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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봄이 와도 설레지 않는다

by 정유쾌한씨

사람들은 따스한 봄바람이 불면 설렌다고 한다. 나도 역시 그랬다, 결혼 전에는.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시골에 있는 시댁에는 일이 많아진다.


남편 “자기야, 이번 주말에 약속 있어?”

나 “왜요?”

남편 “엄마가 자기도 오래.”

나 “토요일에 약속 있으니까 일요일에 가요. 이번엔 무슨 일해요?”

남편 “엄마가 간장도 달이고, 메주도 만들고, 땅콩밭에 비닐도 씌운대. 일이 적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할 거니까.”


남편의 말투와 표정에는 장난기가 배어 있다. 나는 썩소(썩은 미소)를 지었다.


신혼 초에는 시댁에 일하러 오라고 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처음 해보는 밭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다. 그중에서도 고추 따기가 가장 힘들었다. 고추를 따다가 허리가 끓어질 듯 아파서 남편에게 “이 정도면 사기 결혼 아니야?”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결혼 전에 남편은 밭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골 사는 남자와 결혼하면서 내가 밭일을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누구 탓을 하랴, 내가 선택했는데.


언제부터인가(정확한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댁에서 간장, 들기름, 쌀 등을 가져다 먹어서 생활비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불평 없이 밭일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너무 힘든 날에는 차라리 사 먹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봄바람이 불고 벚꽃이 피면 나는 밭일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인다.


남편 “자기는 좋겠다. 엄마가 일요일에 약속 있다고 토요일에 일한대.”

나 “나 없어도 괜찮아요?”

남편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토요일에 지인의 북토크에 참석하러 경주에 간다. 몸은 경주에 있어도 마음은 시댁에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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