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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담, 시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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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 Jan 06. 2024

 자각

흐릿한 기억 속 내뿜었던 마지막 숨이 끝나자

차가운 겨울의 입김들이 내 폐를 가득 채운다.

하늘 위로 붕 떠오른 내 몸을

몇몇 짓궂은 새들은 뚫고 지나가고

일부는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한다.


지구가 내뿜는 생명의 바람 역시 나를 지나치고서야

아하 나는 더 이상 이 세상 것이 아니구나.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처럼 어색한 다리를 움직여

하늘 아래로 더 아래로 방향 없이 내려간다.


무작정 내려온 곳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지방의 소도시.

생전에도 나는 낯선 이방인이었을 테지.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을 감추지 못해

내 몸에선 한기가 흘러나온다.

내 곁을 지나는 이들 모두가

일순간 추위를 느꼈으리라.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무한한 시간뿐

팔과 다리를 기괴하게 꺾어 흔들고

혀를 땅끝까지 길게 내밀며 웃고

키를 아파트 3층까지 키워 훔쳐봐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소리라도 들릴까 싶어

평소 좋아하던 노래를 엉터리로 불러도

간혹 지나가는 개들이 경계하며 짖을 뿐

그따위 노래를 부르냐며 윽박지르는 이도 없다.


차라리 유한했던 그 시절이 좋았다 떠올리며

억겁의 시간을 견디느니 다시 한번 숨을 끊자

옥상으로 올라가 괴상망측한 표정을 지으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다 그 애를 본 것이다.

새하얀 환자복을 입고 겁에 잔뜩 질린 얼굴을.

한순간 나를 감싸던 한기가 거미처럼 사라지고

지구의 바람이 내 입안으로 밀물처럼 들이친다.


콰직-

땅의 비명과 함께 드디어 진실로 마지막인 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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