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환장할 봄날에' (박규리 시집, 창비 2004)
언제부터였을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란
주름과 주름이 섞이는 일이라는 걸 짐작한 뒤부터
내가 먼저 한줄 주름으로 눕게 될까봐
그대에게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깊은 주름으로
쓸쓸히 접히게 될까봐
짐짓 딴전이나 피우다
먼데로 말꼬리 흘린 적 참 많았다
"그 친구랑 똑같은 애네요."
한 선생님이 우리 반 아이를 보고 문제라며, 문제가 있었던 다른 친구를 비교하며 그 친구와 똑같다고 말했다. 농담으로 말하신 건지, 정말로 언어의 습관이 가볍게 생겨 먹으신 건지. 담임 앞에서 우리 반 아이를 문제라고 조롱 섞인 듯 말씀하시다니. 성질이 머리끝까지 났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주름이라고. 사람의 관계는 언어로 만들어진다. 아쉽게도 한번 구겨진 관계는 그 흔적을 남긴다. 주름의 속성이다. 누군가 넌지시, 혹은 농담으로 던진 한 마디도 어떤 사람의 가슴속에 깊게 흔적으로 파인다. 그걸 안다면 나의 언어도 돌보아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이 생긴다.
그 선생님을 비난할 것이 아니다. 나 또한 언어로 누군가에게 숱하게 상처를 주고 살았을 테니. 부드럽게 이야기해야지. 우리 아이는 그 친구랑은 다르다. 가까이 보아야 귀하게 드러나는 것들이 반드시 있다. 모든 아이들은 다르다. 같은 아이로 바라보는 삶은 폭력적이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귀엽습니다. 좋게 봐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욕은 제게 하세요.'
이야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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