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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끼리 의리 지키기 힘드네

by 정유쾌한씨

지은 지 30년 정도 된 시댁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수도관에 누수가 생겨 땅을 파고 배관을 교체해야 했다. 큰 비용이 드는 큰 공사였다. 남편은 이틀 연속으로 시댁에 가야 했다.


“아흐, 오늘 너무 힘들었어. 내일 자기도 같이 갈래?”

“내가 가서 뭐해요?”


최근에 바빠서 제대로 쉬지 못했던 나는 내일을 기다렸다. 미루었던 일들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심부름?”

“자기야, 나 내일은 오랜만에 늦잠 자려고 했는데... 할 일도 많고.”

“알겠어...”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집을 나섰고, 나는 잠을 다시 자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10분 정도 뒤척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집안일을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이른 점심을 먹으면서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갈까.


며칠 전 에어컨이 안 켜진다는 엄마의 말에 밤늦은 시간에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향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남편은 친정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나는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출 준비를 하고 시댁으로 향했다. 시댁은 우리 집에서 버스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시댁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다. 그 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어 번거롭더라도 마을버스와 전철,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어다닌 탓에 얼굴과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부부끼리 의리 지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를 보고 기뻐할 남편의 표정을 상상하니 마음이 설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시댁으로 달음질했다. 나를 본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어머니와 남편을 놀라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연락을 안 하고 갔는데, 공사는 이미 끝나 있었다. 허탈했다. 어머니는 안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시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어머니, 저녁은 제가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만둣국이나 먹지, 뭐.”


우리는 만둣국 집에 가서 만둣국과 비빔칼국수를 먹었다. 시원한 비빔칼국수를 먹으니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국물만 남은 만둣국 그릇을 양손으로 들어 국물까지 들이켜고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크으, 소리와 함께. 나는 그제서야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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