안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일시적으로 없어진 것일 수도 있겠고 내가 의식을 안 해서 있는데도 못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특히 자고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이놈의 날벌레 먼저 찾아보게 되었다. 반려견이나 반려묘 찾듯이 말이다. 안 보이면 눈동자를 움직여 찾아내고야 만다. 물론 안보이기를 바라면서.
반가워 날벌레야... 나는 너 한 마리로만 족하니 더 이상 늘리지나 말아 줘.... 부탁이야... 너 한 마리 없애자고 안과에 가서 수술을 하지는 않을 거야.... 너보다 수술이 더 무서워 나는.... 그러니까 부탁한다 날벌레야... 아 물론 사라져 주면 더 좋겠지만 말이야...
아무려나 지금은 한 마리뿐이어서 그나마 다행이고 노화현상이라는 데야 어찌하겠는가. 아직도 머리에 염색하지 않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올해 들어 부쩍 흰머리가 많이 올라와서 일주일에 두세 번 쓰던 새치커버샴푸를 쓰는 횟수를 늘렸다. 머지않아 커버샴푸로도 커버가 안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어제는 집에서 무기력증에 빠진 환자처럼 누워만 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차를 몰고 배곧한울공원에 갔다. 일몰의 시간도 지나 어둠이 한 겹쯤 내려온 시간이었다. 저녁시간이어서인지 산책 나온 사람들이 아주 드물었다. 바닷물은 썰물이 되어 저 멀리 흰 띠처럼만 보이고 가까이에는 희끄무레하고 거무티티한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그 많은 갈매기들은 어디로 갔는지 가끔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울음소리 들리지 않았다. 조명등이 켜진 산책길을 한 시간이 넘도록 천천히 걸었다. 걷다가 걷다가 바다를 향해 걸음을 멈추고 바다 너머 불야성을 이룬 화려한 도시를 오래 바라보기도 했다. 그날따라 그 화려하고 찬란한 바다 너머의 불빛은 어쩐지 나를 밀어낸 나를 거부하는 꿈의 세계인 것만 같았다. 나와 꿈 사이의 거리는 아직도 너무 멀었다. 아득할 정도로 멀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문득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라는 고 박완서 작가의 소설 제목이 떠올랐다. 삶의 어느 길목에서, 남들은 야무지게 현실의 성을 쌓고 있을 때 나 혼자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듯 불안하고 외로울 때마다 나도 모르게 탄식처럼 중얼거리던 문장이었다. 그런데 노화현상이 하나 둘 나타나는 지금도 이렇게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탄식처럼 중얼거리지만 종내는 화살처럼 내 가슴에 아프게 꽂히는.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한층 깊어진 어둠 속으로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미 어두워진 길을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걸어 돌아오는 길에 언뜻 올려다본 하늘은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