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즈미 한사람은 피해야될까
“전신 이레즈미를 한 사람을 마주하면, 솔직히 조금 불편하고 긴장되지 않으신가요?”
사회적으로는 이런 반응이 편견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외형 앞에서 무의식적인 경계심을 느낍니다.
특히 얼굴 문신, 목부터 손등까지 이어진 이레즈미처럼 시각적으로 강한 표현을 마주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 더 나아가 위험성까지도 단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반응은 단순한 편견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뇌가 학습한 통계적 직관일까요?
사람들의 행동과 외형은 대체로 정규분포 곡선을 그립니다.
즉, 대다수는 무난한 외형과 예측 가능한 행동양식을 보일 것이라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이 ‘예측 가능성’이란 것은 조직과 사회가 가장 선호하는 안정성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면접 시에는 정장을 입고, 중요한 만남이 있을 때는 깔끔하고 단정한 복장은 공식이 됩니다.
그런데 전신 이레즈미나 안면 문신은 이 분포의 꼬리, 즉 극단값(outlier)에 해당합니다.
그 자체로 흔치 않을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와 배경의 다양성이 너무 커서 ‘평균적인 판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신호가 됩니다.
이처럼 분산이 큰 신호는 조직이나 시스템이 통제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입니다.
같은 부위에 비슷한 문양의 문신을 새긴 사람도 어떤 이는 예술적 자기표현이고, 어떤 이는 과거 조직 생활의 흔적이며, 또 다른 이는 가족을 기리기 위한 상징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문신은 시각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의미적으로는 평균에서 떨어져 있는 정도가 큰 고분산(high variance)인 기호입니다.
외형만으로는 그 사람의 의도나 성향, 행동 양식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신호는, 개인에게는 호기심을, 조직에는 불안을 일으킵니다.
대개 우리는 평균에 기대 살아갑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평균적인 외형’을 신뢰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문신, 특히 이레즈미는 그 기준에서 벗어난 외형이기 때문에 ‘평균값에서 멀어진 존재’로 간주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라기보다, 확률적으로 예측이 어려운 존재를 경계하는 인간 본능의 반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신은 하나의 신호일 뿐, 그 자체로 사람의 전부를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트라우마의 회복을 위해, 누군가는 미적 취향 때문에, 또 누군가는 단순히 충동적으로 문신을 선택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을 처음 마주한 순간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보다 그 이후에 어떻게 그 인상을 갱신할 것인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통계적으로 평균에 기대어 살아가지만, 진짜 변화, 전환, 혁신, 혹은 깨달음은 언제나 그 평균의 바깥,
분포의 꼬리에서 조용히 자라기 시작합니다.
전신 이레즈미를 한 누군가를 마주쳤을 때,
당신은 그 강렬한 시각적 신호 앞에서 마음속 판단을 완결지을 것인가요,
아니면 해석을 잠시 유예하고,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 용기가 있으신가요?
사회는 평균을 기준 삼아 사람을 정렬하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 평균 밖에서 더 넓은 세계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당신에게 ‘다름’은 불안한 끝인가요, 아니면 새로운 질문의 시작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