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꽃이
핀다
무너진 관계 속에서도 꽃은 핀다. 나는 귀한 인연들을 욕심으로 잃었다.
대학교 때 나를 뒤에서 욕하던 친구들의 말.
"쟤는 학점에 미쳤다."
나는 가난했고, 학비를 마련해야 했고,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장학금이라도 못 받는 학기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는 살고자 공부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 살고자 공부했다. 부끄럽다.
혼자 살기 위한 공부는 내게 외로움으로 퇴적되어 남았다. 수석이 무슨 소용인가. 내 곁에서 즐거움을 함께할, 슬픔을 함께할 친구들을 잃었다.
오늘은 영춘화가 열 송이는 더 피었다. 나도 과거의 인연을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노랗게 핀다. 경계를 허무는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