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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담, 시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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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 Dec 30. 2023

귀문

가난했던 내 어린 날에 엄마와 하루 종일 집을 보러 다녔어.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엄마는 계속해서 다음 집을 말하셨어. 

복덕방 아저씨가 보여주는 집은 점점 더 작아지고 낡아졌어. 

그러다 엄마가 마침내 좋아요라고 작게 이야기했지.

우리가 본 집 중에 가장 작고 어두웠어.  


새 집에서의 첫날 

들이치는 찬 바람에 

방문을 닫고 잤는데 

분명히 닫고 잤는데 

문틈이 아주 조금 열려 있었어.

아이 추워 엄마. 

엄마, 문 좀 닫아줘. 

엄마는 눈을 절대 뜨지 않았어. 


엉금엉금 기어가서 문을 닫으려는데 

문 틈으로 하얀 얼굴이 둥둥 떠 있는 게 보였어. 

두 눈과 코와 입이 시커멓게 뚫린 하얀 얼굴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어. 


그 뒤에도 

그 앞에도 하얀 얼굴들이 둥글게 서서 

우리 집 부엌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어. 

강강술래 강강수울래에 익숙한 노래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그 대열에 휩쓸려서

부엌을 정신없이 돌고 있었어. 


이른 새벽 제자리에서 돌고 있는 나를 엄마가 발견했다. 


매일 밤마다 나는 하얀 얼굴들과 뱅글뱅글 돌았어.

어떤 날은 부엌에서 

어떤 날은 화장실에서 

또 어떤 날은 마당에서. 

그러다 눈을 뜨면 푸른 새벽 기운이 온몸을 감쌌고 

엄마가 나를 부둥켜안고 부은 눈으로 울고 계셨어. 


결국 이사를 가게 되던 날

모든 짐을 트럭에 싣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마당 한가운데

하얀 얼굴과 까만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집으로 들어갔어


하나, 둘, 셋, 넷

나란히 나란히 

나도 함께 나란히 나란히 따라 가는데

새로 이사 온 여자아이가 빽 소리를 질렀어 

나가 이제 우리 집이야 


새빨개진 얼굴의 나를 끌어안고 엄마는 집을 노려봤어

한참 동안 씩씩대다가 트럭에 올라탔어 

엄마는 집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을 노려봤어


엄마 저 여자아이도 하얀 얼굴들을 보게 될까요 

얘야 이제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얼굴들 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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