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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Mar 12. 2024

꽃이 핀다

'함민복 작품' (함민복, 창비)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꽃이

핀다



 무너진 관계 속에서도 꽃은 핀다. 나는 귀한 인연들을 욕심으로 잃었다.

 대학교 때 나를 뒤에서 욕하던 친구들의 말.

 "쟤는 학점에 미쳤다."

 나는 가난했고, 학비를 마련해야 했고,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장학금이라도 못 받는 학기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는 살고자 공부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 살고자 공부했다. 부끄럽다.

 혼자 살기 위한 공부는 내게 외로움으로 퇴적되어 남았다. 수석이 무슨 소용인가. 내 곁에서 즐거움을 함께할, 슬픔을 함께할 친구들을 잃었다.

 오늘은 영춘화가 열 송이는 더 피었다. 나도 과거의 연을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노랗게 핀다. 경계를 허무는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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