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시점 태그 소설
치핵은 더 이상 둥글지 않고 뾰족해져 버렸다. 잔뜩 뿔을 내며 밖으로 나가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약을 바르거나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힘껏 엉덩이에 힘을 줘 치핵의 탈출을 막는 것뿐이었다. 치열한 ‘아래 상황’ 덕분에 ‘윗 상황’은 컨트롤이 안 되고 있었다. 정신줄은 이미 여러 개 멀리 날아가 다시 붙잡기 힘들었다. 하늘에 둥둥 떠 있던 정신줄 중 맑은 색의 정신줄들은 거의 날아갔고, 탁한 색의 정신줄만 머리 위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 정신줄이 약한 줄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똥줄조차 약할 줄이야.
문득 예전 인터넷에 ‘2일 만에 회사를 때려치운 서울대 입사동기를 떠올리며 쓴, 누군가의 사직서’가 떠올랐다. 나쁜 회사인 것은 진즉에 눈치채고 이틀 만에 도망간 똑똑한 서울대 동기를 떠올리며, 멍청하게 5년 동안이나 회사에 몸을 바친 자신의 우둔함을 책망하는 글이었다.
내 정신줄과 똥줄도 그 서울대 나온 동기처럼 똑똑한 것일까. 이제 2일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도망가려 난리다. 사람들이 또 밀려왔다. 제대로 판매는 안 되어도, 사람들이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로즈마리 농장에서 나왔습니다. 쿠폰 교환 가능합니다. 구경하고 가세요’
끊임없이 호객행위를 하는 내 성대는 분명 정신줄과 똥줄보다는 멍청했다.
# 17일간 지역 꽃 박람회 장사 #우리 집 로즈마리 농장
멀리서 ‘죽어 할머니’ 때가 우르르 다가왔다. 노인정에서 관광버스가 내린 모양이다. 할머니들은 매표소 바로 앞 천 원짜리 다육이를 구매하신 후 근처를 조금 맴돌다 버스로 다시 들어가시곤 하였다. A열 4번째인 로즈마리 가게도 매표소와 멀지 않은지라, 그 앞을 지나가시곤 하는데 그때마다 잊지 않고 말씀하셨다.
“죽어. 이 건 다 죽어.”
로즈마리만 보시면, 하나같이 ‘죽어’를 외치셨다. 물주는 방법만 달리 하면 죽지 않는다고 열변을 토했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죽어.’였다. 간곡한 설득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그네들의 확고한 의지에, 결국 나는 손을 들었다. ‘죽어’를 남발하시는 할머니께 ‘맞아요. 잘 죽어요.’라고 맞장구를 쳐드렸더니 솔직하다며 좋아하셨다.
#좋아만 하실 뿐 사지는 않으시는
몇 명의 할머님들은 옆가게에 가서 묻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
“어이 총각, 죽지 않는 걸로 줘봐.”
“네?”
“죽지 않는 걸로 줘보라고.”
“하하 죽지 않는 게 어딨어요. 다 생물은 죽어요.”
“아 그래도 죽지 않는 거 있잖여. 그거 내 놔봐.”
불로를 원하시는 진시황제같은 죽어할머니들이 모두 지나가자, 명줄이 조금 늘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오전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왔다. 마침 산책나온 개가 가게앞을 지났다. 햇볕 스포트라이트를 선명하게 받고있는 개의 매끈한 똥구멍이 보였다. 탄탄하게 붙어있는 강아지의 똥줄을 보니, 내 명줄보다 고급스러 보였다. 부러웠다. 탱탱한 똥구멍에 나도 모르게 반해버렸다.
#명품 똥줄 #하품명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