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질과 서포트에 눈물나는 줄다리기
데이터 분석가로 업무를 한지도 3년쯤 되었습니다.
항상 좋은 분석을 해서 회사 의사결정에 반영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도 많았고
"나는 분석을 잘 하고 있는 걸까"에서 "분석이라는 업무가 정말 필요한 업무일까?"까지 고민이 이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이번 화에는 그런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머니볼> 입니다.
전통적인 스카우팅 방식에 회의를 느낀 단장 ‘빌리 빈’이 선수들의 능력을 감이 아닌 숫자로 평가하는 세이버매트릭스 이론을 도입해 팀을 개편하고, 그 과감한 전략으로 팀을 연승으로 이끌게 되는 이야기죠.
이 영화에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감각에 의존하던 팀 운영에서, 정량적인 지표와 분석을 통해 실제 혁신을 이뤄낸 실화라는 점이
분석을 하는 입장에서는 유난히 가슴 뛰게 느껴집니다.
영화가 끝나면 데이터 분석가인 내 자신에 대한 뽕도 차오르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성공 케이스를 본 것 같아 어딘가 모를 대리만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현업에 적용해 보면 <머니볼> 같은 순간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영화 속 스카우터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웬 경험도 없는 놈이 들어와서 숫자 빼곡히 프린트된 종이를 던져주더니 여태까지 잘 해왔던 방식을 한 번에 바꾸라고 하니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필자도 데이터 분석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 다른 업무를 맡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데이터 분석이 뭘 하는 것인지? 또 데이터로 뭘 봐서 적용한들 무슨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내 일이 바빠 죽겠는데, 어디서 숫자를 가져와서 이렇게 저렇게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면
공감하기가 힘들 뿐더러, 회사에서의 일이라는 게 단순히 "올바른 방향"만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유관부서와의 이해관계", "현 조직의 상황" 등 데이터 외적으로 고려해야 할 무게도 매우 크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분석가의 입장에서는 사실 분석 결과를 현업에 있는 그대로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됩니다.
듣는 쪽에서는 공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현업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일만 만들어내는 죽일 놈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또 해석의 영역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보니 힘이 실리지 않을 경우 정해진 방향에서 숫자만 뽑거나, 전략은 다 짜여져 있는데 한두 마디 더하거나 뒷받침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분석가 업무 자체의 난이도만 놓고 보면, 꽤나 희소성이 있고 허들이 있는 직무입니다.
그 이유는 분석가로서 소위 기본빵을 하려면
1. 회사 데이터 구조를 꿰고 있어야 하고
2. 각 업무에 대한 이해도도 어느 정도 높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번이 되는데 2번이 안 되면, 분석에 대한 인사이트 도출이 안 되게 되고 2번이 되는데 1번이 안 되면… 분석을 하기 위한 데이터를 가공할 수 없게 되지요.
그러니 어느 정도 하는 분석가의 입장에서는 심리적 위치가 애매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실행자도 아닌 것 같고, 이해도는 높은데 영향력은 낮은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지요.
모든 회사 일이 그렇듯 그래도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하다 보면 즐거운 순간들도 있습니다.
분석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흐름이 보이기도 하고, 또 분석 결과의 한 줄이 우리 조직, 현업에서 했던 활동을 더 빛나게 해주는 순간도 있습니다(저는 이런 순간이 좋더군요).
그래서 저는 점점,
분석가로서 늘 중심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 경계에 있는 덕분에 더 많은 맥락을 보고,
더 넓은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분석이란 건,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팀을 빛내는 일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