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황새냉이, 곰보배추, 민들레, 개망초, 전호나물, 뽀리뱅이, 지칭개, 야생갓등 여러 가지 봄나물을 캐다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 오로지 나물만 따라서 눈과 발과 손, 나물봉다리가 이동합니다.
왼쪽 손으로 나물의 새잎 쪽을 잡고, 오른손으로 나물뿌리 쪽에 깊숙이 칼을 꽂으면 뿌리가 '둑'하고 베인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집니다. 왼손으로 나물을 집어올리고 흔들어서 흙을 털어요.
흙내와 나물향기가 '훅' 올라옵니다. 한 움큼씩 차곡차곡 채우다 보면 나물봉다리의 배가 점점 불러집니다.
해가 기우는 줄도 모르고 밭을 헤매다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보면 벌써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더라고요.
배부른 나물봉다리를 안고 뿌듯한 기분으로 돌아와, 물을 한 솥 끓여서 나물을 삶을 때의 향기는 더 강렬합니다. 또 나물 삶은 검은 물을 싱크대에 부을 때, 된장 고추장을 반반 섞어 참기름을 두르고 나물을 무칠 때 오감이 살아나고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아마도 그런 향기와 반응하는 감각들이 중독성이 있나 봐요.
해마다 봄이 오면 꼭 그렇게 해보고 싶은 게 말입니다.
어릴 적에, 아직 찬바람이 쌩쌩한 봄철에 언니들 따라 동네 묵은 밭으로 나물 캐러 다닌 기억이 납니다.
그땐 지금처럼 비닐봉지가 아니라 나물바구니를 갖고 다녔는데, 어린 나는 나물바구니를 들고 언니들 뒤를 따라다녔지요. 한 번은 내가 나물을 캐서 엄마에게 드렸는데, 내가 캐 온 나물바구니가 마루 한쪽에서 시들어버렸어요. 마른 잎과 티끌이 더 많고, 먹을 건 한 줌도 못 되는 봄나물은 나물무침이 못 된 거지요.
내가 엄마가 됐을 때도 딸내미 네댓 살 때 아기와 함께 나물을 캐러 갔어요.
처음엔 신난다고 좋아하던 아기가 얼마 못 가서 집에 가자고 졸라댔어요.
아마도 엄마가 나물에만 집중하고 자기랑 안 놀아줘서 지루하고 심통이 났겠지요.
나중엔 딸내미가 나물봉다리를 툭툭 차서 멀리 보내버렸어요. 할 수없이 손맛이 아쉬운 채로 아기 손잡고 돌아왔던 기억이, 이 봄에 또다시 새록새록합니다.
봄나물!
사 먹어도 되는데 왜 꼭 손, 발, 시간 버려가며 직접 캐고 싶은 걸까요?
돌아온 계절, 아지랑이, 봄흙, 새싹, 새 향기, 새 맛까지.....
속속들이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고 맛보고 싶은 나의 '원초적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차 뒷좌석에는 칼날 벼린 무쇠칼과 장보기용 비닐봉지 한 장이 잘 접힌 채 얌전히 누워 있습니다.