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뿌옇던 어느 여름날 오후
사람처럼 새까만 머리를 한 여우들이
기다란 모피코트를 입고 집 앞에 모여
쑥덕쑥덕 쑥덕쑥덕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짧은 비명에 하늘이 쾅쾅 울리고
울음소리가 구름을 흠뻑 적시자
여우들은 비를 맞으며 우르르 모여들었다.
내 머리 위 그림자가 늘어갈수록
녀석들의 얼굴은 더욱 뾰족해지고
모피코트는 갈수록 진한 색으로
긴 머리와 한 몸으로 뭉퉁그려졌다.
그중 하나가 툭 튀어나온 코로
나의 엉덩이를 찔렀다.
놀란 나는 그 길로 뛰쳐나가
엄마 엄마 살려주세요
여우들도 그 뒤를 쫓아오며
엄마 엄마 살려주세요
히히히 히히
쫓아오는 여우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
모피코트가 바닥을 삭삭 쓰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내 발목을 잡는다.
날카로운 발톱에 피부가 찢기고
긴 주둥이가 머리카락을 씹어 삼킨다.
꿈 인지 생시 인지
내달리며 우는 눈에 핏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