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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요 Oct 29. 2020

<오봉골 인스타> #18. 부부싸움

1인용 시점 태그 소설






 말년은 얼마나 고적하려고 지금 이렇게 시끄러운 것일까. 만약 고독함에도 전체 질량에 법칙이 있다면, 나이 들어 엄청 고독할 것이다. 집안이 오늘도 시끄럽다. 엄마 아빠가 다툰다. 인삼과 대추를 꿀에 절여 놓은 것을 두유를 넣고 갈아 드렸더니 그게 힘을 펄펄 솟게 하는 것일까. 70대 중반인데도 기운 좋게 싸우신다. 엄마 아빠 서로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큰일이 아니어도 경찰을 곧잘 부른다. 부부싸움도 싸움이므로 범죄. 이런 일로 부끄러워 하기는 싫다. 경찰이 오는 일이 맞다. 경찰이 곧잘 와서 그런가,.. 아님 둘 다 나이가 드셔서 그런가,.. 소리만 요란하지 큰 싸움은 없다. 다만,

#이 동네에선 시집은 못 갈 듯     



 한 번은 개를 산책시킨 후 집으로 향해 걷는데, 동네 할머니 3인방이 마침내 옆을 지나고 있었다.

 “아이고 저 두 냥반은 두 번 다신 안 볼 것처럼 싸워.”

 뭔 일인가 싶어 길을 더 걸어가니, 아래 밭에서 또 엄마 아빠가 오봉골 들판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싸우고 있다. 이런 일로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유전일까.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 할머니들 이야기를 하니 둘 다 수줍게 키득댄다. 

# 부부싸움 웅변가      



 오늘은 큰 온실에서 싸우고 있다. 온실 바로 옆에 어설프게 마련한 작업실은 방음시설이 전혀 안 된다. 쩌렁쩌렁 싸우는 소리가 얇은 막을 지나 바로 귓속을 파고든다. 이럴 땐 방음이 잘되는 집으로 피해야 한다. 벌떡 일어나 작업실을 뛰어나가는데, 내 뒤에 자고 있던 야옹이 콧수염이도 같이 벌떡 일어나 달려 나온다.

 그 녀석도 부부싸움 소리가 시끄러웠을까? 같이 뛴다. 엎치락 뒤치락. 작업실 마루를 지나, 작은 온실을 지나, 온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요 녀석이 나보다 먼저 마당으로 뛰어나간다. 그때 서로 먼저 나가려는 통에 고양이 몸에 다리가 걸려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중심을 잡아 일어서며, ‘너는 왜 바쁜 건데?’ 고양이를 향해 핀잔을 줘 봤지만, 소용없다. 벌써 지보다 5배는 큰 영백이와 싸우고, 아니 놀고 있다. 

# 전염되는 파이팅     



 예전에 말수가 적은 남자 친구를 사귄 적이 있다. 일부러 말수가 적은 사람을 고른 것은 아닌데, 꽤 멋져 보였다. 과묵한 남자와의 연애, 일종의 낭만 같은 거였으려나. 그러나 막상 사귀기 시작하니, 그처럼 어려울 수가 없었다. 시종일관 시끄러운 사람들과 살다 보니, 조용한 사람과는 지낼 수가 없었다. 너무 시끄러우면 그만 좀 말하라고 핀잔이나 줄 수 있지, 말이 없는 사람에게 말을 끌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 또한 나 혼자 수다를 떨 줄 하는 깜냥은 없어서, 말 없는 사람과는 어찌 지내야 할지 막막하였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시끄러운 가족이 모두 사라지면, 그땐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사실 조용한 게 좋긴 한데, 너무 고적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곤 한다. 이 지겨운 부부싸움 소리도 그리워지지 않을까 '별 걱정'을 하곤 한다.

#별 걱정



출처 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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