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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Mar 18. 2024

대화

'파일명 서정시'(나희덕, 창비 2018)

산책은 길어지고 

나희덕


나란히 걷는 것은

아주 섬세한 행위랍니다

너무 앞서지도 너무 뒤서지도 않게

거리와 보폭을 조절해야 하지요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다

모든 걸음은 어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뚝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거리


 산책과 대화는 거리로 만드는 놀이다. 너무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게. 서로가 허락한 거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얼굴로 드러나는 언어가 있다. 표현하지 않는 내면의 언어. 감출수록 얼굴 전체로 드러나는 그림자. 

 '그렇지 분명 고민이 있는 게다.'

 넌지시 묻는다. 편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네가 드러내지 않고 싶다면 괜찮다. 언제든 네가 거리를 조절하렴. 네 걸음은 네 자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화로 걷는다. 하나둘 내게 털어놓는 비밀만큼 우리는 가까워지고, 또 서로의 무게를 알아간다. 비밀 하나 털어놓을 곳 없는 답답한 세상이다. 아이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뭉개고, 편가르고 차별하고, 증오하는 어른들의 세계만 생산되는 무겁고도 매정한 사회. 아이들의 이야기 깃들 곳이 한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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