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시점 태그 소설
이번엔 순경이었다. 지난 주엔 헤어젤을 잔뜩 바른 느끼한 중년 형사였는데, 이번엔 수줍어 보이는 30대 순경이 찾아왔다. 그때완 달리 이번엔 제복을 입고 있어 경찰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순경은 핸드폰을 열어 증명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사진 속 얼굴은 5~60대 쯤 되어 보이는 남자얼굴이었다. 우락부락한 얼굴. 형사가 보여준 얼굴과는 다른 얼굴로 밑에 이름이 작게 보였다. 이민희.
“본 적 있으세요?”
“어,..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일요일만 와서 일하는 터라.”
“예.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경찰은 재빨리 나갔다. 뒤통수에다가 물으려고 허리를 굽혔는데, 하필 지난 주에 새로 산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떨어졌다. 아직 커버를 맞추지 않은 핸드폰은 깨지는 소리를 내며 경찰 발목을 붙잡듯이 그 앞에 떨어났다. 그 소리에 경찰이 얼른 핸드폰을 주워 주었지만, 이미 오른쪽 귀퉁이에 거미줄같은 금이 흉측하게 나 있었다.
"어쩌죠. 깨졌네요. 이거 신형 같은데."
"하아,... 어쩔수 없죠"
핸드폰 깨진 걸 보니 궁금한게 쏙 들어갔다. 경찰은 자리가 불편한지 서둘러 가게를 떠났다.
연이어 경찰과 형사를 만나자, 동네가 조금 무서워졌다. 알바를 그만둬야하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수록 그 사진이 자꾸 생각나기 시작하였다. 잠깐 볼 땐 몰랐지만, 얼굴이 살짝 낯이 익은 얼굴 같았다. 가끔 오던 손님이었나? 아까 제대로 대답하지 않은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잘은 몰라도 어디서 본듯한 얼굴이라고 말은 할껄.
#제대로 대답을 안해서 벌받았나? 그래서 핸드폰이 깨졌나..
문제는 다음날에 터졌다. 이번엔 경찰차뿐 아니라 엠블런스까지 왔다. 사람들이 북적였다. 손님이 없어 얼른 가게를 나가 주변을 살폈다. 105동 빌라 앞에 사다리차, 엠블란스, 경찰차까지 모두 주차되어 있었다. 주변은 사람들로 꽉차있었다. 시골 원룸단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많았나. 마치 축제가 벌어진 것 같았다. 마침 눈에 익은 손님이 그곳에서 돌아오고 있어, 손님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무슨 일 있나요?”
“사람이 죽었데요.”
“네? 왜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죽었다는 이야기만 해줘서..”
105동 앞에, 경찰과 이야기 중인 관리소장 얼굴이 보였다. 어제 그 경찰이다. 관리소장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볼까 싶었지만, 뭔가 저 인간은 제대로 알고 있어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줄 것 같지 않았다. 여기 단지는 시설이 낙후되어 서서히 입주자들이 빠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사람까지 죽어나간다면 누가 들어오고 싶겠는가. 저렇게 경찰이 들락거린다면 일반적인 죽음 같지는 않은데(일반적인 죽음이란게 있을까), 저 집에 다시 입주하고 싶어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어제 그 경찰을 붙잡고 제대로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아쉽다.
#하아 핸드폰
그런데, 그때 갑자기 스산함이 머리를 스쳤다. 어제 사진 속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어제 그자가? 그 자가 자살을 한 건가? 아니면 사람을 죽인건가? 어제 대화가 탐문 수색이었나? 그러자 사진 밑에 있던 이민희라는 이름이 무섭게 느껴졌다. 탐문수사 후, 벌어진 죽음이라니. 어제 느낀 무서움과는 결이 다른 으스스함이 스쳤다.
나는 그 후로 새벽에 혼자 출근하지 못하고, 나이든 아빠차를 얻어 타고 나왔다. 어두운 새벽 주차를 하고 혼자 가게 문을 여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빠도 내가 문을 모두 열고 들어갈 때까지 모두 지켜본 후, 떠나곤 하였다. 가끔 뉴스를 검색해서 이 주위에 자살, 타살 사건에 대한 기사가 없나 살펴보곤 하였지만, 별다른 기사는 없었다. 워낙 사건들이 많아 모두 기사에 오르진 않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민희란 이름과 그 사진 속 얼굴이 어른거려 머리가 아팠다. 어디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떠오르지 않아 점점 더 갑갑해졌다.
#일요일 만하던 알바도 결국 그만두고 그 동네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도 지나 겨울이 될 무렵, 갱신된 운전면허증을 받기 위해 동네 파출소에 가게 되었다. 거기서 가게에서 보았던 수줍은 경찰을 만났다. 경찰도 내 얼굴을 보자 핸드폰 괜찮냐며 금세 기억해 냈다. 기억력 좋네. 면허증을 수령하며 경찰에게 지난 여름 금양리 원룸단지 일을 슬쩍 물어보자, 바로 기억해 냈다.
“아 그때 어르신 혼자 돌아가신 일이요? 서울에 있는 따님이 아버지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신고했었어요. 간암이시라고. 일정한 주거지가 있던 분이 아니라 일용직 일을 하는 분이신데,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연락을 했었데요. 그런데 전혀 연락이 안된다며 신고를 하신거죠. 핸드폰추적이 그 동네가 마지막이어서 그 주위를 찾은거에요. 정확한 주소를 몰라 꽤 헤맸구요. 결국 간신히 찾긴 찾았는데,.. 이미 돌아가신지 며칠 됐고, 그 옆에 죽은 지 더 오래된 검은 개가 있어서 깜짝 놀랐었던 기억이 있네요.”
뜬금없이 어떤 기억이 났다. 알바가 끝난 후 매일 개들을 산책시켰는데, 그때 동네 둑방에서 만난 아저씨였다. 영백이보고 땡칠이 땡칠이 하며 이뻐해주던 아저씨. 그 아저씨 옆에 검은 개가 있었다. 아저씨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주인을 닮아 살가웠던 기억이 났다.
“혹시 돌아가신 분 이름이 ‘이민희’씨였나요?”
# 어? 아는 분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