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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요 Oct 29. 2020

<오봉골 인스타> #19. 도망

1인용 시점 태그 소설






 “하아... 씨ㅂ”     

 억센 한숨에 옆자리 남자가 급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중년 남자는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한숨이 너무 컸다. 나도 내 소리에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들 시선이 몰렸다. 부끄러워, 시트콤 주인공처럼 슬쩍 고개를 벽 쪽으로 돌렸다.

 문산행 전철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홍대입구 경의선 플랫폼엔 사람이 몇 없었다. 띄엄띄엄 다니는 경의선이 도착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옆자리 아저씨는 자리를 피하듯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어차피 소소한 취미 수업 과제일 뿐이었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일 일이다. 그런데 신경이 쓰였다.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가 아닌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자신의 찌질함에 대해 쓰라는 글쓰기 숙제’. 끔찍하게 싫었다. 다시 한번 거친 한숨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삼켰다.

 수업을 오래 들은 것이 문제였을까. 이런 비슷한 ‘쪼’의 글을 몇 번 썼던 기억이 났다. 글쓰기 수업은 매 시즌별 새로운 학생들이 생겨나는 수업이기에 비슷한 숙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연이어 수업을 듣는 내가 문제였다. 그동안 숙제를 하며 드러낸 나의 찌질함들이, 글쓰기 수업 샘플로 전락해버리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나의 찌질함을 거듭하여 대면할 여유도 없었다. 

#찌질함 상한선    

 


 불안을 드러내는 이런 글들로 합평받을 때마다, 나체로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쓴 글의 주인공이 캐릭터로 이해되지 않고, 직접 나로 읽혀, 내 면전에서 바로 위로받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건 소설이에요’라는 말이 한 박자 늦게 떠오르곤 했지만, 뒤늦게 떠올려도 굳이 그런 말을 꺼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글은 읽는 이의 몫이었다. 쓴 이의 말은 변명일 뿐이었다.

#잘 되실 거예요 



 원치 않게 19금 예술영화 노출신을 연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베드신이나 전신 노출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상의 탈의 정도는 해줘야 하는 영화. 벗는 게 두렵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정도 예술적 혜안은 있는 척하고 싶었다. 그 정도 배짱은 있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은 달랐다. ‘벗더라도 내가 벗고 싶을 때 벗을 거야!’라는 말이, 욕처럼 입에서 맴돌았다. 벗더라도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벗고 싶었다. 도망가도 아무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

 윗도리고 아랫도리고 다 벗어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 부끄럼 없는 그런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다.         

#훌훌




출처  아따아따



출처 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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