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공유하는 문화 전도사!
도신 스님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서 도신 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고, 긴 세월 어머니를 그리워한 그의 애달픈 이별 이야기는 내 가슴속에 숨어있던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끄집어내고야 말았다.
나같이 70이 넘은 노인의 어머니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 대한민국 질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했던 불행한 여인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노인은 “어머니!”로 말문을 열 때마다 눈물이 앞선다.
도신 스님의 어머님은 소위 말해 팔자를 고치기 위해서 딸 셋을 해외로 입양 보내면서, 여덟 살 먹은 아들마저 숙부 집에 맡겼다. 논 다섯 마지기에 9명의 자식을 책임져야 했던 숙부는 나이 어린 조카를 보육원에 보내는 것보다는 절에 맡기는 것이 낫다는, 이모의 충고를 받아들여 1969년에 도신스님을 덕수총림의 수석사로 출가시켰다.
여덟 살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한 어린 동자승의 소원은 부천 소사 터미널에서 헤어지면서 매일 저녁 찾아오겠다고 수없이 다짐한 어머니를 만나는 것이었다. 어둠이 깔리면 정신 줄 놓고 절 입구를 바라보는 동자승에게 주지 스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부르면, 어머님이 너를 보러 오실 것이다.”
몇 년간 주지 스님의 말씀 약속을 철저히 지켰지만, 어머니는 스님을 찾아오지 않았다. 주지 스님이 자신을 속였다는 의구심에서 이를 따져 물으니,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난 후에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덧붙이면 어머니를 반드시 만날 수 있다고 주지 스님이 답해 주셨다
어머니와 헤어진 지 몇십 년 세월이 흘렀지만,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쌓여만 갔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져 갔다. 수도자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스님은 어머니의 평안을 위한 ‘지장천일기도’를 드려야만 했다고 고백했다.
도신 스님-불교 신문
그는 어머니라는 무상(無常)을 뚫고 나가서야 비로소 주지 스님이 주신 화두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도신 스님에게 깨달음의 실마리를 제공한 무상(無常)을 절실하게 느끼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은 어머니와의 이별이 아니라 월정사에서 2년간 같이 수행한 도반 선배인 원혜 스님과의 작별이었다.
원혜 스님은 잠자리에서 오줌을 싸서 방을 같이 쓰는 도반들의 빈축을 사고 따돌림을 당했던 나이 어린 도신 스님을 친 무모처럼 돌봐주고 지켜준 고마운 은인이었다.
원혜 스님은 안거(安居)를 마치고 주지 스님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후에 기둥에 걸어 놓았던 걸망을 걸치면서 “부지런히 수행하여 다시 만날 때에는 훌륭한 스님이 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작별의 말을 건네고 도신 스님 곁을 떠났다.
원혜 스님이 남긴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 친근 현선(親近賢善)- 나쁜 친구를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하라.’ 일 년 후에 도신 스님은 인편으로 원혜 스님의 열반 소식을 접했다.
어머니와의 이별로 맺힌 한을 미처 해결하지 못한 나이 어린 스님은 두 번째 닥친 이별 앞에서 망연자실하였고, 그와 인연을 맺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무상(無常)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나고 죽고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한없이 덧없는 것이다. 인연이 없으면 물질은 결코 만날 수 없다. 나라는 존재도 업보라는 원인과 번뇌라는 조건이 맞아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의 조합일 뿐이다."
무상(無常)을 뼈저리게 느끼고 난 후에, 도신 스님의 이별이 없는 영원한 나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고, 이는 ‘~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끝없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명상과 정신 치료를 접목한 최훈동 정신과 전문의는 모든 환우를 가족처럼 돌보는 병원을 꿈꾸며 김포에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정신병원을 짓는 도중에 IMF가 터졌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 문은 열었지만, 적자가 쌓여가는 경영악화로, 부도를 맞아 가족과 지인들에게 빚을 떠넘겨야 하는 몹쓸 짓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몇 년 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위기에 직면하면, 참담한 현실에서 도피하기에 급급해진다. 술에 의존하여 현실을 망각하고 거리를 방황하다가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최훈동 정신과 전문의/www.chosun.com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동안 등한히 했던 마음공부나 좀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당시
미얀마의 ‘우 자나카’ 스님이 천안 호두마을이란 곳에서 3주간 진행한 명상 수련에 참여했다.
‘우 자나카’ 스님의 수행 지도를 받으면서 남방 위파사나 수행에 매진하던 17일째에 그는 난생처음 부처님의 경건한 마음, ‘현존 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여기에 그의 감격스러운 고백을 소개하고자 한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현존 감이 밀려왔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완전한 느낌, 눈물이 쏟아지는데 한 3시간 동안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천근만근 쑤시고 아팠던 육체의 통증도 사라지고, 마음은 과거로도 미래로도 향하지 않고 온전히 현재에 머무르면서 마음이 순백색으로 정화되고, 즐겁고, 편안해졌습니다.”
나는 그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사유와 숙고를 거쳐서 흘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를 경건하게 읽어 내려갔다.
“부도 위기의 병원과 산더미 같은 빚은 내가 아니다. 사람들은 경험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해석하여 판단한 후에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내어서 스스로 고통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어리석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이 아픈 기억은 아픈 기억일 뿐, 어떤 기억도 내가 아니다. 과거의 경험은 이미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을 일컬어 도인(道人) 혹은 선지식이라고 부른다. 도(道)의 경지가 높아지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우선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나’라는 실체가 재물에 대한 욕심과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사에 대한 분노와 자기의 재주를 과대평가하여 주위 사람들을 무식하고 천박한 존재로 경멸하는 자만과 오만으로 가득 채워진 악성종양으로 보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지금까지‘나’라고 불렀던 놈을 제거하여 몸 밖으로 내 던져 버리게 된다.
이렇게 속이 비워진 상태를 일컬어 마음을 비웠다고 하는 것이며, 공(空)의 원리를 깨쳐서 자타의 경계를 넘었다고 하는 것이다.
진목 법사
수행이란 호흡 운동을 통하여 마음의 눈으로 육체적인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오장육부와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사는 ‘나’를 선명하게 보고, 이를 정밀하게 그리는 훈련이다. 국선도 연맹 총재 진목 법사는 수행의 한 단계인 ‘의식집중훈련’을 통하여 누구나 자신들의 오장육부와 나라는 존재의 형상을 명확하게 볼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음미하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실낱같이 가는 숨을 천천히 길게 들이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차분하게 정화된 마음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푸른빛 조각들을 내 몸속으로 초대하여, 내 뇌와 오장육부의 구석구석을 유람시키는 훈련을 시작한다.
나는 이 빛나는 기(氣) 덩어리를 가슴 중앙에 위치한 폐와 심장으로 안내한 후에 좌측의 위장과 췌장, 우측의 간과 쓸개를 걸쳐서 아래쪽의 작은창자와 큰창자 그리고 신장을 지나 단전으로 유도하면서 기(氣)의 빛줄기가 각각의 장기 형태를 선명하게 비추어 줄 때를 기다리고 있다.
수행은 무념무상으로 푸른 뜰에 앉아 헤드셋 기기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보는 것으로 비유된다. 물고기는 맑고 깨끗한 물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가끔 수행을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는 생존할 수가 없다.
나는 항상 현재에 존재하면서 기기 속에서 보여주는 가상현실을 감상한다. 이 현대적 기기는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선험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좌선하고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같이 배추를 수확하고, 부처님 나라에 들어서서 감사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법정 스님-불교 신문
법정 스님은 자신이 출가를 결심한 것은 부처님의 말씀하신 생로병사를 초월하기 위해서도 불쌍한 중생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저 나답게, 법정답게 살기 위해서 집을 떠났다고 고백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끊임없는 수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처음으로 심각하게 고민하던 청소년 시기에, 인간은 죽음 앞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에게 목숨이 고귀한 것은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죽음 때문이며, 따라서 잘 산다는 의미는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일 것이다. 생이 아름답다면 죽음 또한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청소년 시절에 나는 내가 죽으면 밤하늘의 별이 된다고 굳게 믿었다. 한편으로 죽음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사실이 내게는 견디기 어려운 궁금증을 유발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죽음을 경험해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또한 죽음으로서 들어서게 되는 사후 세계에 대한 견디기 힘든 궁금증은 죽음에 대한 엄청난 공포로 변해갔다.
나는 죽음에 대한 처절한 고백을 진지하게 써 내려갔다. 나의 글쓰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게 글 쓰는 작업은 문학이라기보다는 내 인생의 독백이었다.
공자-어린이 조선 일보
나는 우연히 격은 경험을 통하여 수십 년간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40대 중반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공자님의 경원(敬遠)을 온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이미 예정되었던 내 인생의 작은 역사가 아니었을까?
폐병 치료를 포기하고 시골 고향으로 돌아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정겨운 이웃들 곁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 친척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문득 공자님이 말씀하신 지(知)에 대한 정의가 떠올랐다.
논어 옹야편 20장 원문에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지(知)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자기(自己) 자신(自身)이 해야 할 일에 힘쓰고 귀(鬼)나 신(神)은 공경(恭敬)하되 멀리하는 것을 지(知)라 말할 수 있다.”라고 답하였다.
설사 죽음을 경건하게 받아들인다 해도, 내가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인간의 도리를 포기한다면, 어떻게 인생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번지 점프대에 서면 눈 딱 감고 뛰어내리는 것이 상책이다. 많은 생각은 고통스러운 인생의 길이를 연장할 뿐이다. 나는 이날의 감격을 기록한 수필인 ‘경원(敬遠)’으로 2006년에 등단을 했고, 드디어 죽음의 공포와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
나는 70이 넘어서야 나의 진짜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창작에 몰두할 때보다는 명상에 잠길 때가 더 행복한 수행자이며, 진솔한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라기보다는 타인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듣고 이내 감동하는 열렬 독자다.
나는 매일 사적 일기와 공적인 업무 일지를 혼합한 형태의 '행복 일지'를 작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형식의 글을 좋아한다. 이는 개인적인 역사도 사회적인 역사와 같이 중요하며, 그 가치를 존중받아야 한다
는 평소의 지론 때문이다.
내 눈에 띄는 이야기들을 신문 등에서 선택하여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 '수필 이야기'에 게재하고, 그중 에서 한두 개를 정선하여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창 카카오톡에 올리는 일을 수년간 지속하고 있는데, 아름다움을 빨리 전달해 주고 싶은 조바심에 이른 새벽에 글을 올려서 핀잔을 받은 적도 있지만, 내가 추천하는 좋은 글에 공감을 표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읽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 자신에게 "당신은 아름다움을 선택하는데 특별한 능력을 갖춘 진솔한 문화 전도사입니다"라고 속삭이고는, 대단한 보시를 베푼 듯한 뿌듯함에 젖는다.
내가 나에게 인정을 받을 때,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 같이 노인은 세상살이하는 마음이나 말이나 글로는 전달할 수 없는 부처님 마음, 불립문자(不立文字)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나는 ‘브런치 작가’로서 '브런치 스토리'에 실린 모든 글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글의 대부분은 자신의 느낌을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포장하지 않고 순수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좋은 글들이어서, 천상병 시인의 말대로 읽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서양 철학을 공부한 현각 스님 같은 분의 설법이 소위 말해서 깨달았다는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선 문답식 교리보다는 가슴에 와닿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현각 스님이 신심(信心)에 대한 설명이 명확한 논리성에 근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김정호 덕성여대 교수/www.chosun.com.
김정호 덕성여대 심리학 교수는 ‘수행’이라는 상위 개념을 명상(쉰다), 마음 챙김(본다) 그리고 긍정심리(쓴다)로 구분하고, 개인적으로는 긍정 심리(쓴다)에 비중을 많이 둔다고 한다. 이는 수행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방법에 대한 아주 좋은 해답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수행이 인간의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는 본질적인 목적에 대한 답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혹자는 “수행과 현실적인 성취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나 같은 경우, 인생 대부분을 주한미군 중소하도급업체에서 근무했다. 흔히 일반회사 경영진과 종업원의 관계를 ‘갑’과 ‘을’에 비유하는 데 반하여 우리 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병’들의 집합이라고 불릴 만큼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먹고살기 위해서 회사에 출근해야만 한다. 또한 지방에 작은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일 만큼 가난한 노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마음이 부자인 진짜 부자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약 한 시간 수행한 덕분으로 8시간 회사 업무를 잘 견뎌낼 만큼 정신과 육체 모두 건강한 편이다. 나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근무 중이며, 젊은이 못지않은 의욕으로 영어 문서와 씨름하면서, 주한미군 및 주한미국대사관 입찰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인간은 한없이 무상(無常)한 존재다. 인간은 이러한 무상(無常)을 이타심(利他心)으로 깨뜨리려야 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생성되는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어진 위대한 생명체이다. 이러한 명확한 존재 의식을 가지고 매일 새벽에 좌선하여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자기 존재에 대한 고귀함과 위대함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